“혜은이 100억 빚 소식에 김동현이 보인 충격 행동에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어떤 행동인지 확인해 보세요.

오늘의 주인공 혜은이는 30년 결혼 생활 끝에 이혼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덤덤해도 너무 덤덤해, 본인 스스로가 30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아무 감정이 안 드는지 스스로를 자문하곤 했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전남편 김동현으로 인해 지금껏 날린 집만도 자택과 친정어머니의 집, 시어른들의 집, 작은아버지의 집까지 다 날리고 또한 한 채씩 날아갈 때마다 이제 그만 천국으로 가려고 준비하고 종종거리며 살아왔지만, 여전히 100억이 넘는 빚을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혜은이,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혜은이
👉”유현상 기러기 아빠 20년도 모자라 결국…” 안타까운 그의 근황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어린시절

1954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혜은이는 아버지가 연예기획사의 사장인 유명 악극단의 단장을 하면서 어린 시절 굉장히 부유하게 자랐습니다. 당시 극단의 단장인 아버지와 함께 전국을 누비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그녀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가 후배의 보증을 섰다가 전 재산을 날리면서 집안이 쫄딱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풍이 와서 종일 말 한마디를 안 하시고 심한 우울증으로 가만히 앉아만 있게 되었고,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고등학생이었던 그녀에게 “그래도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아야 하고 그러려면 너라도 돈을 벌어야 하니, 노래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라는 제안했습니다. 결국 고등학생의 나이로 아버지의 친구가 운영하던 극장식 맥주홀에서 가수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이처럼 그녀는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18살 때부터 밤무대에 올라 노래를 불렀으며 당시 예쁘고 노래도 잘해 금세 쇼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휘젓고 다니게 됩니다.

방송국에서도 PD들이 그녀를 찾아오기 시작했고, 작곡가 엄진이 그녀를 찾아와 “길옥윤이라는 작곡가가 신인 가수를 찾는데 오디션을 보는 게 어떠냐?”라며 권유합니다. 이때 그녀의 본명 김승주혜은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마침내 훗날 그녀를 국민가수로 만들어줄 작곡가 길옥윤을 소개받게 됩니다.

길옥윤과의 만남

한편 작곡가 길옥윤은 음악적 파트너이자 부부였던 가수 패티김과 이혼 후 술과 노름에 빠져 그늘진 생활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로 작곡가로서는 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혜은이와 길옥윤은 인연이 되었고 당시 혜은이의 몸무게가 38kg 정도 나갔을 때로, 길옥윤은 그간 패티김과 같이 성량이 풍부한 가수들과 작업하다가 너무 작은 혜은이를 보고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노래를 시켜보니 나이에 비해서 슬픈 정서가 깃들어져 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가 잔잔하여 결국 혜은이에게 곡을 주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데뷔곡 당신은 모르실 거야가 탄생하게 됩니다. 혜성같이 등장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적으로 이 노래가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데뷔곡 당신을 모르실 거야를 시작으로 길옥윤과 함께 3집까지 연달아 모두 대성공을 거두며 톱가수로 올라가게 됩니다.

승승장구 이후 은퇴

당시 혜은이의 독주시대라고 할 만큼 승승장구 했고 수많은 히트곡을 길옥윤과 함께 최고의 콤비로 이끌어 나갔습니다. 길옥윤의 매니저는 혜은이도 함께 일을 봐주고 있었고 길옥윤과 매니저는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둘 사이에 갈등이 생겨 멀어지자, 난처한 상황에 놓인 혜은이는 결국 1981년 외국에 나가 공부하겠다라는 방송용 멘트를 남긴 채 갑자기 은퇴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명동에 혜은이 부티크라는 기성복 매장을 차려 당시 지방 대리점 확장 등 성공적이라는 평가받고 했으나 결국 동업자들의 사기로 무려 7,000만 원의 손해 보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참고로 1982년 그녀가 날린 7,000천만 원은 지금의 40억 정도 돈이었습니다.

첫 번째 결혼

그 여파로 인생의 비극도 시작되게 되는데 그 이유로는 그녀의 첫 번째 남편 최정수를 이 사업 때문에 만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첫 번째 남편 최정수는 참고로 길옥윤이 소개해 준 사람으로, 이미 두 번의 결혼 경력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며 나이 차이가 무려 17살이나 났고 흔치 않던 속도위반까지 하면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첫 번째 남편 최정수는 날이 갈수록 나쁜 행동 하더니 결국 구속까지 되고 말았고, 그녀가 이혼을 요구했는데 그것마저 거절하자, 별거 이후 결국 결혼 5년 만인 1988년 이혼하고 딸의 양육권도 함께 넘겨주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녀의 몸이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하더니 가수로서 복귀하긴 했으나 더 이상은 예전의 혜은이가 아니었고 팬들은 혜은이가 최정수만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조용필을 능가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는데….라고 했고 두 사람이 만남의 중재자가 된 혜은이 부티크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결혼생활 그리고 전 재산을 잃은…

첫 번째 남편과 이혼 후 공모한 마음을 달래러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거기에서 두 번째 남편 김동현을 만나게 됩니다. 당시 두 사람은 교회뿐만 아니라, 인천 야간 업소도 함께 출연하다 보니 이후 급격히 가까워져 그녀가 이혼한 지 1년 만에 1989년 돌연 결혼 발표하게 됩니다. 당시 김동현은 초혼이었으며 집안 반대가 상당했으나 이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결혼에 골인합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그녀는 인생의 큰 위기를 마주하게 됩니다.

당시 김동현은 배우 생활을 하다 말고 갑자기 경험 없음에도 영화를 제작하겠다면서 시작했고 심지어 한 편도 아닌 두 편의 영화를 동시에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한 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에서 촬영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으나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부도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김동현이 날린 현금만 30억으로, 지금으로 치면 대략 200억 정도의 가치입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남편은 아파트를 짓겠다며 일을 벌이다 또 실패하고 결국 부부가 전 재산을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빚의 올가미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뻗어나갔고 이제 남은 것이 작은아버지 집 밖에 없어 부탁했는데, 그런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직접 가서 대출을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후 대출을 갚지도 못 한 채 결국 작은아버지가 남의 집에서 세상을 뜨셨다고 합니다.

김동현이 보인 행동

그러다 남편의 빚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때쯤 남편 김동현도 미안했는지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보답으로 혜은이가 첫 번째 이혼과 함께 보내야만 했던 딸을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는 바람에 딸아이와 헤어졌는데, 당시 아이와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정말 힘들었다.

이때 우리 딸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였는 데 날 보고 엄마 내가 몇 살이 되면 엄마한테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어? 그럼 그때 내가 버스 타고 엄마 찾아갈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이후 세월이 한참 흐르고 어떤 방법이 됐든 우리 딸을 다시 데려오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아무튼 지금은 딸과 함께 살고 있고 서로가 친구처럼 아주 잘 지내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남편의 사업 실패로 15년간 빚만 갚아 나갔던 그녀였지만, 아내의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아주고 싶었던 남편 김동현의 배려 덕분에 딸과 다시 재회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남편의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 사건 연루로 나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밤낮으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오로지 돈만 벌었다. 지금껏 날린 집만도 모두 다섯 채다. 그리고 사채업자들이 수시로 나를 힘들게 몰아세우고, 집이 한 채씩 날아갈 때는 나도 그만 하늘로 가려고 준비하곤 했다.

그렇게 평생 종종거리며 살아왔지만, 남편의 빚을 아직도 다 청산하지 못한 상태다. 결국 이혼했고 법원에서 도장 찍고 나오는 데 정말 신기하게 눈물도, 화도 안 나고, 너무 무덤덤하더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런데 지금도 아직 답이 안 나왔다. 남편은 일할 때 먼저 의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다 사건이 터지면 언론이나 소문을 들은 지인들이 통해 나에게 알려주곤 했다. 그게 너무 답답해서 제발 무슨 일할 때는 얘기를 좀 해달라라고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판사 앞에서 저는 보증을 잘못 선 죄밖에 없습니다라고 얘기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황당해서 `보세요. 보증이라는 뜻을 몰라요? 그 사람이 잘못했을 때는 내가 대신 그 사람의 일을 하겠다는 약속하는 건데, 그걸 왜 한 번도 아니고 수도 없이 하는 건가요?’ 그러기도 했었다.


지난 30년 세월, 손꼽을 수도 없을 만큼 참 많은 사건 사고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큰 소리 내며 싸운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남편을 이해하려 했었다. 일하다 보면 잘못될 수도 있고 처음부터 무언가 잘못되게 하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실 김동현 씨는 정말로 선해서 남을 해코지할 사람은 절대 아니다.

다만 귀가 너무 얇아서 자꾸만 안 좋은 일들에 휘말렸던 것 같다. 남편이 법정에 섰을 때,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내가 어떻게 아무런 도움도 못 되었나 싶어 자책감도 들었었다. 그리고 이혼도 남편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당신을 볼 낯이 없고 이제는 정말 미안해서 더 이상 당신을 잡지도 못하겠다.’라고 하더라. 이제 과거에 내가 어떠했는지 필요 없는 이야기다. 현재와 미래에 내가 있을 뿐이다. 앞으로 나의 꿈은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 돼서 노래만 하다가 하늘로 가는 거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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