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제야 드러난 신지의 실체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특히 연예계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보니 오비이락과 같이 억울한 연예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가수 신지, 역시 대외적으로 드센 이미지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많은 오해를 받는 연예인 중 한 명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녀는 한때 무대 공포증이 생겨 한동안 무대에 오를 수 없었고 무려 3년간을 밖에 나가지 않고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구토하는 거식증까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또한 소속사 사장과 연애하다 헤어지자, 이제는 같은 멤버인 김종민의 아이를 가졌다라는 오해까지 받는 신지 그녀의 억울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손발
👉”8년째 딸의 무덤 찾아다니는…” 여가수 트로이카의 충격적인 근황을 확인해 보세요.

가수의 꿈

1981년 인천에서 태어난 신지는 어린 시절 글 짓기를 잘해서 상을 많이 타는 등 우수한 성적의 모범 학생이었고 또한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해 사람들 앞에서 서슴없이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자 그때부터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는 tv에서 박미경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어떻게 여자 솔로 가수가 저토록 카리스마 있게 노래를 부르는지?’라며 충격을 받아 그날부로 박미경을 동경합니다.

1996년 ‘인천 청소년가요제’에 나가 박미경의 ‘이유같지 않은 이유’를 불러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고등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걷기 위해 여러 회사의 오디션을 보게 되는데 한 번은 파파야 출신 조혜경과 듀엣으로 걸그룹 데뷔를 준비하려 했으나 무산이 되고 현재 코요태의 멤버로 발탁되어 하루 만에 정규 1집 앨범 녹음을 끝내고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코요태 결성

한편 코요태에 들어왔을 당시에는 원래 같이 연습했었던 여자 멤버가 한 명이 더 있었는데, 데뷔 전에 갑작스럽게 탈퇴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신지가 코요태의 홍일점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만 18살의 나이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데뷔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그녀가 외모도 아이돌보다는 못하고 춤을 특별히 잘 추는 것도 아니라서 사실 홍일점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격마저 누구한테 안 지려고 하는 성격이니 본인도 이때의 자신은 당차다 못해 되바라졌다고 했으며, 그렇게 데뷔 초반기부터 그녀는 좋게 얘기하면 털털하고 솔직한 성격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앞서 얘기한 대로 조금은 건방져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여자 연예인 중에서는 거의 처음으로 쌍커플 수술를 쿨하게 고백하면서 사람들은 그 솔직함에 또 한 번 놀라기도 했습니다. 실제로는 대외적으로 비춰지는 이미지와 달리 감수성이 풍부해서 눈물도 많고 상처도 잘 받아 한때는 자신의 이러한 이미지가 괴로워 심각하게 연예계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복잡한 사정으로 코요태의 남자 멤버 1명이 나가고 지금의 멤버 김종민이 들어오면서 이 무렵부터 코요태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때 김종민이 지금의 이미지와 달리 상당히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춤 실력으로 많은 소녀 팬들을 이끌고 다니는 그야말로 복덩이 멤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춤만 췄던 백댄서 출신 김종민이 무대에서 가사를 너무 자주 틀리자, 신지가 그에게 “이러고도 네가 가수냐?”며 화를 내기도 했는데 하지만 훗날 김종민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코요태 멤버들이 텃세 같은 걸 전혀 부리지 않고 자신이 편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김종민이 코요태에 합류했던 시절, 신지를 짝사랑하던 소속사 사장이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허구한 날 김종민을 괴롭히자, 이때 신지가 매번 맞서 싸워줬고 다음 앨범부터는 김종민을 빼버린다고 하자, “종민 오빠 자르면 나도 안 한다.”라고 말하며 의리를 지켜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종민이 원래 백댄서 출신이라 노래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노래에 작곡가의 목소리를 더 씌우려고 하자, 작곡가에게도 항의하는 등 어리바리한 김종민을 엄마처럼 많이 챙기기도 했습니다.

급성 신우신염과 신장염 그리고 말도 안되는 루머

한편 그 시절 가요계의 소속사가 다 그렇듯 코요태 역시 높아진 인기만큼 말도 안 되는 스케줄로 인해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이때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너무 많은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하루는 신지가 울면서 화장실에 보내달라고 했지만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고 이후에도 이러한 상황이 자꾸만 반복되자 결국 그녀의 신장이 망가지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 무렵 그녀는 신장염과 급성 신우신염 등으로 고생해 얼굴이 많이 붓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녀가 이때 급격히 살진 모습으로 한 시상식에 나갔다가 당시 모든 사람이 놀라움을 넘어 경악하면서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루머가 나돌아 굉장히 힘든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당시 내가 살도 쪘고 신우신염으로 아파서 많이 부었었는데, 그런데 멤버들은 매일 나를 보니까 살이 쪘는지, 부었는지, 눈치를 못 챘다. 그래서 그냥 그 상태로 시상식에 딱 나갔는데 난리가 난 거다. 급격히 부은 모습에 팬들도 경악하고 솔직히 나도 그 정도인 줄은 몰랐다. 아무튼 그러고 나서 집에 돌아왔는데 변해버린 나의 모습으로 인해 인터넷이 난리가 났고, 특히 한 네티즌을 중심으로 해서 나에 대한 악성 루머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하는데 내가 임신했느니, 술에 빠졌느니 등 장난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루머였는데 이때 내 친동생이 나와 14살 차이가 나는 초등학생이었는데 그 남동생이 누나의 악플로 인해 상처받을 생각을 하니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날부로 나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음식의 냄새만 맡아도 구토하는 거식증이 왔다. 당시 나는 잠도 못 자고 물 외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단 일주일 만에 체중이 7kg이나 빠지고 말았고 그렇게 급격히 살이 빠진 채로 방송에 나갔더니 이번에는 내가 해서는 안 될 방법으로 살을 뺐다라며 루머의 루머가 계속 떠도는데 정말 이때의 마음 고생은 말로 다 못 한다.”라고 했습니다.

홀로서기 그리고 잘못된 선택

이후 다시 살을 빼고 활동하다가 2007년에는 김종민을 비롯한 백가가 군 입대하면서 홀로 남은 그녀가 팀이 아닌 솔로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뷔 이후 처음으로 멤버들 없이 혼자 활동한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는지, 이 무렵부터 본인의 방송 생활 중 최악의 암흑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예전부터 꿈꿔왔던 연기자로 데뷔했다가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로부터 미운털이 제대로 바뀌어서 최악의 시간들을 보냈던 일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거침없이 하이킥이라는 국민 시트콤에 나와 주인공 최민용의 전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지닌 핵심 인물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애 딸린 이혼녀의 역할이 연기 초짜였던 그녀에게는 버거웠는지, 이내 연기 논란이 불거져 드라마는 날로 인기가 치솟는데 그녀의 연기만큼은 공감할 수도, 집중할 수도 없다며 사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이때 그녀가 맡은 캐릭터조차 툭하면 욱하고 자존심만 내세우는 비호감 캐릭터라 극 초반부터 각인된 밉상 이미지는 극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고 그래서 결국 이러한 것들이 코요태 활동까지 타격이 생길 정도여서 소속사와 그녀가 중도 하차까지 고려하게 됩니다.


“연기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아마 초반부터 캐릭터를 잘못 해석한 게 오류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캐릭터를 연기할 때 줄곧 언성을 높이고 짜증만 내는 표현을 반복했었는데, 내가 봐도 너무 꼴 보기가 싫더라. 잘한 것도 없으면서 자꾸 화만 내고 극중 캐릭터의 입장을 대중들에게 이해시키지 못했던 게 지금도 아쉽다. 내가 맡은 캐릭터가 20대에 애 딸린 이혼녀였는데, 왜 저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이걸 내가 제대로 살리지 못하니 시청자들 입장에서도 당연히 공감하기 힘들었을 거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 소속사 입장에서는 괜히 연기를 했다가 원래 있었던 팬들조차 떨어져 나가는 상황이 되니까, 결국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리고 나 또한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빠지고 싶었다. 매번 매일을 울었으니까.”라고 했습니다.

이순재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

이처럼 사람들의 평가는 냉정하게만 했고 결국 드라마에서 러시아에 유학을 가는 걸로 극 중반에 하차하는 걸로 심각하게 고민을 했으나 당시 배우 이순재가 힘들어하던 그녀를 여러모로 챙겨주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이순재 선생님이 나를 진짜 많이 예뻐해 주셨다.

당시 너무 큰 힘이 됐었고 직접적인 연기자 후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생각하고 챙기신다는 그 마음 자체가 너무 감사해서 여기서 내가 뭔가 무너져 버리면은 선생님이 나에게 주셨던 그런 마음, 씀씀이나 그런 것들에 대해 배신하는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후 중도 하차를 접고 배역이 작아져도 완주를 결심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순재가 직접 고백하길 “아마 본인 심정에서 그랬을 거다. 나는 원래 가수인데 한 식구 안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일종의 본인 스스로가 소외감이나 이런 걸 좀 느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전혀 그렇게 생각을 안 했으며 어찌 됐든 신지 씨는 참 잘했다.”라고 했습니다.

무대 공포증과 대인기피증

이번에는 멤버들 없이 솔로로 가수 활동을 하려다 또 한 번 감당하기 힘든 순간들이 다가오게 됩니다. 당시 멤버들이 모두 군대에 가는 바람에 처음으로 멤버들 없이 솔로로 활동하게 된 그녀가 한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나가서 리허설까진 아무렇지 않게 잘했습니다. 그런데 본 방송에 들어가고 곧 시작하려 하자 뭔가 어색하더니 순간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후 ‘나는 어디서 온 거지?’와 같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이 갑자기 닥쳐오게 됩니다.

결국 이날 방송에서는 그녀가 마이크를 잡은 손을 심하게 떨며 힘겹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 그대로 전파를 탔고, 안타깝게도 그 무대가 끝나고 무대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그녀는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솔로 활동 당시 너무 무섭고 떨렸다. 멤버들이 옆에만 있어 줘도 큰 힘이 되는데 이 사람들이 내 옆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때부터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고 죽겠더라.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나만 보면 그 장면을 떠올릴 것 같다는 생각에 이때 내가 많이 무너졌던 것 같다.

노래하는 게 좋아서 가수가 됐는데 노래하면서 떨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고 모든 상황이 다 싫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이날 이후 그녀는 무대 공포증이 생겨 한동안은 무대에 오를 수 없었고 심지어 방송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숨어 지내며 무려 3년 동안을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만 생활하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기고 말았습니다.

만약 종민오빠가 없었더라면…

끝이 없는 바닥으로 내려가던 그때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김종민이었습니다. “당시 나는 가수로서의 자신감을 완전히 잃고 은퇴까지 생각했었는데 그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부모님과 종민 오빠 덕분이었다. 종민 오빠가 혼자 고생을 참 많이 했던 게, 어떻게든 팀을 이끌고 가겠다며 혼자서 아등바등 활동하는데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내가 한 3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니까 수입이 없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내가 오빠한테 전화해서 오빠! 나 정리할 게 있는데 돈이 없어라고 하자, 계좌번호 보내라고 딱 한마디 하더라.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3년 만에 다시 용기를 내서 종민 오빠한테 나 다시 해볼게라고 하자, 그때 오빠가 나에게 ‘신지야 그럼 내가 뒤에서 밀어줄게’라고 하더라.

그렇게 종민 오빠 덕분에 극복을 했고 그래서 ‘만약에 종민 오빠가 없었다면 지금쯤 아마 나는 가수를 은퇴하지 않았을까?’싶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코요태가 아닌 솔로 활동을 했다면 이 험난한 연예계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여러 방송을 통해 코요태와 김종민에 대한 감사와 애착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나도 꽤 길다면 긴 시간을 활동했다. 중간중간 무너지는 순간과 힘든 시기가 있었고 때로는 버틸 수 있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술에 의지할 때도 있을 정도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런데도 다시 밝은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서 방송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지금의 상황이 그저 행복하다.

그래서 항상 나는 전생에 나라보다 더 큰 우주를 구한 것만큼의 인복이 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런 인복이 무색할 만큼 최근 종민 오빠와 나와 관련된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 떠돌아다니는데, 내가 종민 오빠와 결혼해서 다이아몬드를 받았느니, 임신했느니 등 우리를 예쁘게 봐주셔서 잘 어울린다는 말씀은 좋은데 절대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요태의 음악도 이제는 옛날 노래라 요즘 분들은 잘 모르기도 하던데 그런데도 우리의 목표는 해체하지 말고 디너쇼까지 해보는 것이다. 코요태가 40주년일 때 종민 오빠가 환갑인데 그때 잔치 겸 디노쇼를 해보는 게 어떨까 싶다.”라고 했습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