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 단순 감기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 만에 폐와 뇌 기능 정지로 결국…” 안타까운 그의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3년째 계속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아직도 연일 많은 확진자를 내고 그중 수십 명은 세상을 떠나는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전염병은 코로나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습니다. 2009년에는 멕시코에서 등장한 신종플루로 배우 이광기가 6살 아들을 잃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단순 호흡기 질환인 줄 알았다가 아들을 떠나보내 전 국민이 함께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는 메르스, 2002년에는 사스가 발생하며 범세계적인 공포를 일으켰습니다. 가수 김환성은 NRG의 원년 멤버로 많은 사랑을 받던 중 갑작스러운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가 그대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그가 병원을 찾기 전 이성진은 병원 방문을 말렸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치료의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김환성이 세상을 떠난 후 NRG 멤버들은 불화까지 겪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체 김환성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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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NRG는?

독보적 인기를 누렸던 HOT를 견제하기 위해 결성되었다는 보이그룹 NRG는 97년 10월에 데뷔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NRG의 원년 멤버는 하모하모로 호흡을 맞췄던 이성진과 천명훈, 연습생 겸 백댄서였던 노유민과 문성훈, 그리고 깨비깨비 해체 후 영입된 김환성으로 구성되었습니다.

NRG는 80~90년대를 대표했던 아이돌 소방차의 멤버 정원관과 김태영이 함께 야심 차게 프로듀싱한 그룹이었습니다. 이들은 데뷔 초 꽃미남, 귀여운 콘셉트로 강한 느낌의 기존 1세대 아이돌과는 차별화를 두었습니다. hot, 젝스키스 그리고 GOD, 신화 등 많은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 중 신화와 더불어 팀 활동을 오래 장수 아이돌 그룹이었습니다.

NRG는 애초에 기획했던 것처럼 hot의 라이벌이 되지는 않았으나 다음 세대 아이돌인 태사자, 클릭비 등과 경쟁하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NRG는 데뷔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아, 한 사건으로 큰 위기를 겪게 됩니다. 바로 비주얼 멤버이자 서브 보컬이었던 김환성을 잃은 사건입니다.

김환성의 데뷔

1981년생 김환성은 미국 시카고 유학준비 중 우연히 참가한 오디션에서부터 깨비깨비의 멤버로 야심차게 데뷔했습니다. 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대니안, 손호영, 슈와 함께 4인조 혼성 그룹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슈가 SM에 캐스팅되어 나가고 불안하던 찰나 천명훈의 제안으로 NRG 오디션을 보고 결국 NRG의 멤버로 다시 데뷔했습니다.

그는 활동 당시 부드러운 미성과 뛰어난 춤 실력, 머리띠가 잘 어울리는 곱상한 외모로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외모뿐 아니라 마음마저 고아 아이돌계에서도 소문난 마당발로 통했습니다. 라이벌로 불리던 아이돌 HOT, 젝스키스, 신화 등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문희준과는 스키장을 함께 다니면서 시간을 보냈고 강성훈은 솔로 앨범에서 그를 언급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습니다.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거기다 성격까지 좋았던 김환성은 NRG 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장래가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감기인줄 알고…

하지만 어느 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감기 증상을 발단으로 그의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2000년 6월 6일 김환성은 노유민에게 “목이 아프다. 감기에 걸린 것 같다.”라고 말하며 병원에 갔습니다. 별생각 없이 갔던 병원에서 그는 입원 통보를 받았는데, 이때 이성진이 무슨 사내자식이 감기로 입원까지 하느냐?라며 놀릴 정도로 모두 처음에는 단순한 감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김환성은 3일 후 퇴원하며 입원 소식에 놀랐을 팬들에게 음성 메시지로 일상 이야기를 남기며 안심시켰습니다. 그날 밤 급격한 고열과 호흡 곤란 증세로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 의식이 있었던 당시 김환성은 감염에 대한 진단을 듣고 누나한테 “누나! 나 죽는 거야?”라며 절망했다고 합니다. 김환성은 중환자실로 옮겨진 후 체내 산소농도 급락과 세균 침투로 병세가 극도 악화하여 인공 폐를 설치하는 응급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그 후 김환성은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의 폐와 뇌 기능이 저하되어 있었고 회생 가능성조차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이에 가족들은 ‘그를 계속 붙잡고 있어 봤자, 힘들게 할 뿐이다’라고 생각해 산소호흡기를 떼어내고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6월 15일 새벽 그는 19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그의 사인은 상세 불명의 급성 바이러스성 호흡기 증후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의 사인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중국의 ‘사스’와 ‘조류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며 ‘김환성이 사스로 세상을 떠난 것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NRG가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는 것과 사스의 증상이 비슷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중국에서 사랑니 발치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 치과 의사가 도구의 소독을 소홀히 하여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김환성은 이미 화장된 이후였고 특별히 채취되어 있는 검체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의혹으로만 그쳤습니다. 향년 19세라는 어린 나이의 비보를 들려준 그의 소식에 연예계는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애도

갑작스러운 그의 비보에 동료 가수들은 한달음에 달려와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수년간 그와 함께했던 NRG 멤버들은 목놓아 울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깊은 슬픔만이 가득했습니다. 2018년 NRG 멤버들은 방송에서 김환성을 언급하며 잊고 있던 그 이름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비디오스타에 출연한 천명훈, 노유민, 이성진, 문성훈은 여전히 그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천명훈은 “모든 게 환성이의 선물 같아요. 지금까지 이렇게 뭉쳐 있는 게….”라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김환성이 멤버들에게 준 선물은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향년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환성, 너무 일찍 져버린 꽃에 많은 이들이 아직도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유민은 매년 김환성의 생일이나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가 잊히지 않도록 SNS에 그리워하는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김환성을 기리며 추모글을 남겼습니다. 아직도 그를 추억하고 있는 노유민의 모습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김환성이 있는 그곳에는 어떠한 아픔 없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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