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세 윤석화 현재 항암치료 거부 “자식들 전화 애타게 기다리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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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정신 잃고 쓰려져..

최근 연극배우 윤석화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윤석화는 현재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고, 항암 치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죽음을 대면한 상황에서 “나답게 살다, 나답게 가겠다.”라고 충격 선언을 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투병에 들어간 건 지난해 8월부터였는데, 당시 윤석화는 박정자, 그리고 손숙과 함께 연극 공연을 마친 뒤, 영국 출장지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고 합니다.

당시 윤석화는 갑자기 쓰러졌지만, 사실 이전부터 징후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특히 그녀는 쓰러지기 이전부터 왼쪽 팔이 약해지며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때 그녀가 선택한 건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쑥뜸 치료였고, 쑥뜸 치료를 받던 중에도 주변에서는 아무래도 큰 병원에서 진단받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윤석화는 바쁜 일정 때문에 병원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고, 그러다 결국 우리나라도 아닌 머나먼 영국에서 결정타를 맞은 셈이었습니다.

20시간 넘는 수술

이렇게 암이라는 병은 항상 무섭게 허를 찌르는데, 당시 남편과 후배가 현지 병원의 의견을 듣고 빠르게 그녀를 위해 대처하게 됩니다. 이들은 먼저 에어앰뷸런스를 수배해 런던에서 서울로 급송했고, 국내에 도착하자마자 윤석화를 연쇄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이송시켰다고 합니다.

병원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게 되었고, 뇌에서 적잖은 크기의 종양이 발견되자 최대한 빠르게 수술을 집도했지만, 그런데도 수술 시간은 20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합니다. 이토록 긴박하게 모든 것이 진행된 것을 보면, 당시 윤석화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이었는지 그 수위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신을 잃었던 윤석화는 중환자실에서 나와 한참이 지나 의식을 회복한 후에야 이 모든 과정을 알게 됐고, 죽음을 대면할 시점임을 깨달은 순간, 앞으로 어떻게 치료받을지 어려운 결정을 하게 됩니다.

치료 거부 선언

중요한 순간 앞에 담대한 결단은 윤석화의 전매특허인데, 당시 그녀는 의사를 설득하며 “나를 내보내 주세요. 이렇게 병원에서 삶을 연명하는 것은 나답지 않아요. 3개월을 살든 6개월을 살든 중요하지 않아요. 하루를 살아도 괜찮으니 윤석화답게 살다, 윤석화답게 죽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연극배우 윤석화 어느 날 갑자기 뚝딱 만들어진 거 아니에요. 당신이 내 팬이었다니 도와주리라 믿어요.”라며 주치의에게 죽어도 상관없으니 치료를 거부하겠다는 충격 선언을 하게 됩니다.

주치의는 젊은 시절 윤석화의 연극 아가씨와 건달들을 8번이나 봤다고 하는데, 그토록 ‘찐팬’이라 할 수 있으니 윤석화는 얘기가 통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리고 정말로 통했으며 전격적으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 집으로 이동해 서울 삼청동 한옥으로 귀가하던 날, 윤석화는 강 박사에게 엄지척하며 “고맙습니다. 윤석화 팬 자격이 있네요.”라고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치료를 거부한 그녀는 이때부터 생과 사의 갈림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본인은 감수한 바이지만 지켜보는 사람들과 간병하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의식 불명일 때는 물론, 병원에 다닐 때도 혼자 걷지 못해 업에서 계단으로 가는 등 상황은 점점 나빠져 갔고, 또한 병문안을 왔던 지인들은 그녀의 상태를 본 뒤 어두운 낯빛으로 돌아서곤 했다고 합니다. 연극 후배, 교회 신자, 문화계, 예술인, 정치인들까지 그녀의 소식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병문안을 왔고, 그 지인들은 윤석화에게 다시 항암 치료받자라며 권유했지만, 윤석화는 끝내 그 유혹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은?

그녀가 운영하던 공연 예술잡지 ‘객석’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형옥 대표는 “움직이지 못해 침대에 누워 있는 와중에도 휴대폰을 꼭 쥐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윤석화는 “죽음이 찾아와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식들의 안부 전화를 놓치지 않고 받기 위해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고, 그렇게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엄마의 마음을 보노라면, 아무리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겠다는 윤석화라도 그녀 역시 가족과의 이별은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참고로 그녀의 아이들은 막내만 빼고 학원 문제 때문에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지금은 윤석화에게 와 있는 상태고 그런 아이들에 대해 윤석화는 말하길,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을 꼽으라면 우리 아이들을 키운 거예요. 참으로 기뻤고, 좋은 엄마가 되도록 아이들이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도 너무너무 감사해요.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 공항으로 마중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기적 같은 일

많은 암 환자가 그렇듯, 그녀도 여러 민간요법을 알아보고 시도를 해봤지만, 극적 반응이 오거나, 위안을 주는 것은 없었고, 그렇다고 병원에서 처방해준 항암제에 의존하자니 항암제는 식욕을 떨어뜨렸고, 밥을 못 먹으니 기력이 더 약해져 갔습니다. 윤석화는 그렇게 대부분 시간을 누워 지냈고, 그러다 쓰러져 잠든 뒤, 아침이 되면 눈을 뜨기 힘든 악순환이 반복되게 되었습니다.

결국 병원에서 처방해준 항암제는 먹을 때와 안 먹을 때를 한두 달 정도만 비교한 뒤 버리기로 했고, 이때부터 그녀는 세 가지를 꼭 실천하기로 마음먹게 되는데, 그 세 가지는 독일산 pm 주스를 마시는 것과 쑥뜸을 받는 것, 그리고 기도였습니다.

그렇게 항암 치료를 거부한 윤석화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밀어붙였고,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마침내 기적적으로 몸이 살아나는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너무 신기하게도 다시 움직이고 조금씩 걸으며 회복되는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그렇게 되자 퇴원한 지 2개월 만에 병원을 찾아 종합검사를 진행했고, 의사는 “모든 것이 좋아졌네요. 참 다행이고, 감사하고, 기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미안하네요. 이렇게 회복하기까지 병원에서 해준 게 없어서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윤석화는 자신이 이만큼 살아내고 있는 건 앞서 말한 그 세 가지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특히 pm 주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는데, 종일 pm 주스를 끼고 다니며 정말 열심히 마셨고, pm 주스는 몸에 유익한 채소와 과일을 칵테일 한 가공 음료로, 주로 여성들이 다이어트용으로 마시지만, 암 환자인 윤석화에게는 그 주스가 항암 효과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찾아온 뇌종양이 윤석화에게 죽음을 대면하게 만들더니, 그녀는 어느 순간 자리를 털고 일어났고, 걱정해 준 지인들의 간절함이 통했는지, 민간요법 효력인지, 의지가 뇌를 관통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의식이 돌아온 이후 그렇게 몸을 일으켜 외출까지 하게 된 지가 이제 두 달째로 접어들었다고 합니다.

교통사고 이후에도 불굴의 의지

사실 윤석화는 이전에도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던 적이 있었는데, 과거 어느 날 밤 10시경, 공연 연습과 TV 녹화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고, 그로 인해 갈비뼈 6대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해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이 출연하는 연극 마스터클래스 공연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있었는데, 하지만 무리하게 공연을 강행하면 안 된다는 주치의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윤석화는 공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고, 결국 공연을 취소하는 것이 아닌 연기를 결정하며 일단 안정을 취한 뒤, 사고 후 고작 20일 만에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선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6천만 원을 기부한 뒤였기 때문에, 그 기세를 이어 인생에서 큰 시련을 맞이해도 보란 듯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라는 강한 의지로 그렇게 공연을 강행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제가 생각해도 조금 기적 같다. 사고가 난 뒤 정확하게 제가 20일 만에 무대에 섰다.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 정도가 최소한 한 달이 걸린다는데 20일 만에 휠체어를 타고 공연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을 위해 제가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 공연을 꼭 해내야 한다는 믿음이 저에게 준 기적 같은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극심한 통증을 잊게 한 건 바로 관객과의 약속, 그리고 작품이 갖는 엄청난 매력.”이라고 밝혔습니다.

윤석화는 당시 갈비뼈가 부러져서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끝끝내 그 공연을 해냈고, 상처를 통한 영광, 이런 것들이 굉장히 자신에게 위로를 줬다고도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큰 상처를 입으며 인생에서 큰 시련을 맞기는 했지만, 윤석화는 오히려 그 시련을 자신에게 더 큰 심적 위로를 주는 계기로 삼았고, 결국 그 다짐을 이뤄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늘 강인한 모습으로 살아왔던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의 신념을 굳게 믿고 의지를 가졌던 것이었고, 그렇게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조금씩 치유해 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말하길, “마음의 아픔이든 육체적 병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든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프다는 것에 갇히지 마라. 우리 엄마에게도 배웠죠. 엄마는 난소암으로 4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지만, 그 후 16년을 살다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교회에서 만난 이들이 ‘권사님 얼굴이 좋아지셨네요’하면 ‘난 암 말고는 건강해요’라고 답했죠.아픈데 좀 쉬라고 하면 ‘유별 떨지 마라. 일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으면 감사한 거지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이유가 뭐냐?’라고 말했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지금 암 빼고는 건강하다고 말하며 인생의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고 합니다. 윤석화가 몸을 회복하면서 세운 목표는 바로 하루에 한 번씩 누군가를 만나고 함께 밥 먹기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일단 연극계에서 잘 살아왔다는 걸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로는 박정자와 손숙이고, 아래로는 뮤지컬 디바 최정원과 전수경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윤석화는 선배 손숙의 무릎 위에 머리를 울리며 “언니들 제발 아프지 마. 아픈 건 나 하나로 족해.”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뇌종양 수술을 받은 지 9개월, 항암 치료를 거부한 배우 윤석환은 그렇게 씩씩했고 역시 명불허전 명배우다웠습니다. 조금씩 회복을 하는 그녀가 앞으로 병을 완벽히 떨쳐내 다시 예전의 건강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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