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 천억 뺏기고 빈털터리 된 여가수 “이 상황에 깜짝 발표 대체 왜?”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레전드 트롯신 김연자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톱스타였습니다. 하루에 1억을 벌 때도 있었고 1,400억 가량의 부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먼 타지에서 단 한 명, 남편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던 김연자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그렇게 1,000억 원이라는 거대한 돈 중 단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이혼당하고 맙니다.

그런데도 김연자는 사랑의 힘을 믿었고 그 결과 한국에서 트롯계의 대모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김연자가 13년가량 장기 연애 끝에 결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김연자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사와 그녀의 예비 신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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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데뷔와 활동

두 동생의 대학생활까지 뒷바라지했던 김연자였지만 사실 처음에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히트곡이 없어서 활동하지 않은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1977년 19살에 홀로 일본으로 건너가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1980년 “노래의 꽃다발”이 한국의 음반 시장 최대 360만 장의 판매를 기록하게 됩니다. 김연자는 1984년 수은등으로 한국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며 인기 가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 1986년 길옥윤 작곡에 아침의 나라에서로 일본에서 다시 데뷔하게 되며, 개사하게 된 이 곡은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 영역을 개척하여 여러 앵카 곡들을 히트시키면서 일본의 대형 앵카 가수로 성장했습니다.

서울 올림픽 주제가

그런데 이 아침의 나라에서에는 조금 아쉬운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 바로 88년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 선정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원래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룹 코리아나의 “손에 손잡고”가 아니었습니다.

서울올림픽 2년 전인 1986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국내 지상파 방송사가 주제가 공모 절차를 거쳐 김연자의 “아침의 나라에서”가 서울올림픽 공식 주제가로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을 석 달 앞두고 조직위는 벼랑 간 주제가를 전격 교체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유명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가 작곡한 손에 손잡고로 바꾸었고 가수도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던 4인조 그룹 코리아나로 교체했습니다.

이북 공연

김연자는 일본, 브라질, 코스타리카 프랑스 등 해외 곳곳에서 공연했습니다. 2년 연속 이북에서 단독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김연자는 공연 시작 전에 김 전 위원장과 커피를 마셨다며 “혈액형을 좋아해서 혈액형을 물어봤어요. 물어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A형이라 답해줬어요.”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의 루머

그런가 하면 김연자는 ‘무당’이라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었습니다. 무대에서 신들린 텐션을 보여주는 김연자는 “무대에만 서면 마구 움직이고 뛰어다니니까 저보고 무당이라고 하더라고요.”라며 황당함을 드러냈습니다.

김연자는 대통령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너무 설치지 말고 얌전히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모르 파티’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또 난리를 쳤어요.”라고 털어놔 웃음을 안겼습니다. 실제로 ‘영적인 걸 볼 줄 아냐?’라는 질문에 김연자는 “그럼 제가 여기 안 있죠. 노래만 부르면 그렇게 변하는 것 같아요.”라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하루에 1억 원씩 벌어도…

한편 김연자는 1982년 23살의 나이에 18살 연상의 재일교포와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전 남편은 일본에 진출하게 되면서 만났고, 그의 직업은 밴드 지휘자였습니다. 일부에서는 전남편이 야쿠자라는 말이 있기도 했었지만, 이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습니다. 전 남편은 김연자가 활동하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되어 주었고, 김연자는 이를 의지하면서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가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김연자는 전남편과 결혼 30년 만에 자녀도 없이 결혼 생활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그녀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재산도 상당히 많이 축적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집니다. 김연자는 “일본에서 하루에 1억 원씩 벌 때도 있었는데 파경 후 내 앞으로 된 재산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일본에서 빈털터리로 돌아왔어요. 사실 이를 결심한 것은 10년 전부터였어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김연자는 “남편에게 쉬는 날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행복한 비명이라고 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어요. 남편이 연예계에 있었기 때문에 더 편했고 믿었어요. 그래서 남편이니까 내 장래 설계도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남편에게 개런티가 얼마인지 물어본 적도 없고 은행에 가본 적도 없고 믿고 노래를 불렀어요. 그런데 문득 뒤를 돌아봤더니 내 앞으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연자는 “위자료는 하나도 못 받았어요. 일본 활동 당시 100억 엔 이상 벌었을 거로 생각해요. 하지만 전남편은 재판정에서 돈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위자료 재산분할 아무것도 안 해줬어요.라고 털어놨습니다.

또한결혼 생활 30년 동안 자식이 없지 않았냐?라는 질문에 김연자는 “그것도 남편이 필요 없다고 못 갖게 했어요. 장난으로 남편이나는 큰딸 김연자가 있으니까 괜찮다`라고 하더라고요. 젊었을 때 나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은 들어주지 않았어요.”라고 밝혔습니다.

제 2의 전성기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결혼 전에 한국에 마련해 둔 작은 건물과 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연자는 건물과 집 덕분에 다시 한국에서 보다 수월하게 제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해외 각지에서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 2009년 일본 활동 22주년을 끝으로 한국 활동을 공식화했습니다.

이후 2013년 ‘아모르 파티’로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활동하면서 대히트를 치게 됩니다. 이 곡으로 김연자는 사실상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됩니다. 김연자는 ‘아모르 파티’가 역주행하게 된 이유가 보이 그룹 엑소 팬들 덕분이라고 비화를 공개했습니다.

한 프로그램에서 김연자가 무대에 올랐고, 그 다음 순서가 엑소였던 것입니다. “엑소 팬이 이 노래가 좋다고 sns에 올려 주셨다.”라며 “그게 돌고 돌아 2017년 역주행하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한동안 뜸했던 국내 무대에서 다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 모두 가리지 않고 심심치 않게 모습을 비추고 있습니다.

결혼발표, 그리고 예비 신랑은?

김연자는 전남편과 헤어진 후 국내 복귀 과정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합니다. 귀국 후 달라진 국내가요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했던 그녀가 아모르 파티로 재기할 수 있었던 건 소속사 대표의 도움이 컸습니다. 대표 홍상기는 과거 김연자가 국민학생 시절 노래에 학원을 다녔는데, 그때 함께 다녔던 남다른 인연이 있는 사이입니다. 이 남다른 인연은 현재의 연인 관계로 그리고 곧 결혼까지 할 인연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전남 영광에 김연자의 기념관이 지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념관 옆에 김연자의 이름을 딴 연자 마을이 조성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완성되면 김연자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남자친구에 대한 애정도 거침없이 표현했습니다.

김연자는 연애관을 이야기하며 빚이 있는 남자와 산다고 생각하면 어떤가?라는 질문에 “좋아하면 상관없어요. 같이 갚아나가면 되죠. 내가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까….”라고 당당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도 사랑도 모두 잡은 김연자는 여전히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좋은 노래 많이 들려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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