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트롯2 노지훈 충격 폭로 “아내 둘째 유산까지…”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여러분은 가수 송대관이 불러 공전의 히트를 쳤던 ‘해뜰날’를 아십니까? 이 노래의 키워드는 바로 ‘희망’으로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찾아온다’라는 위로와 희망의 노래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노지훈’ 역시 ‘판도라의 상자’처럼 중학교 3학년의 나이로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여의고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되었지만, 야심차게 준비했던 ‘방탄소년단’을 나와 14년간 고생만 하다가 결국 해서는 안 될 나쁜 생각까지 하며 최근에는 둘째 아이까지 유산해야 했습니다. 오늘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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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1990년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노지훈은 지금의 트로트 가수와는 어울리지 않게 11살 때부터 축구선수로 활약하다가 중3 때는 청소년 국가대표가 될 정도로 굉장한 축구 유망주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누구보다 그의 국가대표 발탁을 기다리고 바라던 아버지가 국가대표가 되기 1년 전에 암투병 끝에 돌아가시면서 당시 유언이 ‘가슴에 태극마크를 꼭 달았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결국 진짜로 되었으나 아버지께는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한편 축구대회 기간에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면서 당시 감독님이 그에게 “지훈아! 괜찮아? 충격이 클 텐데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당분간은 운동은 쉬어도 되니 편하게 하라.”라며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 된 어느 날, 감독님이 그에게 “지훈아! 지금 나와 갈 때가 있다.”라며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데 도착 10분 전에 말하길 “지훈아! 놀라지 말아라.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단 12일 만에 쇼크로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말았고 그렇게 노지훈의 부모님은 아버지가 47살, 어머니가 39살이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3남매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장례를 치르는 동안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던 노지훈은 당시 누나들과 친척들이 ‘독한 애다. 부모님 상에서 어떻게 저렇게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냐?’라고 했는데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그때는 실감이 안 나기도 했지만 ‘자신까지 무너져 버리면 우리 가족이 다 무너진다’라는 마음이 컸었다.”라고 했습니다.


노지훈의 누나가 고백하길 “엄마가 돌아가시기 직전 기다리고 계셨다가 지훈이가 딱 오니까 보고 나서야 눈을 감으셨다. 그런데 이후 장례식을 하는데 지훈이가 울지를 않더라. 그래서 지훈아! 울어도 돼. 그랬더니 동생이 하는 말이 내가 울면 누나들이 무너지잖아. 딱 이 말을 하는데 너무 속상했다. 그 어린 게 뭐 안다고….”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국가대표로서 바로 훈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슬픔도 잊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고 그러고 나서 일주일 정도 뒤에 정말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날 정도로 참았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드라마 같은 시련

당시 하루 일과를 끝낸 뒤, 여느 날처럼 합숙소에서 청소하고 이불을 깔고 지침 준비하며 다들 예능 프로를 보면서 ‘깔깔깔깔’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는데,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 그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이불을 뒤집어쓰고 오열을 하는데 당시 숙소에 있던 친구들이 분위기가 싸늘해질 정도로 혼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울고야 말았습니다.

이와 관련해 노지훈 그가 고백하길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불과 14일 만에 어머니마저 쇼크로 아버지를 따라가시니까 많은 분들이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 ‘너희 부모님은 천생 연분이었나 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보고 싶어 해서 모셔갔다.’ 이렇게 말씀해 주신다 하지만 당사자인 우리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해 봐도 이런 드라마 같은 일이 어떻게 나한테 일어나지 싶고 당시에는 부모님을 많이 원망했었다.

날 왜 이렇게 불행하게 만드냐?,남들은 엄마, 아빠랑 외식도 잘하고 놀러도 가고 하는데, 왜 나만 힘들게 살아야 하냐?`라며 당시 내가 겪었던 불행의 모든 것들이 어린 마음에 전부 부모님의 탓 같았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세상에 남겨진 3남매는 1년은 막내 작은아버지 집에서 살고, 2년은 큰고모 집에서 살고, 또 1년은 둘째 작은아버지 집에서 사는 등 당시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그렇게 이제 떠돌이 아닌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됩니다.

누나들의 희생으로 축구를 이어가지만 결국…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척들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노지훈의 운동 뒷바라지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누나들이 그의 뒷바라지를 하게 되는데 당시 두 누나가 꿈과 학업까지 포기하고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그냥 오로지 돈만 벌면 어린 동생의 꿈을 위해서 자신들은 희생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노지훈의 누나가 고백하길 지훈이한테는 “정말 미안한데 부모님이 동생이라는 짐을 떠넘기고 간 것 같았다. 그래봤자 우리도 나이가 20살, 21살이었는데 그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당시 동생이 축구 선수로 재활해야 해서 한 달에 몇백을 내야 하는데, 우리가 무슨 수로 한 달에 몇백을 벌겠나? 그냥 잠 안 자면서 아르바이트 3~4개에 가면서 어떻게든 돈 메꾸고 그래서 엄마 아빠가 너무 싫었다. 그렇다 보니 그때는 굳이 축구를 계속해야 하는가? 이런 생각도 했었고 도망치고 싶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내 축구를 그만두게 되는데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부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십자인대 파열 수술을 두 번이나 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첫 수술을 했는데 1년 정도를 재활해서 복귀했으나, 복귀한 당일 또 상대편 친구가 그의 무릎 위에 앉아버려 다시 재수술이 되는 바람에 재활만 3년 정도 하다 보니 이 몸으로 더 이상 축구는 안 되겠구나 싶어 결국 19살 때 축구를 그만두게 됩니다.

가수의 꿈, 방탄소년단과의 인연

한편 오직 축구만 했던 그가 축구를 그만두고 나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갑자기 가수의 꿈을 꾸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당시 힘들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마다 노래를 부르고 듣던 게 취미이자 특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노래하려고 하니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가 일단 무작정 홍대에 갔고, 그리고 눈에 보이는 어느 한 연습실에 들어간 뒤 마침 음악하는 사람들이 있길래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대뜸 “노래 좀 가르쳐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너무 대단하네. 그럼 청소부터 해라.”라고 해서 그날부로 청소하면서 어깨 너머로 노래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 연습실은 정말 모르고 갔었는데 알고 보니 그룹 시나위의 연습실이었습니다. 이처럼 홍대에서 노래를 배운 뒤, 아이돌이 되고 싶어서 여러 오디션을 봤으나 산이 높다는 걸 깨닫고 “이 길이 아닌가?” 싶어 또다시 힘들어하던 중 하루는 TV를 보는데 MBC에서위대한 탄생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 모집 공고를 보고 이게 또 운명인가? 싶어 바로 지원하게 됩니다.


참가한 오디션에서 TOP 8까지 올라가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축구선수 노지훈이 아닌 노래하는 노지훈으로서 이름을 알릴 수 있었고 이를 계기로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의 소속사의 연습생이 되어 무려 2년간 지금의 방탄소년단의 멤버들과 동거하며 가수 데뷔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래서 한때는 그가 방탄소년단의 멤버가 될 뻔했으나, 꿈이 솔로 가수였던 그는 제2의 비를 꿈꿨었는데 때마침 비를 발굴했던 대표님이 실제로 그에게 제2의 비를 만들어 줄 테니 오라라는 러브콜을 받고 방탄소년단의 회사를 나와 존경하는 선배 비가 있는 회사로 이적하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훗날 그때 방탄소년단의 회사에서 나온 게 후회가 되지 않냐?”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하길 “근데 이게 또 자리가 있다고내 자리가 아니었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돌아가서 계속 있었다고 한들, 내가 방탄이 되기는 힘들었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이후 솔로 가수를 준비하던 그는 여전히 이때도 가진 것이 없다 보니 정말 서럽고 힘들게 연습생 시절을 보내야 했는데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서러움이었습니다.

힘든 시기, 위로해준 친구가 아내로…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마침내 솔로 가수로 가요계에 데뷔했지만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해, 사실상 망한 거나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이때 그는 깊은 좌절감으로 오랜 기간 슬럼프를 겪고 한때는 해서는 안 될 나쁜 생각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축구를 그만두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가수까지 망해버리자, 하루하루를 절망의 늪에 빠져 살다가 하루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당시에는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나 너무 힘들다. 이젠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다라며 자신의 힘든 심정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친구였던 아내가 너무나도 따뜻하게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라고 하는데 딱 그 한마디에 그간 힘들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 이후 7년 친구였던 아내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해 3개월 연애 후 두 사람은 부부가 되게 됩니다.

미스터 트롯2 도전

한편 그에게는 신내림을 받은 무당 삼촌이 있는데 트로트 붐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반드시 트로트를 해야 한다라며 무려 1년간 그를 설득했고 처음에는 무슨 트로트냐? 했지만 그런데 어느 순간 기존에 했던 음악들을 트로트로 소화하면 노지훈만의 트로트를 보여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결국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침 삼촌의 말대로 대한민국에는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 불자, 그도 미스터 트롯에 참가하게 되었고 준결승전 직전까지 올라가 마침내 트로트 가수로서의 노지훈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그리고 2년 뒤 미스터 트롯2에 또다시 도전하게 된 그는 그런데 아쉽게도 예전보다 더 일찍 탈락하며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길 “사실 프로는 무대에서 변명이 필요 없는데 굳이 핑계를 대자면, 그때 당시 공교롭게도 나를 키워주신 작은 고모께서 돌아가셨다. 그렇다 보니 경연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그래서 나로서도 너무 아쉽다.”라고 했습니다.

둘째 아이의 유산

한편 살림남이라는 프로를 통해 아들 이안을 공개했던 그는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또래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한다라는 얘기를 듣고 한때는 아들의 자폐 스펙트럼을 걱정하며 시청자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다리던 둘째 아이를 가져 남자아이일까? 여자아이일까? 또 어떤 성격일까? 생각하며 밤마다 설레했으나,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둘째 아이는 계류유산으로 떠나보내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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