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 배우 나시찬 결핵성 뇌막염으로 결국…”구름이 간다 하늘도 흐른다”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1975년에 방영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 전쟁 드라마 전우, 그 드라마의 주인공 김소희를 맡은 나시찬은 인기를 한 몸에 받은 탤런트입니다. 오늘은 신화로 남게 된 배우 나시찬의 삶과 죽음에 대해 얘기를 하겠습니다.

뇌막염
👉”중견 탤런트 배 열고 한 달 동안 있다가 결국…” 갑자기 세상 떠난 그녀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그의 학창시절

1941년 11월 21일 대전에서 차남으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키가 왜소하였으며 그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상대와 싸움이 붙어서 지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잠을 못 자며 반격을 연구한 나시찬은 이튿날 또 결투를 신청했지만, 또 패했습니다.

그래도 이긴다라는 일념으로 다섯 번째 도전한 끝에 상대방은 “내가 졌다”라고 항복했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충남대 영문과에 진학하였으며 군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서울에 올라가 친구가 경영하는 태권도장의 사범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67년부터는 직접 도장을 차려 경영했다고 합니다.

탤런트 데뷔

애시당초 연예계쪽으론 생각을 안했던 나시찬, 그에게는 생년월일이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당시 가수지망생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KBS방송국에 갈 일이 있어 나시찬에게 같이 가자 했고 나시찬도 방송국 구경도 할 겸 같이 가주었습니다. 이 때 KBS에선 신인 탤런트를 모집하고 있었는데 어떤 PD가 나시찬을 보고는 “마스크가 괜찮은데 탤런트를 해보지 않겠냐?”라고 말을 걸었고 이 광경을 본 친구는 그 자리에서 나시찬의 원서를 접수해줍니다.

그리고 공채 탤런트 8기생으로 합격합니다. 동기생으론 민욱, 코메디언 최용순, 한주열 등이 있었습니다. 다른 동기들과 다르게 그는 공연을 서 본 경험이 전혀 없어 카메라 앞에만 서면 울렁증이 심해 제대로 된 배역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해 이남섭 PD가 연출한 임자 있었네라는 드라마에 문오장의 부하로 나왔는데, 대사 전달이 미숙하여 그의 대사는 다 통편집되었다고 합니다. 연출자들은 나시찬을 두고 얼굴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연기자로서 가망이 전혀 없다고 혹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당시 국립극단 단장인 연극배우 장민호를 찾아가 단원들의 훈련에 참석시켜달라고 부탁했고 그들과 함께 연기 공부를 하며 연극에 출연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1975년, 특집극 어느 한국인에서 주인공인 국군장교 김소위를 맡았는데 이 작품에서의 열연으로 나중에 드라마 전우에 캐스팅될 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느 한국인은 나중에, 방송의 날 기념으로 작품상을 받았으며, 나시찬도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드라마 ‘전우’

1975년 6월 29일 영웅 이야기로 첫 방영한 전우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조국을 위해 싸우던 장병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극화한 드라마입니다. 이 작품에서도 김소위를 맡았는데 엄격하지만, 부하들에게 따뜻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이었고 본격적으로 한국전쟁에 다룬 드라마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시청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김소위와 부하들을 흉내 내면서 놀이하기도 했습니다.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지만, 제작환경은 참 열악하였습니다. 실제 폭탄과 탄약을 써야 했었고, 몇몇 제작진들이 제작비를 횡령한 탓에 중간중간에 배우들과 작가, 제작자들 사이에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간혹 있었습니다. 부상이라도 당하면 치료비는 방송사에서 다 대주었지만, 일감이 끊겨 생계유지에 곤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 예로 탤런트 박정웅은 그 당시 인민군 전문 배우였는데 TNT 때문에 등에 배긴 곰보 자국이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야외촬영을 하는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어느 농가에 들어가 밥을 얻어먹거나 잠을 청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폐렴으로 중단된 활동

1976년 11월 21일, 그의 생일이며 전곡에서 야외촬영이 있던 날, 촬영이 끝나고 생일 축하 겸 자리를 마련코자 소주 파티를 가졌는데 그 이후 계속 몸이 축 처지고 72kg이었던 체중이 62kg까지 빠져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았습니다. 소엽성 폐렴이라고 진단받았는데 그는 당장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드라마 전우에서는 그가 부상을 당해 후송된 것으로 처리하고 대원들을 지휘하는 역할은 다른 선임하사역 맡아 촬영하였다고 합니다. 76년 입원 때 동료 탤런트 문오장은 이를 두고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게 이상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드라마 전우에 매달려 있는 스태프, 배우들의 고생이 정말 큽니다. 어쩌다 게스트로 출연해도 죽을 지경인데 매주 그 작업을 되풀이하는 나시찬인들 견딜 재간이 있었겠어요.”

1976년 KBS 송년 잔치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나 입원 탓에 당시 탤런트 실장이던 남일우가 대리 수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울먹이면서 나시찬이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병문안을 가라라며 독려했다고 합니다. 요양을 끝내고 77년 3월 8일에 방영한 산마을 갯마을에 의사로 잠깐 얼굴을 비춘 그는 한 잡지에 3월 중순부터 전우에 복귀하겠다라고 밝힙니다. 복귀한 이유가 무엇인지 기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답을 합니다. “연기자가 연기를 못하게 되니까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어요. 더구나 저만 처지는 것 같은 소외감 때문에 견디기 어려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부인이 말하는 나시찬은?

그러나 그를 미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고독감과 공허감이었습니다. 그의 부인 강모씨는 훗날 자신의 간병수기에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는 커다란 덩치에 비해 항상 외로움을 많이 탔다. 고향을 떠나 혼자 서울에 있던 탓도 있지만, 탤런트라는 그의 직업이 유난히 그의 외로움을 부채질했던 것 같다. 브라운관을 통해 보는 연예인들의 화려함에는 상당한 허위가 있었다.

그들은 오히려 평범한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외로워하는 것 같았다. 녹화가 끝나고, 공연이 끝나고 난 다음에 그 성취감 못지않게 그들은 공허감에 시달리는 듯했다. 그때마다 나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외롭다고 말했다. 아파하는 그이를 혼자 두고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라 워낙 집안이 완고했던 내가 저녁 시간에 그 집에 눌려 있다는 건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가야 해? 조금만 더 있다 가라. 너까지 가면 더 많이 아플 것 같아 돌아서서 나오려는 나를 붙들고 그는 커다란 눈에 힘을 주며 같이 있자라고 애원이기도 했다.

그의 결혼

나시찬은 전우 복귀와 함께 자신이 현재 사귀고 있는 여인이 있다는 걸 밝혔고, 그 여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인은 대전 해수욕장에서 처음 만난, 서울 수도여고에 교사로 재직중인 강모씨이라고 했습니다. 직업이 탤런트였기 때문에 집안의 우려를 걱정한 그녀, 나시찬은 그녀를 데리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 그녀의 부모님들을 만나 뵙는데 적잖이 당황했지만, 소탈하고 꾸밈없는 그의 모습에 호감을 느꼈고 4년간의 만남 끝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갑작스러운 건강악화

77년 8월에 방영한 드라마 꽃신의 주인공 정기룡을 맡았고, 당해 10월에는 결혼하는 등 겹경사를 맞이합니다. 이렇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연기를 계속하면서 아내와 함께 즐겁게 인생을 살았을 것 같았으나, 하늘은 그의 행복이 오래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78년, 어촌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는데 이즈음 몸에 열이 나고 감기 기운 증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하였습니다. “그이의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지 보름만인 12월 6일의 일이다. 평소 그렇게 예의 바르던 그이가 친정아버님이 우리 방에 들어오셨는데도 무표정하게 천정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다른 때 같으면 아무리 아파도 몸을 일으킬 그이가…. 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겁이 난 나는 그이를 불렀다. “내가 누구예요? 저 알아보시겠어요? 말씀 좀 해보세요. 여보!” 나의 울음 섞인 물음에 그이는 그저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안의 어른들께 입원시키자고 했다.”

신탄진에 살던 그의 부모님이 부랴부랴 올라왔고 그의 어머니는 “부처님도 무심하시지….”, 이렇게 넋두리했습니다. 그 사이 그의 아내는 나시찬이 바라던 딸을 낳게 됩니다. 병원에서 그가 가망이 없다는 판단에 메디컬 센터로 이송하였고, 거기서 결핵성 뇌막염이라는 진단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귀향에서 맡은 역할은 배우 송재호에게 넘어갔고, 그는 촬영 일정이 없으면 나시찬의 병간호하기도 하고, 자신이 받은 출연료 일부를 병원비로 희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향년 41세에 작고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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