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연기력에 크게 실망한 후 수치심에 도망친 여배우” 결국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게 되는데…

국민 엄마라 불리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김혜자에게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하길 나는 어떤 한 분야에서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사람은 그 뒤에 희생한 것이 꼭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도 좋고 물도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이 세상에 절대 없다. 즉 내가 남편하고 너무 좋았고 아이들한테도 너무 좋은 엄마였고 연기도 너무 잘했다.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그러니까 배우로서의 김혜자 때문에 우리 가족을 희생시키고 나 스스로도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금간 꽃병이라는 시에서 남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벼운 생체기는 잘고도 깊은 상처가 수정을 좀 먹어 들어 라는 구절이 있는데 내가 국민 엄마로 불리는 동안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상처는 안 줬다고 하지만 잘고도 깊은 상처를 아주 많이 줬다. 우리 아들이 철이 들어서 자기 표현을 할 수 있게 됐을 때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가 대본을 보거나 아니면 무슨 생각을 할 때는 이상하게 엄마 주위에 들어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쳐 있는 것 같다“라고 하는데 난 그 말이 너무 가슴이 아팠다. 아들뿐만 아니라 딸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부터 제 김혜자 아들이야 제 기혜자 딸이야라는 소리에 어떻게든 엄마 욕 안 먹으려고 굉장히 신경 쓰면서 살았는데 괜히 나 때문에 자유롭게 살지 못했다.

그래서 흔히 나를 보고 국민 엄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으로 꼽아줄 때 행복하다기보다 부담스럽다. 내 겉모습만 보고 연기만 보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얼마나 거지 같은 생각을 많이 하고 그리고 진짜 김혜자를 알게 되면 얼마나 거지 같은데 과연 내가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가슴 아픈 사연과 더불어 췌장암 선고를 받고 한 달 반 만에 가족 곁을 떠난 남편 생각 때문에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수돗물같이 줄줄 흐른다는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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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자의 과거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혜자는 일제강점기 및 6.25 전쟁 당시 가족이 모두 생을 마감할 뻔한 위기에 처했지만, 큰 언니의 기지로 몇 번이나 화를 넘겼고 이후 그녀의 아버지가 미 군정 시절 재무부 장관에 해당되는 일을 하면서 거실만 2백 평쯤 되는 대저택에 살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매일같이 손님들이 와서 파티를 했고 또한 집이 워낙 넓다 보니 집이 아니라 공원인 줄 알고 놀러 오는 사람들까지 있었으며, 심지어 그녀의 집을 영화 촬영 장소로 빌려주기까지 했습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풍족했던 환경은 그녀에게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바쁘고 늘 당신의 삶이 가장 중요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옆에서 어머니는 힘든 세월을 보냈는지 어린 김혜자의 기억 속에 어머니의 얼굴은 그리 활짝 웃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실망스런 연기력

그렇게 바쁜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로부터 받을 수 없었던 애정 때문에 그녀는 그렇게 넓은 집에 살면서도 마음 한가운데에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고 그래서 그때 그녀는 그토록 절실했던 그 관심을 배우가 되면 한껏 받고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KBS 1기 탤런트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열망이 너무나 강했던 탓인지 그녀는 배우로 데뷔한 후 드라마 딱 한 편만 하고 곧바로 배우를 그만두게 되는데 그 이후로는 당시 배우가 되고자 하는 열망만 컸지 준비되지 않은 본인의 연기력에 크게 실망한 후 소질이 없다고 생각해 그 뒤로는 수치심마저 들어 도망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절된 삶

이처럼 그녀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사실조차 읽고 싶어서 어찌 보면 결혼마저 그런 수치심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고 했으며 이후 아이를 출산하고 4살이 될 때까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없이 오직 아이에게만 열중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아이를 안는 것조차 참지 못할 정도로 아이에게 몰입했지만, 어느 날부터 젖도 안 먹더니 친구가 놀자면 미련 없이 나가는 걸 보며 아니 어떻게 저럴 수가 있나 싶어 그때부터 너무 고독해지면서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연기에 대한 열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작

그런 차에 우연히 당시 아는 선배의 권유로 연극부터 시작하면서 연기의 기초를 배울 수 있었고 이후 연기에 대한 열망이 한 번 되살아나니 너무 강렬한 것이 당시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쳤다고 했으며 이후 MBC가 개국하면서 MBC 배우로 활동하게 됩니다.

이후 1980년부터는 무려 22년간 방영된 전원일기의 출연으로 이때부터 그녀가 한국의 어머니 국민 엄마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최초의 여배우가 되었으며 그리고 이때 이해심 많은 그녀의 남편이 배우로서의 생활을 존중하며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자 그녀 역시 고마운 마음에 촬영이 끝나거나 없을 땐 한눈팔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고 했습니다.

김혜자의 남편

한편 그녀의 남편은 김혜자보다 11살 연상으로 당시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상당한 애처가로 여자로 치면 대개 청초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암이라는 병이 그렇듯 어느 날 안타깝게도 남편에게는 원인도 모를 췌장암이 발병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남편이 많이 아픈데 평소 해준 게 없다는 미안함에 병실에서 같이 아파하며 극진히 간호했고 그러나 불편한 잠자리에 잠도 잘 못 자고 얼굴도 새까매지니까 당시 의사가 이러다가 김혜자 씨가 먼저 가겠다며 집으로 가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마감하기 직전 그녀가 의사에게 “이 사람 얼마 못 살죠” 라고 했더니 대답이 없었다고 했으며 그래서 의사에게 그럼 안 아프게 해주라 진통제 자꾸 놔주고 힘들게 하지 말라며 부탁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남편이 나보다 먼저 생을 마감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그녀는 이런 일도 있을 수 있구나 라며 큰 충격에 휩싸였고 또한 생전 남편이 7시만 땡하면 집으로 와서 밥을 달라고 했을 때 저 사람은 친구도 없나 저녁도 좀 먹고 들어오고 그러지 라고 했던 게 너무 미안해서 그 꼴을 보기 힘들었던 남편이 빨리 가버린 게 아닌가 하는 자책까지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남편과 연관된 사람만 만나도 저 사람하고 우리 남편이 아는 사람이지라며 참 이상하게 남편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닌데 그냥 저 사람이 우리 남편하고 이야기했겠지 그 생각만으로 웃고 있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수돗물같이 줄줄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고백

마지막으로 김혜자 그녀가 고백하길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나를 가족들이 배려해줘서 꿈꾸듯이 살아온 인생이었다. 큰아들이 4살 때 연기를 재개했으니 오랫동안 국민 엄마로 불렸지만 그 모든 게 허물을 덮어준 자식과 남편의 공이었다. 이처럼 시간은 정말 덧없이 확 가버린다.

어마나 하고 놀라면 까무룩 한세월이며 또한 안타까운 건 그걸 나이 들어서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삶에서 당장 반짝이는 성취만 아름다운 건 아니다. 오로라는 우주의 에러인데 아름답듯이 에러도 빛이 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에는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화려해 보이지만 나의 진정한 내면이 아닌 어떠한 겉모습과 연기력을 보여주는 직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기에서 찾지 못했던 진정한 나를 봉사와 나눔을 통해 찾게 되었으며 내가 뒤늦게 발견한 이 삶이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영화였다. 봉사를 통해서 비로소 내 자신이 더 행복해졌음을 느끼고 그런 면에서 삶에서 더욱 자유로워졌다.

내가 만난 가난하지만 영원히 아름다운 이들의 눈망울이 고스란히 내 마음속에 담겨진 이후로는 내 삶도 변했다. 더 많이 웃게 됐고 홀로 있을 때도 진정한 의미에서 나 홀로가 아니었다. 내가 봉사를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했던 고민들이 하나같이 쓰레기로 느껴지고 깨끗이 씻겨져 오는 느낌마저 든다. 가서는 가슴 아파 울지만 올 때는 좋은 생각만 하다 오게 된다. 사실 봉사라는 말도 부끄럽다. 그건 봉사가 아닌 나를 구원하러 가는 거니까 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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