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장진영 부친, 향년 89세 안타까운 비보 “딸 15주기 준비하다 발 헛디뎌…”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내가 곧 그녀였고, 그녀가 곧 나였기에 아프고 힘든 길을 홀로 보내기 너무 가슴 아파. 마지막 가는 길 힘이 되고 싶고 꿈속에서나마 평생지기로 남고 싶었다. 현실에서 못다 한 사랑을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울 결혼 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위암 말기로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 장진영은 김영균과 라스베이거스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손 쓸 수 없을 만큼 전이 된 암에 이내 이별을 직감하면서도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혼인신고 하며 완벽한 부부가 됐음을 공표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혼인신고를 한 지, 단 4일 만에 장진영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남편 김영균은 세상에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생전 멜로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장진영은 세상을 떠나면서도 절절한 러브스토리의 여주인공이 되었습니다. 13년 전에 세상을 떠난 그녀를 그리워하며 장진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배우

사랑의 유효기간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미국 코넬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랑의 유효기간은 평균 900일 정도라고 합니다. 사랑에 빠지면 도파민이 분비되어 행복한 감정이 솟는데 이 도파민의 분비는 1년만 지나도 50%가 줄어들고 결국에는 이성적인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합니다.

900일이라는 기간에 딱 들어맞지는 않아도 아무래도 시간이 흐르면 처음 만나 사랑했을 때 그 감정을 유지하기는 힘들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부부들도 사실 사랑보다는 우정 동지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오늘 영상의 주인공 장진영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위암 판정

장진영은 지난 2008년 9월 위암 말기 진단받고 투병 생활을 1년간 지속해 오다가 2009년 9월 37세의 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왕성하게 활동하던 여배우가 돌연 활동을 중단하고 위암 말기로 투병 생활을 한다고 밝혀졌을 때는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장진영은 2000년 영화 반칙왕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그 이후 영화 소름, 싱글즈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톡톡 튀는 매력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한창 인지도를 높여가던 배우 장진영은 어느 날 소화가 잘 안되는 증상으로 병원에 방문했다고 합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병원에 갔던 장진영은 위암 선고를 받고 곧바로 항암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을 지켜주고 싶었던 매니저와 소속사

이때 이미 위암 말기 판정받았지만 매니저가 직접 해당 사실을 알리지 말아 달라고 기자들을 찾아가 호소하며 다녔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장진영은 위암 판정을 받고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막상 수술에 들어가서 확인을 해보니 상황은 생각하던 것보다 더 심각했고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결국 수술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기자들과 매체를 찾아가며 참담한 표정으로 장진영에 대한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부탁하는 매니저의 모습에 많은 매체는 그 사실을 함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매니저는 장진영과 단순한 업무 관계를 넘어서 가족 같은 사이였기에 그 소식들을 전하면서도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고 합니다.

장진영은 매니저뿐 아니라, 소속사와도 가족같이 돈독한 사이였기에 투병 생활 중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중에게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장진영은 소속사에는 자신이 위암 말기 판정받았다는 사실을 곧바로 밝혔습니다. 소속사는 장진영의 투병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와 계약을 갱신하며 그녀에게 투병 의지를 불어넣었다고 합니다.


연예인과의 계약은 소속사의 수익과 직결되는 것이라 이리저리 다 따져보고 계약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암 말기 투병 생활을 하던 장진영은 재개한다는 보장도 없었고 재개한다고 쳐도 꽤 오랜 시간 공백기가 있어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손해로 다가올 수도 있었지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녀와 선뜻 계약한 소속사의 행보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일각에서는 소속사가 그녀가 마지막 가는 길이 시끄럽지 않게 보호해주려고 계약을 갱신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장진영의 영결식에서도 소속사 식구들이 관을 운구했고 장진영의 투병 시절이나 장례식 또 사후에 대해 고인이 자존심 상할 만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 소속사가 그런 이유로 장진영과의 계약을 갱신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당시 장진영의 소속사는 장진영의 사진이 유출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투병 중인 여배우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뜻으로 최후의 순간에도 이런 원칙을 지킨 덕분에 추측성 기사나 병석에 누운 사진이 퍼지지 않았고 장례 절차도 정중하게 치러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

장진영의 마지막을 지켜줬던 소속사 식구들 그 이상으로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줬던 사람이 또 있었습니다. 바로 그녀의 남편 김영균이었습니다. 장진영의 남편 김영균은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 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재원입니다. 두 사람은 장진영의 위암 발병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인으로 발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진영은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영균에게 부담이 될까 봐 장진영은 그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하고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장진영의 이별 통보에 김영균은 이별을 받아들였습니다. 이후에 장진영이 고한 이별이 그녀의 위암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김영균은 ‘오늘부터 당신의 남자가 되겠다’라며 그녀를 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김영균은 장진영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 후 한창 진행하던 사업까지 모두 포기하고 그녀를 옆에서 직접 보살폈습니다. 병원에서 두 사람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김영균을 ‘장진영의 친오빠`라고 오해할 만큼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헌신적으로 그녀를 간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9년 7월 26일 두 사람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작은 교회에서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을 축하해 줄 가족도 하객도 없었지만, 누구보다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28일에는 성북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면서 공식적인 부부 사이가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혼인신고를 한 지 4일 만에 장진영은 결국 병을 극복하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녀를 떠나보내며..

장진영의 장례식에서는 그녀의 동료 안재욱이 추도사를 낭독했습니다. 안재욱은 “진영아,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널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들, 너와 더 친해지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 많아. 내가 편하게 쉬게 기도할게.”라며 그녀의 죽음을 애도했고 장례식에 함께했던 모든 사람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김영균이 장례식 때 손에 장진영의 몫까지 결혼반지를 두 개나 끼고 있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습니다.

남편 김영균은 2009년 12월에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녀와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이후로도 남편 김영균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수년이 됐음에도 매일 그녀의 기일이 오면 그녀를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김영균은 장진영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장진영의 아버지와 함께 장진영 기념관과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그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고 합니다. 아직도 장진영과 김영균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서로의 이름이 배우자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떠난 지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도 김영균의 그녀를 향한 마음은 한결같다고 합니다.

김영균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몇 년간 두문불출하다가 지금은 그 슬픔을 점차 극복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아마도 더 이상 슬픔 속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기로 한 남편의 모습에 장진영은 이제 하늘에서도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딸 15주기 준비하다 발 헛디뎌… 안타까운 비보

장진영 부친, 장 이사장님은 지난 16일 오후 2시께 전북 임실군 운암면에 있는 ‘장진영 기념관’에 다녀오던 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향년 89세. 장진영 언니 장진이 씨는 “(고인이) 올해 9월 동생의 15주기 행사를 크게 열고 싶어 하셨다. 어제도 그 준비차 기념관에 갔다가 돌아오시는 길에 변을 당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고인은 장진영을 보낸 후 2010년 11억원을 들여 계암장학회를 설립한 뒤 선행을 이어왔습니다. 지난 1월에도 우석학원에 5억원을 기부하며 “살아생전 ‘사람을 키우고 세상을 환하게 밝히고 싶다’던 딸의 뜻이 전달됐으면 한다”면서 “학생 교육과 지역사회 공헌에 앞장서는 우석학원의 발전을 기원한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귀자 씨와 딸 장진이 씨 등이 있으며 빈소는 전주시민장례문화원 특301호실에 마련됐습니다. 발인은 18일 오전 8시 30분이며 장지는 장진영이 잠들어 있는 임실군 운암면 선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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