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태현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안타까운 소식 뇌출혈과 암투병으로 결국…” 그녀의 근황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TV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곤 합니다. 특히 60년대에는 정부의 지원으로 중앙정보부 실무자가 대본을 쓰고, 신성일, 이순재, 태현실, 김무생 등 당시의 인기 배우가 총출동한 실화극장이 장안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국민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한 배우 태현실 씨는 2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성공한 연기자인 동시에 다복한 가정을 이룬 주부로 연예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KBS 탤런트 공채 1기인 그녀는 동기인 최불암, 김혜자, 박병호, 정혜선 등 내로라하는 연기자들과 함께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주역으로 출연해 자유로운 여성상을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특히 지난 1972년에 방영되었던 주간 연속극 여로에서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며 온 국민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벅찬 감동을 안긴 바 있습니다.

또한 야쿠르트 아줌마의 아이콘이라고 불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태현실 씨는 자취를 감춥니다. 태현실 씨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태현실
👉“배우 남궁원씨의 최근 충격적인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아내와 아들을 위해 밤무대 전전하다가 결국…

그녀의 과거

태현실 씨는 어렸을 때 월남해 김무생, 최불암, 유동근과 같은 인천 출신입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영화를 무척 좋아했지만, 집안 분위기가 무척 엄해서 영화배우가 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첫 데뷔작은 이형표 감독의 아름다운 수의였는데 어머니의 허락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배우로 활동하다가 나중에 결혼하면 절대 이혼하지 않는다라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배우 활동할 때 어머니가 항상 보디가드처럼 따라다녔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집요하게 딸의 행동을 감시했기에 연예계에서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삼각관계에 휘말린 적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불화 원인 제공자가 바로 태현실이라며 그녀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신성일이 태현실 씨와 바람을 피워서 엄앵란과 싸웠다라는 추측성 기사였습니다. 스캔들 때문에 어머니가 “멀쩡한 딸 혼사 길이 막혔다”라고 펄펄 뛰시다가 드러눕기까지 하셨습니다.

“엄앵란과 신성일이 결혼 이후에 작품을 같이 하게 되었어요. 1965년에 5편, 66년에 4편의 영화를 같이 찍다 보니까, 나와 신성일이 사귄다라는 추측성 기사를 내보냈어요. 그 때문에 나는 엄앵란 팬들에게 큰 미움을 샀어요. 당시에 나는 남편과 연애 중이었어요. 그래서 촬영장에도 자주 찾아왔는데 신성일과의 스캔들 기사를 보고는 우리 3명 모두 멋졌게 웃었죠.” 태현실 씨 어머니가 들어 눌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지만 태현실 씨는 담담하게 넘깁니다. 신성일과의 스캔들이 단 한 번의 구설수였습니다.

결혼

태현실 씨는 남편과 데뷔 이듬해부터 6년 동안 비밀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광산업을 하고 있었고, 남편 역시 공업사 삼도실업의 사장이었습니다. 이후 태현실 씨는 1968년 남편 김철환과 결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태현실 씨는 아들과 딸 한 명씩을 낳게 됩니다.

복귀 후 대박난 활약

태현실 씨는 아이를 낳은 다음에 무난하게 연예계에 복귀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복귀작 여로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당시 여로는 211회를 반영하는 동안 전국적으로 초미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여로 때문에 일화가 많았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이 드라마를 보고 집 나갔던 며느리가 되돌아서 고맙다.라고 내 손을 붙잡고 울기도 했어요.

어떤 공장 주인은 이 드라마 때문에 작업을 중단해서 피해를 봤다라고 항의하기도 했고, 영화관에서는 드라마 시간대에 관객들에게 아예 TV를 보여주고 그 이후에 영화를 틀어주기도 했죠.” 이후 나이가 좀 있는 배역을 맡게 됐고 강부자, 김혜자, 사미자, 선우용녀, 여운계 등과 함께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90년대 들어 연기는 뜸했는데 야쿠르트 cf는 오랜 기간 계속 맡으면서 야쿠르트 아줌마 떠올리면 태현실 씨의 얼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때 태현실 이혼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지만, 남편과 평생을 해로합니다. “내가 아이들 키우면서 사람들에게 항상 행복하게만 보인 것 같은데 사실 항상 행복했던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혼 등 그런 생각을 적게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인내심이에요. 부부에게 불화가 생기는 것은 아내와 남편이 모두 참지 못하고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죠.

만약 한쪽이 참게 된다면 부부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지 않아요. 황정순 선배의 경험담에서 내가 새겨들은 말이 있어요. 일이든, 뭐든 1등을 해라! 1등보다 더 큰 보람이 없다. 하지만 집안에서만은 2등을 해라! 그러면 온 집안이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 수 있다.라는 비결이었어요.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남녀평등인 사회가 되었으니 이런 말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낡은 소리로 들릴 거예요.

하지만 부부 사이의 평등이 잘못되어 대립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요즘 이혼율이 높아진 것 같아요.물론 피할 수 없는 운명도 있지만 대부분은 행복이란 자신의 성격에 달린 거예요. 욱하고 터지는 것을 잘 조절한다면 이혼이라든가 형제, 자매 사이에 의가 상할 일이 많이 줄어들 거예요. 이런 면을 난 배려란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봐요.”

납북사건

또한 태현실의 과거 에피소드 중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에 영화배우 최은희가 북한에 피랍되었던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태현실 씨 역시 같이 끌려갈 뻔했었습니다. “최은희 선배님 납북사건 당시에 나도 김희갑 선생님과 더불어 홍콩으로 초청받았어요.

그런데 나와 김희갑 선생님은 일정 때문에 일주일 후에 방문하기로 했는데 그사이에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바로 최은희 선배님이 납북된 거죠. 초청자 이름이 중국계 왕동희로 기억하고 있어요. 그 사람과 퍼시픽 호텔에서 만나 점심까지 같이 먹고 기념사진도 찍었어요. 만약 일정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최은희 선배님과 함께 납복되었을 거예요.”

한동안 보이지 않는 그녀의 안타까운 소식

결혼 이후에도 꾸준한 활동을 했던 태현실 씨는 2000년대가 되면서 거의 작품 활동하지 않습니다. 드라마로는 2004년 작은 아씨들이, 그리고 영화로는 2007년 첫눈이 마지막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다 태현실 씨는 2005년 갑작스레 찾아온 갑상선 암과 이어 찾아온 뇌경색에 70kg까지 몸무게가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철저한 관리로 체중을 감량해 이전보다 건강이 훨씬 더 좋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태현실 씨는 연예인 농촌 돕기 운동본부 부회장, 평화통일 상임위원, 새마을 운동본부 자문위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그러다가 2008년에는 평화통일 가정당의 정책 연설자로 나서서, “평화통일 가정당은 가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라며 정강 정책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물론 태현실 종교가 통일교이고, 가정당 역시 통일교의 지원을 받는 정당이라는 점에서 큰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가정당은 원내 진출에 실패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현실 씨는 “삶을 사는 데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돈이 전부이거나 혹은 경제 성장률이 최고라는 마인드는 어느 정도 벗어날 필요가 있다.”라고 당시 내세우기도 하였습니다.

태현실 씨는 2010년대 중반, 식품 모델로 활발하게 활동하더니 다시금 활동이 잠잠해졌습니다. 당시 태현실 전복장이나 태현실 으뜸해 양념 주꾸미를 선전했는데 대체로 식품 평도 괜찮았습니다. 현재 그녀와 남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은 미국 휴스턴에 거주 중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기대합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