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박은수 또 속아 넘어갔다! “급기야 잠적 15년 만에 각설이까지”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생각도 못 한 화가 오히려 복이 될 수 있고, 반대로 복이 화가 되는 등 인생사의 길흉화복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심오한 의미를 우리는 새옹지마라고 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배우 박은수 역시도 한때는 온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으나 전원일기가 끝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 단 7개월 만에 50억을 날리고 그런 와중에도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을 만나 집도 얻고 사무실도 얻었지만, 또 다시 속아 넘어가 무려 2번이나 큰 집에 가야만 했던 박은수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각설이
👉”전원일기 시절 김수미는 김혜정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 보세요.

배우가 된 계기

1969년 23살의 젊은 박은수는 아직 TV에는 출연하지 못했지만 나름 연극계에서는 떠오르는 인물로 주목받고 있었고 그러다 하루는 연기 선생님이 박은수를 불러 “MBC라는 방송국이 생기는데 거기에서 탤런트 1기생을 뽑는다고 하더라. 너도 언제까지 연극만 할 수 없으니 이번 기회에 시험을 한번 보라.”라며 그에게 탤런트 시험을 권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과거 탤런트 시험에 응시했다가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시험에 대한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TBC에서 공채 탤런트를 뽑는다고 해서 그간 연극만 하던 그도 시험을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그런데 가보니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자신의 차례가 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어 시험을 보는데 당시 심사위원들이 배우를 뽑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그에게 노래나 한번 해봐라고 하자, 그는 속으로 이런 미친 뭐 하자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그냥 그 자리를 나오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경험 때문에 시험을 권유받아도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나 당시 선생님이 “1기생은 특별하다. 그러니까 꼭 시험을 봐라.”라며 거듭 강조하자, 결국 그 1기생이라는 말에 혹해서 박은수도 MBC 탤런트 시험장으로 향하게 됩니다. 이처럼 선생님의 권유1기 탤런트라는 타이틀이 욕심나 시험장으로 갔는데 지원자들이 얼마나 많던지 거기에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또한 어쩜 그렇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만 모여 있던지 본인이 가장 찌질하고 못생겼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험도 보지 않고 그냥 돌아갈까 했는데 같이 간 친구가 이왕 왔으니 원서라도 내고 가자라고 하여 시험을 보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문을 통해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니 자신의 이름이 있었고 결국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전원일기 촬영하게 된 계기

이후 약 5년간의 무명 생활을 겪다가, 1980년 지금의 박은수를 잊게 해준 전설의 드라마를 만나게 됩니다. 청년들이 가난을 떨쳐버리려 도시로 몰리고 시골에는 나이 든 분들만 남았던 시절, 우리의 가슴을 적셔주던 전설의 드라마 전원일기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사실 전원일기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드라마라고 생각 안 했다. 당시 일용이라는 배역을 하라고 연출자와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길래, 일용이가 뭔가 봤더니 김 회장 댁 옆집에 사는 그저 그런 배역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나름 좋은 배역을 많이 하고 그럴 때인데 이게 뭔가 싶어 반갑지 않게 얘기했다. 또한 어머니가 김수미 씨였는데 미안하지만, 그때 김수미 씨는 그냥 그랬다. 그래서 결국 연출자에게 여러 가지로 선뜻 내키지 않게 말씀을 드렸더니 연출자가 이건 수필 드라마라 얼마 안 나가니까, 아무 소리 말고 그냥 하라.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전원일기에 출연하게 되었고 그의 예상대로 드라마가 초기에는 시청자들의 호응도 별로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돼서 작가가 바뀌더니 그때부터 본격적인 드라마다운 드라마가 되게 됩니다.

박은수와 ‘일용이’

한편 젊은 시절 그는 성격이 다혈질인데 얘기한 대로 드라마에 출연할 때부터 내키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에 당시 제작진들은 박은수가 언제 그만둘지 모르니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일용이라는 캐릭터를 언제든지 배 타러 갈 수도 있고, 서울로 나갈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설정해 놓고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박은수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도 일용이를 좋아해 주니까 결국 김 회장댁 못지않은 많은 사랑을 받는 배역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김 회장댁이 화목하고 여유로운 대가족의 이상형으로 그려졌다면, 일용이네는 한 부모 가정이자 소작농 처지에 어려움이 부각돼, 외려 시청자들에게 남 일 같지 않은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는 일용이라는 캐릭터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참 신기하게도 실제 박은수의 불같은 성질과 극 중 일용이의 성격이 점점 비슷해지더니, 결국 나중에는 거의 일치의 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당시 작가가 평상시 박은수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해 인물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호프집으로 전재산 50억을 날리고…

전원일기가 끝난 이후 박은수의 삶은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은 아는 건물 주인이 부업으로 술집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라고 하자, 그냥 편한 마음으로 보러 가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400평이나 되고 너무 넓어 못 하겠다고 했는데 건물 주인이 월세는 주고 싶은 대로 줘도 되니 계속해서 해봐라.라고 권유하자, 순진했던 그는 이게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덜컥 계약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계약 후 인테리어하는 데도 돈이 엄청나게 들어갔습니다. 그는 평생 연기만 해왔지, 술장사를 전혀 할 줄도 몰라서 당시 아들을 호프집 사장으로 앉혀놓고 장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당시 그의 술집은 워낙 평수가 넓어서 아르바이트생들도 많고 가수들도 5~6명씩 매일 와서 노래를 부르고 했으나 그게 돈이 새는 건 줄도 모르고,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단 7개월 만에 현금 50억이 날아갔다고 했습니다. 결국 평생 모은 돈을 다 날리며 술집 문도 닫고야 말았습니다.

사기에 고소까지…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 크게 왔으며 그런 와중 어떤 선배 1명이 바람이나 셀 겸 필리핀에 갔다 오자고 하자, 그 선배와 함께 필리핀으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또 한 사람을 소개받게 되는데 그 사람이 뜬금없이 자기 아들이 현재 조 감독을 하고 있는데 아들을 데리고 영화사를 한번 해보자라고 했고, 그러자 그가 현재 자신은 술집 하다가 전 재산을 다 잃어서 현재 돈이 하나도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돈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게 어차피 자신들 쪽에 1조에서 2조가 있다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그를 설득했고 그래서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한국에 와서도 계속해서 연락이 와 결국 또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청담동 80평짜리 건물에 영화사 사무실 인테리어를 하게 되는데, 이때도 이 사람이 돈 걱정하지 말래서 믿고 인테리어를 끝냈는데 하지만 1년이 넘도록 인테리어비를 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난 박은수가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고 따지자, 그 사람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뿐, 돈을 주지 않았고 그래서 인테리어 업자들이 결국 박은수를 고소하면서 재판받게 됩니다. 너무 억울했던 그는 재판때 판사한테 자신의 억울함을 모두 설명했지만, 판사가 하는 말이 그래도 박은수 씨가 주머니에 돈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건 잘못이라며 죄를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부동산 사기 연류

이와 관련해 박은수가 고백하길 “내가 돈 없이 시작한 게 죄라고 하니, 어쨌든 죄가 되고 말았다. 이미 탤런트 박은수가 사기 쳤다라고 세상에 소문이 쫙 났더라.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아닙니다. 저 사기꾼 아닙니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밝혀지겠지 했는데…. 그게 잘 안되더라. 아무튼 그때는 사기당해서 전 재산을 다 잃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는데 그런 와중에 또 일이 터졌다. 당시 누가 안성에 예술인촌을 만들겠다고 나보고 조언 좀 해달라고 해서 갔는데 웬 젊은 부부가 나타나서 밑에 집을 짓고 있으니까 봤는데 다 빈 집이더라.

그런데 갑자기 나한테 제안하길 지금 이 집을 홍보나 조금 해 주고 그냥 와서 살아라.라고 하는데 그리고 홍보라고 해봐야 자기들이 원하는 카달로그는 하나 찍어주고 그 값으로 대신 이 집을 얻어서 살라고 하더라. 솔직히 그때는 집도, 절도 없는 상태로 여관살이하던 때라 `잘 됐다 싶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날 여기에 앉혀 놓은 사람하고 다른 입주자하고 싸움이 났는데 입주자가 나도 집주인과 한패라고 고소를 해버리더라.

그것도 모르고 나는 당시 아는 후배 사무실에서 뉴스 채널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 밑에박은수 부동산 사기 연루 이렇게 내 이름이 나왔다. 그래서 이때 너무 놀라서 해당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내가 박은수인데 물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기사를 냈냐?`라고 하자, 자기들한테 제보가 들어왔다고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또다시 엉뚱하게 부동산 사기에 연루되고 말았고 그 후 너무 답답해서 뒤를 캐보니 어떤 한 기자가 거기서 손해 본 사람하고 이야기하다가 박은수도 여기에 산다는 거, 그거 하나만 듣고 기사를 썼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명예훼손, 무고로 그 기자를 고소했더니 기자가 미안하다며 만날 수 있냐?라고 하길래 기자와 대면했고 이때 기자에게 당신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맞아서 천국 가는 사람도 있고 다치는 사람도 있는데 세상에 기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막 써야 하겠느냐?라고 항의하게 됩니다.

그러자 기자가 자신이 잘못 알았다. 박은수 씨 명예를 훼손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과의 뜻으로 정정 기사를 내겠다라고 하자. 그는 모든 걸 용서하고 보내줬고 그런데 다음 날 그 기사가 정정 기사랍시고 보낸다는 게 검찰에선 아무런 근거가 없고 죄가 없다.

딱 이 한 문장이 전부였습니다. 물론 맥락을 따지면 그것도 무죄는 무죄지만 사실 그가 바랐던 건 박은수 씨에게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 기자인 내 잘못이다.라고 써주길 바랐지만 그렇게는 쓰지 않았다. 그리고 사기 제보 기사를 낼 때는 한 면에 제일 크게 내더니 정정 기사는 아주 조그마하게 읽으면 읽고 말라면 말라는 식으로 냈는데 그게 지금까지도 속상하다고 했습니다.

돼지 농장에서 일당 10만 원

이처럼 그는 여러 번의 사기 혐의와 함께 한때는 구치소에까지 수감이 돼, 왕년에 잘나갔던 배우 박은수의 삶은 출구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세간에 알려진 대로 15년간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일당 10만 원을 받으며 돼지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그의 근황이 전해지자, 과거 일용이를 기억하고 있던 대중들은 그야말로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꿈 “품바 각설이”

마지막으로 그가 고백하길 “젊은 시절 내가 성격도 좀 팔팔하고 그래서 어떤 놈이 나한테 해코지하겠어? 이러고 큰소리를 치고 그랬는데, 하지만 결국 남한테 오지게 당하고 거짓말 같은 희망을 품고 산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사실 너무 쉽게 생각하고 악이 없어 보이는 지인들의 제안에 그냥 하자고 했던 것들이 죄가 되고, 나쁘게 되고, 이상하게 되고…. 사실 내가 이렇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에게 이유 없는 호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의심을 하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런데 의심을 하면 이 세상은 어떻게 살아가나….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을 믿었을 뿐인데 아무튼 내가 바보같이 산 거다.

그리고 이건 방송 나가도 되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사실 기초생활 수급자를 신청해서 그동안 수급자 지원금으로 살았었다. 그렇지 않으면 생계가 안 되니까. 돈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갖고 우리 집사람이 그거 타는 재미로 그 시간만 기다리고 그거 갖고, 시장 가는 날만 기다리고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내가 지금 연기를 안 한 지 15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물론 어디를 가든지 사연이 있고 이유가 다 있다.

그런데 각설이가 딱 나의 삶과 비슷하더라. 그래서 그걸 제작하고 싶다는 강력한 충동을 느꼈다. 각설이를 대중문화화시켜서 공연도 제대로 하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화해서 우리나라의 품바 각설이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 게 꿈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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