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치매다”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투병 중인 윤복희의 안타까운 상황

5살 꼬마부터 시작해 무려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노래를 부른 가수 윤복희는 그야말로 전설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민 가수 중 하나입니다. 7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열정을 보이며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한류 1세대의 주역으로 당시 머나먼 미국 땅에서 재즈의 선구자 루이 암스트롱,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는 밥 호프와 함께 공연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그녀는 그로부터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공백기 없이 활동하며 누구보다 성공한 삶을 사는 듯해 보였지만, 그 환한 웃음 뒤에 가려진 인간 윤복희의 삶에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녀는 한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에 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고 또한 최근까지도 극단적 선택을 한 유명인들이 이해가 간다며 세월 앞에 내일을 준비 중이라고 했습니다.

설상가상 최근에는 건강마저 문제가 생기면서 현재 모든 활동을 중단한 채 투병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윤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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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과거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복희는 어린 시절인 3살 때부터 어떤 아저씨의 목말을 타고 아버지가 만든 뮤지컬을 보았으며, 이후 4살 때부터는 천재 소녀 윤복희라는 타이틀로 무대에 서게 됩니다. 이처럼 극단을 운영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무대를 접할 수 있었고, 그렇게 노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냥 신나게 부르던 어린 윤복희는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무대에서 먹고 자며 지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그녀의 아버지가 당시 정부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서 어느 날부터는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아버지가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홀로 남은 그녀의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남편이 하던 극단 무대에 올라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어린 자식들을 두고 극단을 따라 떠나버리자, 당시 윤복희는 엄마가 보고싶어 매일 밤 눈물로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얼마 뒤 우체국 아저씨가 전보를 갖고 왔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공연하다가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했다‘라는 믿을 수 없는 소식까지 듣게 됩니다.

이처럼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어머니는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고아가 되어버린 그녀는 이때부터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면서 오늘 밤은 어느 집 처마 밑에서 이슬비를 피하나!, 어떻게 허기를 채우지라는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우연히 한 식당에서 심부름하다가, 운 좋게 부엌에서 잘 수 있게 되었고 그날 이후 어린 윤복희가 식당 부엌에서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버지와 어머니가 생각이 나면서 알 수 없는 슬픔과 무서움이 밀려와 잠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그때 그녀는 엄마는 왜 갑자기 돌아가셨을까?”, ,아버지는 왜 감옥에 있을까?”, “나는 이대로 계속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린 나이에 도저히 말도 안 되지만 갑자기 해서는 안 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자기 행동에 창피함을 느낀 그녀가 하던 행동을 멈추고 펑펑 울면서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다짐하게 됩니다. 감옥에 있던 아버지마저 아내가 유명을 달리한 게 자신의 탓이라는 죄책감으로 출소 후 몇 년을 힘들어하다가 끝내 생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의 인연

진짜 고아가 된 그녀는 여기저기를 떠돌며 생활하다가 그래도 어릴 때부터 해오던 춤과 노래 덕분에 16살의 나이로 미 8군 공연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한편 그녀가 17살이던 1963년에는 당시 세계 최고의 가수 루이 암스트롱이 내한 공연을 하게 되는데, 놀랍게도 “한국에 내 노래를 기차게 잘 부르는 젊은 여가수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그 유명한 루이 암스트롱이 윤복희를 찾게 됩니다. 그녀는 어쩌면 루이 암스트롱 덕분에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걸쭉한 암스트롱의 목소리를 정말 많이 따라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미 8군 오디션 때도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내 합격했고 이후 본격적인 미 8군 무대에서도 암스트롱의 노래를 유달리 많이 부르다 보니 결국 이러한 소문이 퍼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의 요청으로 호텔에서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이내 호텔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그때 암스트롱이 그녀의 노래를 듣고 “어메이징, 뷰티플 나와 함께 공유합시다.”라고 외치며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세계적인 가수를 암스트롱과 함께 내한 공연에 서게 된 그녀는 하루아침에 한국 가요계의 신데렐라가 되었고 그녀의 몸값도 껑충 뛰면서 당시 소속사에서는 집을 3채나 사주는 등 마침내 최고의 톱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그녀의 결혼

이 무렵 그녀에게는 사랑도 찾아오게 되는데 상대는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 혼혈 가수 유주용으로 그녀가 미 8군 무대에 설 때부터 이미 알고 지낸 사이였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유주용만큼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 사람은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때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했던 그녀의 미니스커트 역시도 사실은 유주용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에 입었던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하며 그녀가 공연할 때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지내게 됩니다. 이때 그녀는 이 행복이 너무 좋아서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 살림만 하는 주부가 되고 싶다.라는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남편은 자신보다 윤복희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다며 다니던 직장마저 때려치우고 그녀의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훗날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이때부터 둘 사이에 조금씩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당시 가수로서 잘 나가 바빠지는 본인 때문에 남편은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라고 했습니다.

루머와 이혼

이때 설상가상으로 여느 다른 톱스타들처럼 그녀에게도 수많은 루머가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그녀가 유부녀인데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남자 가수인 남진과 열애 중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까지 들리자, 남편 유주용의 질투 아닌 질투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윤복희 그녀는 마음속에 늘 남편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루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남편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어느 날 그녀에게 “자꾸 나쁜 소문이 들리는데 사실이냐? 진실을 얘기해 달라.”며 그녀를 몰아세우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15살 꼬맹이 시절부터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주고 연인이자 남편이면서 동시에 부모 같던 사람이 말도 안 되는 루머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그녀는 그때 홧김에 순간이성을 잃고 “그래 맞다.”라고 대답한 후, 괜한 자존심 때문에 남편이 보는 앞에서 루머와 같은 행동을 하며 갈등이 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허무하게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스캔들이 났던 당사자인 남진과 동거 후 결혼까지 하게 되었지만 3년 만에 다시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이상한 루머가 떠돌기도 했지만,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그때 남진과의 결혼은 전남편 유주용이 보고 질투하라고 그저 남진을 이용했던 것이었고 남진이야말로 자신으로 인해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하며 여자로서 어찌 보면 실패한 인생을 살았지만 가수로서의 윤복희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오랫동안 국민 가수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작년은 전염병 사태로 인해서 데뷔 이래 처음으로 한 달 이상 쉬어봤다.”하고 했습니다.

그녀의 투병

이처럼 5살 꼬마부터 시작해 자그마치 70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현역 가수로 활동하던 그녀가 정말 안타깝게도 최근에는 건강상의 문제로 더 이상 무대에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오빠인 윤항기의 고백에 따르면 “복희가 희귀병인 삼차신경통을 앓고 있어서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아 연예계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현재 여러 가지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 예전에도 윤복희 그녀는 삼차신경통으로 인해 “너무 아파서 공연을 못 했다.”라며 고백했었습니다. 마지막 대학로 공연에서는 결국 무대에서 기절했고, 당사자인 윤복희는 본인이 어떻게 기절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무런 기억이 안 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윤복희 그녀가 최근 한 방송에서 고백하길 “내가 현재 70살 하고도 반이 넘었는데, 현재 제일 걱정되는 건 치매다. 나는 옆에 아무도 없으니까 행여나 치매가 오면 큰일 난다.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로빈 월리엄스도 치매가 와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유명인들이 아! 이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어찌 보면 이해가 간다. 그리고 나는 갈 때 가더라도 폐를 끼치지 않는 상태에서 깨끗이 가야겠다 싶어서, 10년 전부터 쇼핑을 안 한다. 옷도 다 몇십 년 전부터 입던 거 입고 웬만큼은 후배들에게 모두 주면서, 세월 앞에 어쩔 수 없듯 혹시 모를 내 일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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