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영철이 아내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고 쫄딱 망해 버림받아야 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세요.

배우 김영철이 과거 한 방송에 나와 고백하길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모든 걸 잘못하는 바람에 얼마 전 아내가 나에게 이혼 소송을 걸었다. 내가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다시 합쳐 살고 있지만, 사실 오해를 지금도 다 풀지 못해서 오해와 앙금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여하튼 간에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내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너무 모자란 남편이었구나 싶다. 좀 더 많이 관심을 두고 좀 더 웃음도 많이 주고 이렇게 했으면 지금 후회 없이 와이프를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습니다.

이때 방송을 진행하던 MC 이경규가 “예를 들어서 어떤 부분을 부인 되시는 분에게 잘못했길래 마음을 아파하냐?”라고 하자, 김영철 그가 고백하길 “사실 내 생활이 바르지 못했다. 술자리에 많이 가고 또 여러 가지 일들로 아내를 힘들게 하자 결국 아내가 나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하늘을 두고 맹세하건대 공인이 얼굴에 있는데 내가 어디 가서 뭘 그렇게 잘못을 할 수 있겠나. 그리고 커다란 오해는 사람을 골로 보내지 않는다는 작은 오해가 사람을 골로 보낸다. 예전에 아내와 산책할 때 노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아내가 나에게 우리도 저 나이가 되면 꼭 저렇게 손잡고 다니자라고 했는데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게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아내가 지금 이 방송을 볼지, 안 볼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믿고 용서만 해준다면 나는 앞으로 연기 생활 안 해도 좋다.” “그동안 내가 아내로부터 너무 많은 걸 받았는데 정말 한 번만 모든 것에 대한 용서를 해준다면 내 남은 인생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할 거다. 사실 우리가 기분 좋게 살 나이도 20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30년 못 한 거 20년 동안 열심히 해서 갚겠다.”라고 말해야 했던 김영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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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과거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영철은 어린 시절 과외 선생님이 본인의 집에서 숙식하며 가르칠 정도로 굉장히 부유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하면서 세상살이가 고달파지고 말았습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사업이 망한 후 별다른 직업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당시 재봉 일에, 고기 장사에 잡화점에, 당구장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그가 중학교 1학년 때는 당시 9군데나 하던 어머니의 계가 어쩌다 하나가 넘어지니까 도미노처럼 다 넘어지게 되었고, 또한 당시 받을 돈과 갚아야 할 돈이 둘 다 있다보니 그때 받아야 할 집에는 돈을 안 받을 테니 우리 아들 좀 봐달라고 말한 후 그렇게 김영철을 같은 반 친구 집에 두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야반도주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집안이 쫄딱 망하면서 친구 집에 맡겨진 김영철은 원래 성격이 수줍음이 많았는데 이후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의 돈을 탐하는 것은 기본이고,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의 돈까지 탐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고백에 따르면 “여자친구 만나러 갈 땐 옷에 흙도 붙이고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안쓰러워 울면서 돈을 주곤 했고 그럼 자신이 점점 더 불쌍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게 훗날 연기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그의 학창 시절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어쩌다 보니 대학교에는 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배우 활동과 결혼

그러던 어느 날 여자나 꼬실까 하고 명동으로 나갔는데 우연히 이정길의 연극 폭풍의 언덕을 보고 연극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대학도 중퇴하고 연극배우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후 동양 방송 공채 18기 탤런트로 합격해 초반에는 그의 연기력이 투박하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날이 갈수록 평가가 중후하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기 후배인 배우 이문희를 만나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철은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까지 한동안 승승장구하며 여러 차례 연기상까지 받았고 자신감에도 탄력이 붙었으나, 90년대 중반부터 뜻하지 않게 캐스팅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심각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슬럼프와 전성기

당시 그는 운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밉보인 것도 같은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5년간 깊은 슬럼프를 겪으면서 천직으로 여겼던 연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진로를 바꿔볼까?” 고민도 했지만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으므로 무슨 일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세기가 끝날 무렵, 김영철은 엄청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전설이 된 드라마 태조 왕건의 궁예와 야인시대의 김두한 역을 맡게 되면서였습니다. 특히 태조 왕건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궁예가 광기 어린 감정 표현을 하거나 주폭의 모습을 보이거나 하는 등 비정상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데, 이런 장면에서 김영철은 신들린 연기력과 발성을 선보여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태조 왕건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2003년에는 야인시대 2부의 주인공 역 김두한을 맡게 되는데, 해방 전 김두한의 청년기를 다루는 1부의 안재모에 이어 해방 후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내다가 몰락하는 2부에 출연하여 명연기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며 안재모에게 연기 대상까지 안겨준 1부의 히트와 화제성에 비해 김영철 그가 나온 2부는 비교적 인기가 많이 하락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사실 해방 당시 김두한은 20대 후반이었는데 당시 김영철의 나이가 50대에 근접해 극중 친구 역으로 나오는 김무옥, 문영철, 이정재 등이 훨씬 젊어 보여서 이질감이 크게 느껴졌고 또한 일부의 액션활극과 달리, 정치시대극으로 극의 분위기가 바뀌며 젊은 시청자들이 많이 이탈하고 화제성도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중장년층의 고정 시청자가 있었기에 20% 이상의 시청률이 유지되어 연장 및 종영까지 순탄하게 진행될 수 있었지만, 2부 중반부터는 김영철의 극중 비중마저 이정재 역의 김영호에게 밀린다는 평가까지 받았고 실제로도 그럴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내가 그거라니, 4달러 등 미처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인터넷상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게 되었고 그렇게 야인시대의 김두한은 김영철에게는 특이한 방향으로 시기와 세대를 초월한 인기를 선사하는 대역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야인시대에 김두한 역까지 맡으면서 명실상부 국민 배우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거만해지기 시작하는데 드라마 제작진들 사이에서 악명이 대단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는 연출 과정에서 PD의 의견과 맞서는 건 물론,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촬영을 거부하고 집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흔했으며 덕분에 PD가 드라마 제작진은 이런 김영철을 달래기 위해 대부분의 촬영 현장에서 그를 1순위로 촬영을 해줬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깨달음을 얻고 자기의 행동을 고치게 된 계기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공주의 남자에 출연하면서 이순재를 만나면서 바뀌게 됩니다. 현재는 물론, 당시에도 현역 배우 최고참이라 할 수 있었던 이순재가 무려 5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불만 없이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했으며 또한 저런 대선배도 다른 배우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데, 지금껏 자신의 편의만 우선해왔던 행동에 큰 반성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영철 그가 고백하길 “내가 그동안 너무 여유 없이 일만 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게 후회가 된다.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우물가에서 물도 한 잔 마시며 왔어야 했는데…. 그렇게 쉬엄쉬엄 주변을 돌아보며 왔더라면 외롭고 쓸쓸할 때 함께 소주잔 기울일 수 있는 좋은 선후배 친구가 더 많이 남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하느님이 모든 걸 다 주지는 않는 것 같다. 10개가 있다면 많이 주는 사람은 6개도 주지만, 대부분은 7개 정도가 모자라다. 나는 너무 많은 걸 받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좋은 건 아꼈다가 자식들에게 주는 게 아니라 동생들이나 후배들 주고 싶다. 그리고 인생은 이렇게 이야기할 때 서로 힘을 주고, 그 힘을 받아서 내가 다시 그쪽으로 넘길 때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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