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빈익빈 부익부에 희생된 가수 “공개된 유서에 모두가 경악” 어떤 상황인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지금 대한민국에서 트로트 열풍으로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높은 몸값을 자랑하며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대 위는 물론 예능 등 방송에서도 맹활약하고 전국 각지를 돌며 행사하며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쉽게도 모든 트로트 가수들이 빛을 보고 있지는 못하다고 합니다. 트로트 가수의 경우 다른 연예인들보다 유독 빈익빈 부익부가 심하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많은 트로트 가수는 방송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하고 각종 행사나 밤무대를 전전하며 생활고를 겪기도 한다고 합니다. 오늘 영상의 주인공인 이창용도 2002년 트로트 가수로 데뷔의 노래와 얼굴까지 알렸지만 결국 경제적인 문제로 삶을 비관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창용은 당신이 최고야라는 노래로 데뷔 때부터 이름을 알리며 선전했지만 결국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향년 38세에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안타깝기만 합니다. 오늘은 그가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이창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트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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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빈익빈 부익부

얼마 전 KBS 연중 라이브에서는 행사의 달인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행사의 달인 스타 1인인 장윤정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장윤정의 행사비는 웬만한 중형차 1대의 갑 이상으로 걸어 다니는 중소기업으로 알려졌습니다. 후배 가수 이찬원은 트로트의 몸값을 올려준 분이다. 저는 처음보다 125배 올랐다.라면서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방송된 장윤정의 행사비와 이찬원의 발언에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더불어 주목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트로트 가수가 화려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수천만 원의 행사비를 받으며 활동을 하는 가수들은 극히 일부고 대부분 가수는 무대에 설 기회조차 잘 얻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수로서 무대에 설 기회를 못 얻는 많은 가수는 밤무대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야 하고, 그마저도 기회를 못 얻을 때가 많아 다른 일을 하며 생계를 잇는 것이 부지기수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수 외에 선택한 부업도 모두 생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가요제 수상과 흥행 가수

이창용도 가수 생활을 하면서 병행한 사업에 실패해 크게 몰락하게 되었고 결국 안타까운 말로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이창용은 1992년 KBS 전곡 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타고, 93년 MBC 남편가요제 대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인재라, 갑자기 들려온 그의 슬픈 소식은 참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무명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2002년 당신이 최고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후 사랑해 말도 못하는 등의 곡으로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지며 사랑받았기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창용의 측근에 의하면 그의 곡 사랑해 말도 못하는은 데뷔곡 당신이 최고야보다는 성적이 부진했지만, 어느 정도 사랑받기도 했으며 이에 이창용은 만족스러운 가수 생활을 이어 나갔다고 합니다. 그가 좋지 못한 선택을 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음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1년간의 법정싸움 그리고 생활고

이창용은 가수 데뷔 전 한 사업체를 일구고 있는 대표였습니다. 그는 사업가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뤘지만 가수가 되고 싶다라는 꿈을 접지 못했습니다. 결국 노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그는 2002년 데뷔하게 되었고 데뷔곡 당신이 최고야는 발표와 동시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부양할 가족들이 많았고 불안정한 수입의 가수 생활에만 매진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창용은 가수를 하면서도 데뷔 전 일구고 있던 사업을 병행했습니다.

가수 생활 중 이창용은 건강보조식품 사업을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이창용은 한 사건에 휘말리며 사업 운영에 난관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창용은 2007년 8월 자신이 판매하는 일반 제품들을 명품으로 속여 판매한 혐의로 검찰에 고소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거짓으로 음해한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람을 무고죄로 맞고소하며 1년 이상의 법적 다툼을 했습니다.

이창용은 주부들에게 물건을 강요한 적이 없다. 나를 음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결국 1년 후인 2008년 7월 20일 이창용은 사기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1년이란 긴 시간 동안 법정 다툼하며 많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법정 공방 동안 사업체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며 그의 가수 활동도 점점 축소되었습니다. 법정 공방을 준비하며 사용한 시간과 비용은 그에게 엄청난 결과를 안겨줬습니다. 이창용은 결국 사업에 실패하면서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차할 정도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인 선택

성공적인 방송 복귀를 꿈꿨지만,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결국 이창용은 사업의 실패에 큰 빚을 얻고 방송 출연까지 뜸해지자 생활고에 시달렸습니다. 2009년 3월 11일 저녁에는 부인과 금전 문제로 심하게 다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창용과 심하게 다툰 부인은 감정이 상해 집을 나왔고 이창용에게 비관적인 선택을 암시하는 문자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 문자를 받고 놀란 부인은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들은 안방 욕실 샤워부스에서 이창용을 발견했습니다.

이창용의 자택에서는 용지 4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유서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경찰에 의해 유서 내용의 일부가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일산경찰서 형사과장은 사업에 실패한 자신을 책망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찼을 만큼 빚이 많았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창용은 유서에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 및 재산을 정리해 가족에게 나눠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채무, 재산 상태 등을 상세히 기재해 안쓰러운 선택을 하면서도 남겨진 가족들을 한없이 걱정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변 사람의 애도

그의 비보에 많은 가수 동료가 애도를 표했습니다. 트로트 가수 박상철은 제일 먼저 빈소로 달려와 그를 기렸습니다. 평소 고인과 절친한 사이였다는 박상철은 “창용이 형은 같은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날이 많았어요. 데뷔는 내가 선배지만, 나이는 형이 더 많아 실제 형, 동생처럼 의지하며 지냈었어요.

최근 들어 가수 활동도 쉽지 않고 해오던 사업도 잘 안돼 힘들다는 소리를 많이 했었는데 이 정도까지였을 줄 상상도 못했어요. 무대에서 함께 노래하던 때가 못내 그리울 것 같습니다.”라며 고인을 그리워했습니다. 뒤이어 도착한 인순이도 1시간 가까이 유족들과 대화하며 고인에 대한 애도를 표현했습니다. 그는 빈소를 나서며 `실력 있는 가수였는데 세상을 떠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라며 비통한 표정으로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현숙도 한달음에 달려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업이 잘못돼 소송에 휘말리며 힘들어했던 것을 알았지만 이럴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창용이는 방실이나 박윤경 등 동료 가수들이 쓰러졌을 때 병원비 모금에도 가장 적극적이었어요.”라며 고인의 따뜻함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이 된 이창용은 많은 트로트 가수 중에서도 뛰어난 노래 실력을 자랑하는 뛰어난 가수였습니다. 비록 모종의 이유로 무대 위에서 화려한 꿈을 펼치지는 못했지만, 선후배 동료도 인정하는 참 좋은 가수였습니다. 향년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그의 소식은 지금까지도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 계시는 그곳에서는 슬픔 없이 행복하시기만을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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