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상금도 못 받고 억울하게 결국….” 해외 오지 촬영 갔다가 뇌사한 배우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우리 곁에는 곳곳에 안전불감증 때문에 다치고 때로는 목숨을 잃는 예가 종종 있습니다. 1999년 도전 지구탐험대 촬영을 다녀온 후 말라리아로 목숨을 달리한 김성찬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배우 김성찬은 도전 지구탐험대 출연 섭외를 받아서 오지 촬영을 하러 갔다가 말라리아균에 감염되었고 4주 만에 세상을 떠나며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오늘은 촬영하다가 유명을 달리한 배우 김성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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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데뷔와 활동

배우 김성찬은 1954년 10월 8일 인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선인고등학교 2학년 재학, 당시 연극부에서 활동하며 연기력을 다졌지만, 부모님이 심한 반대를 겪습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연기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했던 김성찬은 결국 가출까지 감행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가출을 한 후 노무자 합숙소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연기 연습했고 동시에 돈을 벌기 위해 구두닦기, 식당 종업원, 막노동 등 온갖 직종을 전전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초기에는 YMCA 탈극단, 민중극단 등 여러 연극 무대를 거치다가, 1973년 MBC 공채 6기 탤런트로 선발되어 데뷔합니다. 김성찬의 동기였던 유인촌, 임채무, 오미연 등은 단번에 스타 반열에 오르며 주연 자리를 꿰찼지만, 김성찬은 기대와는 달리 처음부터 비중 있는 역할은 맡지 못합니다. 김성찬은 주방장, 광대, 나팔수, 구두닦기 등 온갖 역할을 전전하며 단역과 조연을 넘나들었습니다. 특히 MBC 베스트셀러 극장에선 거의 단골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습니다.


그렇게 작은 비중의 역할만을 전전하다가 김성찬은 1980년 이장호 감독의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안성기의 친구 길남 역을 맡아 첫 주연을 맡았습니다. 그 이후 1982년 MBC 드라마 시장 사람들에 출연하여 비로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렸습니다. 그 이후 김성찬은 1989년 무풍지대에서 인기를 얻은 후 이듬해에는 나연숙 작가에 눈에 띄어 야망의 세월에 출연해 유인촌 등 굵직굵직한 배우들 사이에서 감초 연기를 구사했습니다.

주로 코믹연기를 전문적으로 담당했습니다. 그 외에도 1982년에 고향 인천에서 극단 항아리를 창설해 연출까지 겸하여 연극 제작에 열성을 기울였습니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무대를 가리지 않고 그의 연기 사랑은 나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준비없이 급하게 제안받은 오지 촬영

그렇게 날이 갈수록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김성찬은 1999년 KBS 도전 지구탐험대 외주 제작사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았습니다. 원래 출연하기로 했던 연기자가 일정에 차질을 빚어 출연 못하자, 담당 피디가 급히 출연을 부탁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김성찬은 대구 교통방송에 고정 출연 중이었습니다. 급하게 연락해 온 섭외 요청에 그의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일 뻔했고 제작 환경이 열악해 거절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제작진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쁜 일정에 여유가 부족했지만 혼란해 하는 제작진을 두고 볼 수 없어 급하게 섭외에 응했다고 합니다. 훗날 부인 장정희는 급하게 요청이 들어왔던 섭외 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이 출연 섭외를 받은 것은 라오스로 떠나기 3일 전이었어요. 당시에 대구 교통방송 출연을 했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서울과 대구를 매일 왕복을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든 극단 ‘항아리’가 공연할 연극 ‘옥려전’ 준비 때문에 무척 바쁜 상태였죠. 하지만 오랜 친분이 있는 제작진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어요. 그 사람이 원래 ‘김성찬 씨가 꼭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말만 들으면 어떤 역이든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촬영 이후 갑자기 쓰러진 이유

출국 3일 전에 섭외의 연락을 받은 그는 출발할 때부터 위험을 안고 있었다고 합니다. 정글 풍토병인 말라리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 전에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성찬은 급하게 섭외에 응했을 뿐이고, 당시 제작진은 하루아침에 오지 행을 결정한 것이 아니니, 일주일 전에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촬영 일정을 연기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촬영은 애초에 예정되었던 대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성찬은 라오스 남부 도시 탁세에서 버스로 24시간 거리에 있는 태국 라오스 접경지역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원주민 거주 지역에서도 황열 말라리아 등 풍토병에 대한 예방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혹시 병에 걸릴 때를 대비한 대비책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지에 도착한 후 꽤 오랜 시간을 걸어 오지에 들어갔지만 원래 만나기로 했던 원주민들이 자기 마을에서 이미 떠난 상태라서 김성찬은 촬영까지 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10월 2일 귀국을 하게 됩니다. 귀국 후 김성찬은 여느 날 같은 촬영을 이어 나갔고 매일 하던 대구 교통방송 라디오 출연 도중 실신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0월 6일 대구에 있는 병원에 실려 간 후 과로라는 진단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김성찬은 알려진 대로 평일에는 대구교통방송 라디오에 출연하기 위해 서울과 대구를 매일 왕복 중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배우 겸 연극 제작자로 자신이 만든 극단 항아리에 연극 준비까지 했던 바쁜 생활을 이어 나갔기 때문에 과로라는 진단명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갔습니다.

그래서 김성찬은 진단을 받아들이고 인천 자택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던 11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져 세광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혈액 검사 결과, 말라리아 감염으로 밝혀져 인하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인하대 병원으로 그가 옮겨졌을 때는 말라리아 원충이 이미 뇌까지 퍼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10월 27일에는 뇌사 판정받았습니다.

전문의의 의견으로는 말라리아가 뇌까지 침투하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 상태까지 가면 살아날 확률이 불과 2~5%고, 만약 살게 되더라도 100% 식물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11월 7일 오전 향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후사도 남기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여행자 보험도 없어 보상도 못받는 상황

이후 유족들은 KBS와 책임 논쟁으로 대립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두고 동료 연예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막말로 개죽음 아닙니까? 오지 촬영가면서 예방접종도 못 받고 여행자 보험처리도 안 해줬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필요할 때만 연예인 부르고 그러다가 곤란한 일이 터지면 나 몰라라 하는 게 방송국이란 곳입니다.”

그의 말대로 KBS는 김성찬의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KBS 측은 도전 지구 탐험대는 외주 제작사를 통해 제작되는 프로그램입니다. KBS는 촬영이 완료된 프로그램을 보고 계약을 체결해 왔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고 역시 계약 체결 이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KBS는 전혀 책임이 없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고인 사망 2년 전도전 지구탐험대팀`은 이미 피디와 카메라맨이 현지 촬영 중 말라리아에 걸린 적이 있다고도 알려졌습니다. 사전 예방 대책이 절실했으나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아 또 다른 사고를 불러왔다는 사실이 대두하여 논란이 되었습니다.

사고가 이미 일어났음에도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았고,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았던 사실 때문에 어느 보상 하나 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제작사 측에서 주장하기를 ‘김성찬이 공항에 늦게 도착해 수속 절차에 신경 쓰느라 여행자 보험에 미처 가입하지 못했다’라고 합니다. 보험 가입 절차가 넉넉히 10분이면 완료가 되는데도 절차를 완료하지 않아 아무 보상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많은 논란의 프로그램 해지 요청이 이어지는데도 방송사와 제작사는 시청자들의 요청을 무시했습니다.

결국 프로그램 폐지

2005년 정정아가 아나콘다에 몰리는 장면이 전파를 타고, 김성찬 사건이 재조명받으며 또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되자, 결국 프로그램은 폐지 절차를 밟았다고 합니다. 일련의 이유로 프로그램 출연 섭외에 응하지 않다가 평소 친분이 있는 제작진이 곤경에 빠진 것을 모른 채 하지 못했던 김성찬 씨. 평소 정이 많았던 탓에 조금이라도 도움 되고자 했던 선한 마음으로 출연하게 되었지만 이런 결과를 맺어 참 속상하기만 합니다.

그가 사후에도 방송국과 제작사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고 결국 유가족들은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인을 떠나보낸 슬픔으로 달래야 했습니다. 김성찬 사건으로 방송계는 출연자와 제작진의 안전에 경종을 울렸다고 합니다. 오늘날처럼 안전 문제가 크게 개선된 것은 고인의 사망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전 의리와 정이 넘치는 배우였던 그가 떠나고 나서도 동료의 처우 개선에 이바지한 샘까지 되어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스러운 일 없이 좋아하시는 연기에 꿈 마음껏 펼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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