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재용 정신병원에서 발견 “살아있는 지옥을 봐 버렸다”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오늘은 배고픈 연극배우로서의 삶을 살며 운명처럼 인연이 된 곽경택 감독과 두 번째 영화인 친구로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 배우 이재용 씨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그동안 가슴 아픈 사연과 정신병원에 간 사연 등에 대해 알아볼까 합니다.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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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의 길을 선택하며..

배우 이재용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힌 명품 조연입니다. 이재용은 강원도 춘천시 태생이지만, 자란 곳은 경상남도 마산시라고 합니다. 마산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철학과에 입학합니다. 막상 대학에 와서는 전공보다 연극에 매진했습니다.

중학교 때 단체 관람했던 연극 ‘아일랜드’가 이미 길을 안내했다고 합니다. “4년 동안 공짜 연극은 실컷 볼 수 있겠단 생각에 써클룸을 찾았어요. 선배들이 바로 무대 위로 데려가 오디션을 보더니 신입생 환영작품 주인공을 시키더군요.” 이후 수많은 연극에서 내공을 쌓고 이런저런 독립영화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비쳤습니다.

신 스틸러

평소 말투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며, 극 중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배역을 맡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주로 높으신 분들 역할을 많이 맡는데 조폭 보스, 군 장성, 금융기관 회장, 펀드매니저, 재벌 총수, 대기업 총수, 언론사 사주, 경찰청장, 국회의원, 장·차관, 고위 관료, 검찰·국정원 고위층 역할을 맡기도 하였습니다.

사극에도 자주 얼굴을 비추었는데, 2000년대 초반에 방영한 야인시대에서 일본인 순사 미와를 매우 실감 나고 찰지게 연기해 야인시대를 보고 자란 80-90년대생들에는 배우의 이름보다 미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또한 그는 2001년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영화 친구에서 조직 보스 차상곤 역할로 관객의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영화 친구에서 장동건을 끌어오기 위해 수표를 흔들며 “이게 바로 의리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미친 존재감을 알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드라마 야인시대, 해신, 영화 친구 등 선 굵은 캐릭터를 소화해내며 ‘신 스틸러’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대머리

이재용은 실제로 대머리기 때문에 주로 가발을 쓰고 연기를 하는데, 전체 머리를 삭발하고 착용해야 하는 전두가발을 사용해서인지 다른 가발을 쓰는 배우들보다 스타일이 매우 자연스럽고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보여주는 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 지구를 지켜라 와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에서는 가발 없이 내추럴한 모습으로 연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신병원에서 “살아있는 지옥을 봐 버렸다”

그는 과거 “부산에 있는 정신병원에 사이코드라마를 하러 다녔었다.”라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7개월 정도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병원 안에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을 보면서 당시 “살아있는 지옥을 봐 버렸다.”라고 하였습니다. 환자 중에는 “대부분 자기하고 제일 가까운 가족에게 배신당하거나 버림을 받아 아픈 사람이 많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나로서는 나도 세상의 소외가 되면 저런 모습으로 버려질 수 있겠구나라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그 모습에 크게 상처받고 난 다음부터 우울증이 깊게 왔는데 깊어진 마음의 병으로 급기야 조울증 판정을 받기에 이르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까지 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약물 치료를 하긴 했지만, 결국 그를 절망의 나라에서 그를 구한 건 본인이었는데 바로 명상을 통해 안정을 찾은 겁니다. “보통 인간이 하루에 3,000가지 이상의 생각을 하는데 대부분 쓸데없는 생각이고 명상을 통해 생각을 가르치게 하다 보면, 3,000가지를 들고 있다가 3~4가지로 줄어드니 얼마나 편하겠냐?”라며 이때 우울증 극복과 연기 공부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폐암

그렇게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갈 무렵, 갑자기 시련이 닥칩니다. 바로 어머니의 폐암 말기 판정이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이 2009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6개월간의 투병 끝에 먼 길을 떠나셨다.”라고 안타까움을 말해주었습니다. 당시 돌아가실 때 원하셨던 걸 물으니, 무덤을 쓰는 걸 원치 않으시어 조문객들이 주신 돈으로 불상을 조성해서 모셨다라고 하였습니다.

배우 이재웅은 “늘 자신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어머니셨고 나한테 물려주신 최고의 자산은 자비심이었는데, 난 참 속이 좁고 이기적인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님은 힘든 사람을 보면 못 견뎌 하셨다.”라며 안타까움을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장례식 사흘 동안에 눈물을 안 흘렸다.

그 후 부산에서 49재를 7주를 하는데, 그때 서야 장례식 때 못 울었던 울음들이 터져 나오는데 마음 놓고 울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가난한 형편에 한 많은 어머니의 인생, 그 삶이 너무나 처연해 감히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던 아들. 앞으로 꽃길만 걸으시길 바라며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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