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뒤늦게 밝혀진 충격 비극 “죽은 아빠가 내 재산 다 날려”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지난 방송된 채널A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에서는 개그우먼 이경애가 출연해 아버지의 학대와 노름으로 전 재산을 알린 가슴 아픈 가정사를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방송에서 공개한 사연 외에도 이경애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과거사들이 더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때 누구보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마저도 무용지물로 유년 시절부터 고달픈 인생을 살아왔고, 최근에는 사기까지 당했으며, 또한 집안에서는 너무나 충격적이 되게도 쓰레기들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도대체 이경애는 왜 집 안에 쓰레기들을 끌어안고 살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이경애의 삶과 함께 그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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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시절

이경애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 행복했던 시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술과 내기로 세월을 보내셨고, 어머니는 그 스트레스로 정신 이상 증세까지 보이는 등 유년 시절이 참으로 불행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가정폭력이 난무했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술 마시는 아버지를 말리다가 시비가 붙으면서 싸움으로 이어졌다며, “두 분 다 고집이 셌던 것 같다. 싸우고, 피가 터지고, 어디 나가고 그러면 나는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도 못 갔다.”라고 털어놓으며, “당시 부모는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라고까지 생각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이경애는 ‘나는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고, ‘나는 왜 태어났지?’라는 생각도 자주 했을 정도로 집 안에서 자신에게 무관심한 부모님 때문에 존재감도 없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어머니가 13년간 행상으로 어렵사리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하셨지만, 아버지가 내기로 집을 날리셨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개그우먼이 된 이후까지 10년간 단칸방에서 일곱 식구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원래 꿈은 판사였습니다. 머리도 나쁘지 않아 가정 형편만 괜찮았다면 할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

그러던 어린 시절, 그녀의 어머니는 술로 월급을 탕진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게를 꾸리기 위해 행사에 나갔지만, 아버지가 노름으로 집을 날리자 충격을 받아 극단적 시도를 5번이나 하셨고, 죽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경애는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하길, “엄마가 13년간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집을 샀는데, 1년 만에 아빠가 슬롯머신에 손을 대서 집과 차, 월급 전부 압류됐다. 엄마가 사라졌는데, 뒷산에서 목을 매려는 걸 발견했다.

동생들과 함께 가서 가까스로 말렸지만, 엄마는 그 뒤에도 네 번이나 더 극단 시도를 하셨고, 그때마다 내가 발견하는 바람에 나는 깊은 트라우마가 남았으며, 엄마한테 돈 때문에 그런 거야? 그럼 내가 돈을 벌게!라고 말했다.”라며 하였습니다. 당시 이경애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다고 합니다.

이경애는 엄마에게 돈을 많이 벌어 호강시켜드릴 테니 제발 가지 말라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고 다섯 남매 중 셋째였던 그녀는 이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일찍 집안 형편을 헤아리고,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돈을 벌기 시작한 이유

특히 그녀는 초등학교 졸업 후 학비가 없어 중학교 입학을 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오 남매를 모두 보살피기 어려웠던 바람에 이경애를 남의 집으로 입양 보내려고까지 하셨다고 합니다.

입양까지 갈 뻔했던 일을 겪은 후로 이경애는 가족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기로 다짐합니다. 수세미, 코코아 등 방문 판매하며 어린 시절부터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한 번은 아파트에서 수세미를 팔다 잡상인으로 걸려 경비 아저씨에게 4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벌을 받기도 했는데, 경비 아저씨는 물건도 돌려주지 않은 채 밤 8시까지 벌을 세웠고, 그 나이의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시절에는 그냥 넘어갔지만, 요즘 기준으로 보면 이른바 아동학대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녀는 나쁜 어른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1981년 여고 연극반 시절 만난 선생님을 통해 본받고 싶은 어른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본받고 싶은 유일한 어른이었던 선생님의 도움으로 이후 개그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해 개그 음원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승승장구하지만 전 재산 다 날려…

당시 대기업 임원 월급이 40만 원이었던 시절, 이경애는 콘테스트 상금으로 50만 원을 받았고, 그걸로 동생들의 학비를 다 해결해줬으며, 또한 광고를 찍으면서 당시 반지하에서 17평 집으로 옮겼고, 이후 34평까지 이사를 하는 등 최고 전성기 때는 한 달에 1억 원까지 벌기도 했다고 합니다. 80년대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가 1억 원이던 시절, 이경애는 한 달에 밤무대를 13군데까지 다녔고, 하루 출연료가 최고 1,300만 원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수입은 모두 매니저 역할을 했던 아버지가 관리했습니다. 아버지와 불화가 심했던 어머니는 남편이 보기 싫어 이경애의 매니저 역할로 아버지를 내보냈고, 그렇게 아버지가 수입도 관리하게 됐으며, 아무리 일해도 이경애는 돈 10원 한 푼 만져보지를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아버지는 딸에게 한 달 동안 밤무대 일을 30일 동안 시켰고, 열이 펄펄 끓어도 상관없이 일을 시키는 등 돈벌이를 위해 딸을 그야말로 학대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경애는 우리 아빠는 이상하다라고, 돈밖에 모른다라고 생각했다며, “나는 돈을 만져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두 아빠가 관리했다. 나는 수입으로 땅을 사고 싶었는데, 아빠는 투자를 원했다. 하지만 아빠가 은행 주식을 샀다가 은행 부도와 함께 전 재산이 사라졌다.”라고 털어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40세가 돼서야 비로소 자신의 통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경애의 아버지는 주식 공부도 안 하고 남의 말만 듣고 투자했고, 그 당시 파산하는 주식을 샀을 정도로 경제의 문외한이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건강 악화로..

모아놓은 전 재산을 다 잃고도 다행히 집 두 채는 남아 있었지만, 아버지는 암에 걸리고, 어머니는 간경화가 심했으며, 부모님이 보험도 하나 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에 이경애는 병원비를 이겨낼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부모님은 중환자였기에 병원비가 일주일에 870만 원씩 나갔는데, 응급실과 1인실을 계속 오가다가 나중에 돌아가실 때는 6인실에서 돌아가셨고, 5년을 앓고 돌아가셨을 때는 이미 집 두 채를 다 팔고도 돈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까지 세상을 떠난 그녀는 어머니와 이별 뒤 우울증이 와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되는데, ‘삶의 뿌리가 없다’라고 느껴졌는지 어머니 때문에 돈을 벌었는데, 돌아가시고 돈은 다 없어지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니까 끝이 안 보인다는 생각에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이혼과 재혼

게다가 겉으로는 늘 웃는 얼굴로 남에게 웃음을 줘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그녀의 굴곡진 인생은 도대체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경애 씨는 개그우먼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첫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결국 이혼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한 카페에서 우연히 합석하며 만난 김용선 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간이 안 좋아진 김용선 씨는 전처와 낳은 큰아들로부터 간 이식받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사랑 하나로 결국 2002년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경애 씨는 결혼 후 자신이 임신할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 넘었고 남편은 50대 중반, 아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이경애 씨는 인공수정을 결심했고 정말 어렵게 딸 김희서 양을 낳았습니다. 이제 남편과 소중한 딸 희서 양과 함께 세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끝없는 불행의 연속

부모님의 간병비로 모든 재산을 날리고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온 남편과 아이 그렇게 새 출발을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이경애 씨가 암 선고받았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알고 보니 맹장염을 잘못 판단한 오진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맹장염 수술을 마친 그녀는 두 달 후 이번에는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되는 크게 다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통사고는 단지 사고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경애 씨, 남편 김용선 씨의 건강까지 나쁘게 만들었습니다. 아내를 걱정하던 김용선 씨가 며칠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더니 간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겁니다. 결국 이경애 씨는 자신의 재활을 포기하고 남편의 병간호에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몸 오른쪽 마비 증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픈 상태였음에도 이경애 씨는 남편의 병원비를 위해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행사장에서 감전당해 몸이 공중으로 튀어 올라 응급실까지 실려 가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한시도 편안할 날이 없던 이경애 씨는 오로지 남편과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하지만 남편 김용선 씨는 2013년 1월 투병 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딸 ‘희서’뿐이었습니다.

아픔을 딛고 재기하려 하지만….

사실 오랜 시간 동안 남편과 본인 병 치료를 한다고 재산을 얼마 모으지 못했던 이경애는 딸이 스스로 건사를 하려면 앞으로 10년 이상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큰 슬픔에 빠져 50년 동안 마실 술을 몇 달 만에 마시는 등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과거 벌였던 사업으로 억대의 빚까지 지게 되며, 극심한 생활고에 우울증까지 생기게 되는데, 결국 생활고를 이겨내기 위해 한겨울에도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했고, 병원에서 시체를 닦는 아르바이트도 하는 등 생계를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하나밖에 없는 늦둥이 딸은 또 어릴 적부터 아토피 증상이 심했고, 그 바람에 이경애는 자연과 가까운 남양주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딸의 아토피 때문이기도 했지만, 스스로의 건강 때문이기도 했는데, 이경애 역시 맹장염 수술과 갑상샘 항진증으로 투병까지 하는 바람에 공기 맑은 곳을 찾아간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그녀는 과거 사업 실패의 아픔을 딛고 다시 억대 매출 사업가로 재기에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비만이 된 딸을 위해 관심을 갖고 있던 어묵을 사업 아이템으로 어묵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사업이 잘 풀려 억대 매출을 올리며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정을 바친 사업은 그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다시 안타까운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꿈을 담아 가게들을 운영했지만, 그만 코로나로 인해 폐업하게 되며, 사업은 또다시 망하게 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살고 있던 집은 인테리어 시공사기로 엉망인 상태로 변해버리게 되었습니다.

페트병을 모으게 된 그녀

공사를 맡기면서 선불을 줘버렸는데, 시공업자들은 칸막이만 해놓고 도망을 가버렸고, 전기를 하나도 연결하지 않아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으며, 홀딩도어마저도 거꾸로 달아놓아 문도 닫을 수 없었습니다. 공사가 잘못되어 물이 새기도 했고, 온통 날림 공사의 흔적만이 가득했던 그녀의 집 수납장 안에는 파란 봉투에 재활용 페트병, 쓰레기가 가득 담겨 있는 충격적인 상황도 공개되었습니다.

이경애는 밝히길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비상식량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겼다. 그래서 식량을 보관하려고 페트병을 모아 놨다. 100개를 목표로 모으고 있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코로나로 두려움이 막 왔다. 혹시 이게 심해지면 정말 쌀도 없으면 어떡하지? 나는 괜찮은데 우리 딸은 어떡하지? 공포가 왔다. 그때부터 나는 안 먹어도 우리 딸은 지켜야 하니까 쌀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모았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또한 “한 번에 확 사업이 접어지니까 삶의 끈이 놓아지면서 불안한 마음이 너무 심하게 왔다. 이게 다 우리 딸을 살리는 거로 생각했다.”라며 무척이나 딸을 걱정했습니다. 그간의 인생에서 꿈은 단 한 가지 단란한 가정이었다는 이경애. 단란한 가정이 얼마나 간절했길래, 그녀는 그런 소박한 꿈도 이뤄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모쪼록 파란만장하면서 고독하고 너무나 힘들었던 그녀의 인생이 앞으로는 딸과 함께 부디 웃을 수 있는 나날들만 가득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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