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스타 트럭과 정면충돌 사고 “얼굴에 끔찍한 상처 입고 은퇴”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출중한 외모와 똑똑한 머리에 공부에도 소질이 있는 원조 하이틴 스타 배우 조용원을 알고 계시는가요? 남다른 미모와 매력으로 80년대를 대표하는 원조 하이틴 스타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도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고 조금은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것들을 가지고 태어난 그녀는 대체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야 했을까요? 그리고 최근 한 방송에서 조용원 씨를 애타게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끝내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유난히 운이 없었던 배우 조용원 씨의 인생 스토리와 더불어 최근 그녀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알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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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아마 많은 분은 배우 조용원 씨의 불운하면 대부분 비운의 교통사고를 떠올리실 것 같습니다. 또한 조용원 씨의 불운은 단지 이것 하나만은 아니었습니다. 첫 번째로 그녀가 겪은 불운은 어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1966년 조용원 씨는 교수인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교육자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은 잘못 알려진 사실입니다. 원래 그녀의 어머니는 집에서 가정을 돌봤고 아버지만 교수 일을 하셨는데 조용원 씨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 이후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어머니는 할 수 없이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난 조용원 씨는 아버지의 부재와 홀로 밖에서 일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남동생을 바라보며 어릴 때부터 막중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배우의 길을 선택한 이유

학창 시절 조용원 씨는 교육자셨던 부모님의 유전자 덕분인지 굉장히 두뇌가 명석하였고 공부도 곧잘 하였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걸스카우트 선배 언니들을 따라서 미스롯데 선발대회에 방문했다가 당시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얼떨결에 응모 원서를 쓰고 참가하게 됩니다.

아마도 조용원 씨의 청순한 외모가 눈에 띄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녀는 그 대회에서 미스롯데 인기상을 수상하게 되고 배우가 될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그녀는 공부 쪽으로도 굉장히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연예인이 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장이었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게 됩니다. 그녀는 “저희 어머니가 밖에서 일하시는 거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고 미스롯데를 나가기 1년 전쯤에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며 굉장히 아프신 적이 있었다.


무슨 병명인지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 몸이 많이 부어올랐고 병원에서도 고치기 어렵고 입원비도 모자란다고 나가라고 해서 나간 적이 있었다. 그걸 보고 왠지 나는 빨리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스롯데 인기상을 받고 바로 아역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라며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이유를 밝힌 적이 있습니다. 즉, 조용원 씨는 처음부터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로지 아픈 어머니를 도와 돈을 벌기 위해 배우가 된 것입니다.

아역 배우 생활을 시작한 어린 조용원 씨는 그때부터 한 집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초등교사 일을 그만두고 조용원 씨의 매니저 일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조용원 씨는 그 당시 “가장으로서 어깨에 짐을 짊어줬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단지 가족들을 위해서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라며 당시 심정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트럭과 정면충돌 사고

한편 어린 조용원 씨를 케어하고 관리하기 위해 어머니가 매니저가 된 것은 좋은 점도 많았지만 반대로 안 좋은 점도 많았습니다. 전문 매니저가 아니었기에 촬영장에서 대처가 미흡하였고 스케줄을 잡는 부분에 있어서도 미숙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정에 이끌려 거절을 잘하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의 성격상 조용원 씨가 원하지 않는 일까지 계약을 해버려 가끔씩 그녀와 갈등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조용원 씨가 전성기를 맞이할 무렵 불운한 사고를 겪게 됩니다. 어머니가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차를 운전하고 가던 도중 마주 오는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운전석에 있던 어머니는 전치 3주 부상을 입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조용원 씨는 차 밖으로 튕겨 나가 전치 10주라는 크게 다치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배우에게 가장 소중한 얼굴까지 부상을 입어 왼쪽 눈썹이 이마에만 50바늘을 꿰매야 했습니다.

그녀는 “교통사고 당시 몸을 많이 다쳤기 때문에 얼굴 다친 것은 신경을 쓸 수 없었다. 얼굴을 먼저 치료해줘야 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 신경이 끊어지면 팔을 못 쓴다. 다리를 못 쓴다.라고 해서 다른 데 먼저 고치다 보니까 얼굴 피부에 대한 치료가 늦어졌고 나중에는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어 흉터가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당시 사고를 당한 조용원 씨는 무려 10개월간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육체적인 고통을 겪었을뿐더러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큰 정신적 고통도 겪었습니다. 차를 타다가 경미한 사고만 나도 그 충격이 남는데, 트럭과 정면충돌한 큰 사고를 당한 조용원 씨는 얼마나 정신적 충격이 컸을까요?

사고로 많은 것을 잃고..

조용원 씨는 이 사고로 인하여 정말 많은 것들을 잃게 됩니다. 일단 조용원 씨가 출연하였던 영화 땡볕은 당시 베를린 국제영화제 본선에 진출하여 할리우드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큰 인기가 있었습니다. 조용원 씨는 이 엄청난 기회를 날리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강수연에게 베니스 여우주연상을 안기며 그녀를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씨받이의 원래 주인공은 강수연 씨가 아니라 조용원 씨였다고 합니다. 훗날 임권택 감독은 전작에서 호흡을 맞춘 조용원을 일찌감치 씨받이의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고를 당하여 강소연 씨를 섭외한 비하인드를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조용원 씨에게는 여러 작품과 광고 제의도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날아간 것입니다. 조용원 씨는 모든 치료를 마치고 다시 컴백하였지만 다시 예전처럼 활동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길거리나 촬영장에서 사람들은 나의 얼굴 흉터에 유난히 관심을 가졌다. 자연히 나는 언론 기피증과 대인기피증 같은 것이 생겼다.

또한 파파라치처럼 내 얼굴에 상처 한쪽 사진을 찍어 잡지에 내는 사람도 있었다. 방송 관계자들도 너 왜 흉터가 안 없어지냐?라며 마음의 상처를 많이 주었다. 잊으려고 하면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너무 무서웠다.”라며 당시의 아픔을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고작 스무 살밖에 안 된 소녀가 저런 일을 겪으면 얼마나 큰 상처와 충격을 받았을까요?

시련의 연속

이후 조용원 씨는 모든 것을 접고 일본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을 찾기 위해 떠났던 일본 유학 생활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워낙 공부의 흥미와 소질이 있었기에 일본에서의 유학 생활은 그녀를 만족시켰습니다. 조용원 씨는 당시 일본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는 것이 너무나 재밌었고 유일한 도피처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일본에서 대학 공부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던 그녀에게 또 한 번 불행이 찾아옵니다. 조용원 씨는 유학 시절 도쿄에서 점을 보았는데 “제가 앞으로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더 당한다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이미 한국에서 팔, 다리의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다쳤는데 교통사고를 또 당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그 점괘대로 일본에서 3번의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때 다시 얼굴도 심하게 다치게 되었어요.”라며 당시에 불응했던 일을 털어놓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조용원 씨는 알아보는 사람이 없던 타국땅이었기에 얼굴에 상처가 났더라도 마음만은 편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한국의 막냇동생으로부터 어머니가 아주 아프다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조용원 씨의 어머니는 극심한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앓고 계셨고 잘못된 약 부작용으로 인해 증상이 더 악화하였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조용원 씨는 이따금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어머니를 보며 큰 걱정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조용원 씨는 다시 활발한 연예인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치료비를 벌기 위한 이유도 있었겠습니다. 이후 일본에서의 유학을 바탕으로 일본어 교재를 출판하기도 했으며 큰돈을 투자하여 뮤지컬 제작자로 나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서 실패하게 됩니다. 조용원 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사업들을 추진하였으나 아직 성공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사업이 배우보다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꿈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돈이 없는 게 낫지 않나요?”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도전할 것이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 근황

지난 SBS 불타는 청춘에서 조용원 씨는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스타 첫 번째로 뽑히며 큰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원 씨는 지인을 통해 현재 병원에서 아픈 어머니를 돌보고 있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꺼린다라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아마 이후의 제작진들에게도 이런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분명 현재 조용원 씨는 오래전부터 고통을 호소하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무엇보다 최우선이었을 것입니다. 부디 그녀의 어머니도 쾌차하시고 조용원 씨도 하루빨리 좋은 소식을 전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방송에 나오지 않더라도 앞으로 조용원 씨에게 좋은 일들만 가득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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