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31세 청춘스타 헬기 추락 사고로 결국… “마지막 참담한 모습에 오열”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지적인 외모와 우수에 찬 눈빛이 ‘영웅본색’의 장국영을 연상케 했던 배우 ‘변영훈’. 1993년 영화 촬영 중 헬기 추락으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끝내 숨을 거둔 비운의 배우 변영훈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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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1962년 6월 5일 인천시에서 평안북도 출신으로 경찰관이던 아버지 변형옥과 황해도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69년 인천 송현 초등학교를 1년간 다니다 2학년 때 인천 숭의 초등학교로 전학했고, 이후 상인천중학교와 인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 끝에 1982년 상지대학교 생물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이후 군 복무를 마친 뒤 유예기간을 거쳐 복학 후, 2급 정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의 원래 꿈은 탤런트가 아니라 문학가나 예술가였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다른 친구들이 공 차고 놀 때 한구석에서 시집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예술 쪽에는 취미가 있었으나 연기자가 된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 했고 괜찮은 외모 덕에 친구들이 배우를 해보라는 말을 가끔 들었으나 이것은 그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한때 교사가 된다면 먼 시골, 섬으로 가서 학교 선생을 하고자 하는 원대한 구상을 지녔다고 합니다.

연기자로 데뷔

그러나 대학 졸업 뒤인 1989년에 같이 하숙집에서 살았던 코미디언 ‘이주일’의 외아들이자 대학 동기인 ‘정창원’의 권유로, KBS 13기 탤런트 공채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1990년 3월에 KBS1 일일연속극 ‘울밑에선 봉선화’에서 전인화의 착한 시동생인 정병호 역으로 출연했습니다.

처음으로 비중 있는 역을 맡은 데 이어 1991년 TV문예극장 ‘검은 양복’에서 문영남 작가와 인연을 처음 맺었고, 1992년에 문영남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MBC 드라마 ‘분노의 왕국’에서 대한제국 마지막 황손 ‘이하연’역을 맡아, 당시 ‘민재경’ 역을 맡은 김희애와 같이 연기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깨끗한 도시풍의 용모와 연기는 당시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고 당일

1991년 결혼한 아내와의 이혼 소송과 1993년 4월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 입건된 일로 힘들어하는 와중인 동년 6월 14일, 변영훈은 황신혜와 함께 남자 위의 여자에서 나올 한강시민공원 선착장 부근에서의 선상 결혼식 장면을 찍기 위해 헬리콥터에 탑승하였습니다. 이륙 10분 만에 동체가 흔들려 바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탑승자 중 KBS 카메라맨 백순모, 촬영감독 손현채 등 5명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함께 탔던 KBS 연예가중계 PD 김일환은 창문을 깨고 극적으로 빠져나와 생존했습니다. 변영훈과 미도 영화사의 사장 이상언도 같이 구출되었으나, 이 사장은 병원 이송 뒤 4시간 만에 사망하였고 변영훈은 사고 후 35분 만에 구조되어 1시간의 심폐소생술로 맥박은 돌아왔지만, 구조됐을 때 당시 이미 심장과 폐의 기능이 정지한 상태였습니다.

당시 의료진은 변영훈의 회복 가능성에 대해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소견을 밝혔습니다. 변영훈은 구조 후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고 이후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맥박과 호흡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뇌사 상태 75일 만에 당시 12개월 된 어린 아들을 남긴 채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31세의 짧고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습니다.

사고 원인

사고는 정원을 초과한 인원이 헬기에 탑승한 것이 원인이었으며 당시 필수 탑승 요원인 부기장이 탑승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수상 비행 최저 고도를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장래가 촉망받는 한 연기자가 연기의 꽃도 채 피우지 못한 채 팬들의 곁을 떠난 사고였습니다.

변영훈은 사후에 아내가 유가족으로서 헬기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미망인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으며, 변영훈의 아내를 비롯한 유족 4명이 헬기 회사를 상대로 9억 9천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던 건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미도 영화사가 따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고 영화사 대표마저 숨을 거둔 바람에 변영훈 측은 금전적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변영훈 가족들에게도 가슴 아픈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변영훈은 헬기 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배우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배우가 가진 우울한 느낌과 순탄하지 못했던 사생활까지 더해져 비극적인 느낌이 더욱 커졌는데 이마저도 세월이 흐르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가고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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