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표 여가수의 충격 근황 아들 잃고 칠성파 행동대장과 재혼 후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1979년 가요계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이영화는 “실비 오는 소리에”로 데뷔해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80년대 대표 가수였습니다. 그녀가 한창 잘나갈 때는 당시 최고의 여가수였던 나미, 방미, 계은숙 등을 제치고 그녀가 1980년 10대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81년에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로 국제가요제에서 빌보드상, 휘더프상 등을 수상하며 그렇게 1980년대 초반에 유행하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가수였습니다.

이처럼 대중 앞에 노래 부르는 가수로서의 이영화의 삶은 한 점의 티끌도 없이 꽃길만 이어질 것 같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비밀로 해야만 했던 그녀의 가정사가 오래 지나지 못해 탄로 나면서 가수 이영화의 삶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방송에서 갑자기 사라져야 했고 그 아름답던 꽃길에서 맨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한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귀한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은 엄마 소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먼저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후 아들을 잃고 무너져버린 그녀의 삶에 서방파의 김태촌의 소개로 영화 친구 장동건역 실제 인물인 칠성파의 행동대장 정병화와 재혼을 해야 했던 가수 이영화 그녀의 온몸으로 버텨온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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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린시절과 결혼

이영화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기 전 태몽으로 자신의 어깨에 참새가 앉아 잭잭하는 모습을 꿨고 노래를 잘하는 아이가 나올 거라 예상했습니다. 그렇게 1952년에 태어난 이영화는 아니나 다를까 어린 시절 못하는 노래가 없었으며 그리고 누구보다 노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별다른 반대 없이 그녀 역시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사업에 실패하면서 아직은 어린 나이의 그녀였지만 집안의 가장이 되어 밤무대에 나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한편 그때 그녀는 너무나도 어린 나이에의 밤무대 업소에서 음악을 같이 하는 첫 번째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그렇게 아이를 가지며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당시만 하더라도 아기 엄마가 가수가 되어 tv에 나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렇게 그녀는 엄마가 되면서 자연스레 가수의 꿈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결혼 사실을 숨긴채 가수 데뷔

그러나 당시 그녀의 스승이었던 작곡가 전재학이 “네 목소리와 가창력이 아깝다.”며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고 그냥 처녀라고 속이고 데뷔를 해보자”라며 그녀에게 권유했고 그녀 또한 자신을 키워준 스승의 말만 믿고 그렇게 자신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실비 오는 소리에”라는 노래로 본격적인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앞서 얘기한 대로 1980년대 초반 시대를 대표할 만큼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대표 가수가 되었으나 그녀의 인기가 절정일 때 한 잡지사에서 이영화는 사실 애 엄마라는 사실을 폭로하게 됩니다. 결국 아기 엄마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는 최정상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으며 주위에서는 “이영화가 아기 엄마래”라며 수근 거렸고 그렇게 그녀의 인생이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혼 그리고 빚더미

결국 방송에서 이영화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그렇게 갑자기 사라지니까 사람들은 “이영화가 끝내 은퇴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가정 역시 온전치 못했는데 한창 가수로 활동할 때도 그녀의 아들은 엄마 소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며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 했고 남편 또한 어디 가서 “이영화 남편입니다”라고 떳떳하게 얘기를 못하다 보니 나름대로 속앓이하며 가정을 등한시한 채 밖으로만 맴돌아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그녀의 남편은 이영화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면서 어음 발행을 너무 난발하게 되었고 그때 당시 건당 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그녀가 지게 됩니다. 이 빚은 훗날 그녀가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었고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앉으며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지만 그녀는 철없던 시절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이라 생각하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이혼하고 방송에서도 사라진 그녀는 고단한 현실에 치여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웠지만 그래도 그녀가 고단한 하루를 온몸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하늘나라로 간 아들

또한 “날이 날이 갈 수록”이라는 노래로 가수로서도 재기에 성공하며 이후 현실에 묵묵히 최선을 다했던 그녀에게 다시금 새로운 꽃길이 펼쳐지나 했지만, 이번에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 같은 그녀의 아들이 너무나도 이른 나이인 29살에 심근경색이라는 병으로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그때 당시 아들이 작곡 공부를 하겠다고 혼자 자취했는데 하필 지하의 방을 얻었다. 아무래도 담배도 피우고 그랬을 텐데 지하실이다. 보니 공기가 잘 안 통했을 테고 그런 게 밖으로 안 나가고 그러면서 몸에 해로운 것들이 쌓였는지 급작스럽게 병이 도진 거다. 그리고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못 한다.

본인 자신만이 알 수 있으며 그 아픔은 옆에서 아무리 같이 아파해져도 그건 모른다. 지금도 자다가 애 생각이 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그날은 잠을 못 자는 거다. 그리고 잊지 못해서 떠난 사람 사진을 본다는데 나는 사진도 못 본다. 지금도 앨범 속 사진을 보다가 애가 나올 것 같으면 얼른 덮어버린다.

왜냐하면 그걸 보면 또 한참 멍하게 있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떠난 사람 사진을 본다는지 내가 잘못된 건지 나는 도저히 그걸 이해를 못하겠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가 tv도 잘 안 본다 tv 속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애들이 나오면 쟤는 저렇게 훌륭하게 컸는데 바보같이 너는 왜 갔냐. 우리 아들은 왜 일찍 갔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보고 싶지 않아서 화면을 돌리다가 이제는 아예 안 본다.”고 했습니다.

칠성파 행동대장 정병하와 재혼

한편 그렇게 아들을 잃고 모든 의욕을 잃어 주저앉은 그녀에게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영화 친구의 장동건 역 실제 인물인 칠성파 행동대장 정병하였고 그는 당시 형님이었던 김태촌의 면회 때문에 형수였던 이영숙을 자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영숙이 이영화를 소개해 준다고 했고 예전부터 이영화의 팬이었던 정병화는 무조건 좋다고 했으며 그러나 아들의 죽음으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이영화는 이런 상황에 무슨 남자를 만나나 싶어 한 번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지인들이 정병화 그가 정말 좋은 사람이고 그 사람 놓치면 큰일 난다라며 적극 권유했고 그래서 호기심에 그와의 소개팅에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만나보니 처음엔 살짝 무서웠지만 대화하다 보니 당시 웃음을 잃고 살던 그녀에게 재밌는 이야기로 많은 웃음을 안겨주었고 그렇게 계속 만나면서 웃다 보니 우울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를 남편 정병하가 고백하길 “나는 대한민국에서 나쁜 짓은 다 해봤다. 오죽하면 암흑가에서 가기 싫은 곳 교도소에서도 남들은 그 안에 가면 다 개가 천선에서 나오는데 나는 거기서도 하지 말라는 짓은 다 해서 독방에도 갔다. 그렇게 인생을 자포자기 했고 살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하나하나 성숙해지니까 내가 살아온 게 이렇게 살아왔구나라고 후회가 되면서 제대로 살고 싶었다. 이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자 아내를 위해서 살자라며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이영화의 재혼 조건

그렇게 이영화 그녀는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남편의 고백에 하나의 조건을 내걸게 되는데 바로 조직 생활을 정리하고 신학대학을 졸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전에 그런 삶을 다 접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겠소”라고 남편에게 제의하자 그녀의 남편이 한 3일 정도 망설이다가 “신학대학 그럼 내가 갈게”라고 약속했고 그렇게 남편과의 약속을 얻은 후 그녀는 남편을 믿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때를 남편 정병하가 고백하길 “아내를 얻기 위해 신학대학에 들어가서 6년이란 세월을 공을 들였다. 그런데 신학대학에 들어가서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극과 극의 세상이었다. 내가 사는 데는 마귀굴이고 저기는 천국이라 하면서 찬송가를 부르는데 학생들이 춤을 추면서 울고 하길래 이상한 사람들 세상에 내가 왔구나 싶었다.

하지만 신학대학을 나온 후에는 예전에 나쁜 마음이 80%였다면 지금은 좋은 마음이 80%다.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한 번씩 욱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런 건 이제 마음으로 다스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희생은 가장 큰 사랑인 것을 깨닫게 해준 두 사람은 서로 얼굴만 봐도 행복한 부부로 늦은 만큼 더 많이 사랑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하늘에 있는 아들과 딱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이라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하길 “딱 하루만 봐야 한다면 그 하루를 안 봤으면 좋겠다.

하루를 보고 나면 또 어차피 없어질 건데 안 봤으면 좋겠다는 심정이고 그래도 정말 딱 하루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리 아들하고 지금의 남편하고 같이 손잡고 아들이 가고 싶은데 가고 싶다. 남편이 아들을 참 좋아하는데 만약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자기도 아들이 생겼다고 하면서 아마 아들한테 엄청나게 잘했을 거로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 남편은 힘들고 고됐던 나의 삶 속에 다시 웃을 수 있게 하늘을 보내준 선물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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