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부른 가수 일본서 노숙 생활 “아들마저 혈액암으로 먼저 보내”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가수 김미성을 아시는 분들이 많이 계실까요? 젊은 세대는 잘 모르지만, 어머니, 아버지들 세대는 잘 아시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녀는 1970년대를 풍미했던 당대 최고의 가수였습니다.

37세란 늦은 나이에 가수로 처음 데뷔하였지만 아쉬움, 먼 훗날 등의 노래가 히트를 하며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가수였습니다. 오늘은 가수 김미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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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미성은?

김미성은 1946년생으로 올해 만나이 77세입니다.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는데 그녀는 자신의 정확한 나이를 모른다고 고백했고 호적에 있는 1946년은 자신이 어릴적에 세상을 떠난 언니의 호적으로 생각된다고 했습니다. 17살의 어린 나이에 김미성은 당대 톱가수였던 박재란의 무용수였으며, 전설의 개그맨 서영춘과 배삼룡 등과 호흡을 맞추면서 코미디언으로 활동하며 MC로도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코미디언보다는 늘 가수를 꿈꿨다고 합니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김미숙’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었습니다. 김미숙은 조금 더 가수에 어울리는 이름을 원해 서영춘에게 예명을 부탁했고, 서영춘이 ‘아름답게 노래하라’는 뜻으로 ‘김미성’이라는 예명을 썼다고 합니다. 김미성은 당시를 말하길, “‘아름다운 목소리가 전 세계로 울려 퍼져라,이 노래가 나오면 히트가 돼라하셨다.”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36살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아쉬움이라는 곡으로 가수의 꿈을 이뤘습니다.

그녀는 2004년사랑은 김치맛이야로 활동을 시작했고 그녀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절인 1970년~1980년대입니다. 김미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먼훗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외에도아쉬움,마음,여자의길` 등 명곡 같은 좋은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혼모 스캔들

그녀가 가수로서 최정상 자리에 올랐을 때 스캔들이 터집니다. 바로 미혼모스캔들입니다. 가수 김미성의 남편은 당시 태진아, 윤천금 등 스타들의 매니저로 당시 최고의 매니저였던 타미킴이었습니다. 과거 방송에서 가수 김미성은 “제 남편은 최고의 매니저였던 타미킴이라는 분이다. 태진아, 정종숙, 윤천금과 아울러서 정윤선, 조경수 매니저로 활동했다.”라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어 김미성은 “저는 박재란 씨 무용수로 일하면서 남편을 만나게 됐던 상황이다.

저희가 연인 사이일 때, 아들을 임신하게 됐던 것이다. 근데 제가 노래한다고 헤어졌던 상황이다. 그래도 아기 아빠가 헤어지면서도 매니저로 활동했다. 이런 이유로 노래 부른다고 하니깐, 유명 작곡가 장옥조를 소개해 줬던 상황이다. 그런데 노래를 남기고 혈액암으로 멀리 하늘 나라로 떠나게 됐다.”라고 아픈 사연을 고백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전 재산 탕진

하지만 가수로 데뷔 후 그녀의 삶은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창 돈을 많이 벌 때 자신의 운전기사가 교통사고를 냈다. 한 사람은 죽고 다른 한 사람은 뇌수술을 받았다. 운전기사가 낸 교통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전 재산을 탕진하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이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불법체류자

일본에서 새 출발을 하고자 떠났지만 비자 문제로 결국 불법체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김미성은 “처음에는 한국과 일본에 왔다, 갔다 했다. 그런데 비자 때문에 안 되겠더라. 비행기 푯값만 많이 들고. 일본에 취직해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는 일본에 있는 사람들이 그냥 비자 없이 일본에 있으세요.

한국 들어가도 잘 안되니까라고 하더라. 그렇게 일본에 있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비자가 없는 날부터 내가 내 몸이 아닌 거다. 불안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녀는 “전철 타고 다니는 분들이 앉아 계시면 가서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가수 김미성이에요. 노래 들어보세요라고 하면서 노래 테이프를 나눠드렸다.”라고 할 정도로 삶이 곤궁했고 입에 풀칠하기도 정말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생활을 일본에서 10년, 비자가 없어서 사람 취급받지 못 받았으며 잘 곳이 없어서 24시간 운영하는 극장의 화장실에서 잠시 잠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힘든 10년을 보내다 불법 체류 자진 신고자에 한해 허락된 출국허가를 받아 한국으로 다시 귀국을 하게 됩니다. 당시 전 재산이 4만 엔이었다고 합니다. 남대문에 가서 환전하니 45만 원이었고, 김미성은 결국 아들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혈액암으로 아들마저

하지만 그녀는 노래가 너무나 좋았고 결혼 대신 노래를 택했다고 합니다. 아들은 김미성이 키웠습니다, 너무나 바빠 아들과의 함께 보내는 시간도 거의 없었는데 아들이 혈액암에 걸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녀에겐 정말 아들에게 미안함과 죄책감 등 여러 아픈 손가락이라고 합니다. 이에 관해 김미성은 “제가 아들을 하나를 낳았다. 그런데 아들하고 있지 못한 게 아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면 아들하고 있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김미성은 “아들이 혈액암으로 갔는데 엄마가 너무 노래만 치우쳐서 저하고 밥 먹은 시간도, 여행 간 시간도 없던 것이다. 하늘나라 가기 전에 며칠 좋았을 때 가족끼리 여행 가자고 했는데…. 그걸 가지 못하고 먼저 떠났다.”라고 전했습니다. 김미성은 “살면서 저는 면사포도 못 써보고 남편이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아들은 혈액암으로 갔다. 아들이 죽었을 때 저도 죽으려고 했다.”라며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언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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