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이 비닐하우스에서 힘들게 살아도 외면했던 그녀의 가슴 아픈 인생사” 그녀의 사연을 확인해 보세요.

불멸의 명가수 엘리즈의 여왕 이미자가 과거 한 인터뷰에서 “세상에서는 이미자의 남편을 보고 돈 잘 버는 아내를 둔 팔자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하길 “자칫 잘못하면 남편에게는 가장 아픈 얘기일 수 있는데 아내의 이름이 더 잘 알려져 이미자의 남편이라고 불리는데 아마 어려움이 많았을 거다. 하지만 남편이 그런 갈등들을 잘 참아주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가수 이미자는 없었을 거다.” “내가 무대 위에서야 가요계의 여왕, 엘리즈의 여왕으로 불리지, 집 문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가정주부,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바깥일은 모두 잊어버린다.

또한 나는 버는 돈을 전부 남편에게 맡기고 이제껏 생활비를 타 쓰고 있다. 돈이라는 게 어떻게 벌었느냐 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결국 우리 주인님이 관리를 잘했기 때문에 남에게 꾸러 가지 않고 이만큼 사는 거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가수 이미자의 인생과 논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친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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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어린시절

1941년 서울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난 이미자는 귀염을 독차지하며 자랄 만한 조건이었으나 그녀가 돌 무렵에 당시 29살이었던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 손발이 불편하게 되었고 심지어 이때 할아버지마저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집안에 우환이 겹치자 당시 집 안에서는 새댁의 드센 사주 탓인 것으로 돌려져 결국 어머니가 시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이후 친정이 있는 강릉에서 재혼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이미자는 친할머니 슬하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녀가 9살 때는 6.25 전쟁이 일어나면서 온 가족이 피난을 가야 했고 당시 아버지는 손발이 불편하고 할머니는 연로하셨고 그녀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피난길의 여건이 굉장히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걸어서 겨우 도착한 곳은 충청도 예산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고지가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말도 못 할 고생을 해야 했는데 결국 그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린 이미자는 배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니 중국 집에서 손님이 남긴 짜장면과 양조장에서 버린 술 찌꺼기 같은 걸 얻어먹어야 했습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 너무 처참한 상황이라 이런 얘기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럴 수밖에 없었으며 특히 양조장에서 버린 술 찌꺼기를 먹고서는 어린 게 얼굴이 벌겋게 취해서 이리 비틀, 저리 비틀 다녔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왔지만, 고생은 마찬가지였고 또한 당시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가 수입이 보잘것없어 하나뿐인 딸을 학교에 보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싶었던 이미자는 YMCA에서 피난민 아이들을 상대로 열었던 천막학교의 3년 과정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후 7년 만에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을 마쳤으나 이는 공부를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 학교 다니는 시늉만 내는 과정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훗날 그녀가 가수가 된 후로도 학력 얘기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지고 마음속으로 콤플렉스가 쌓이게 되었으며 이 콤플렉스는 국내 최정상의 가수가 된 이후까지도 끈질기게 그녀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가수의 꿈

학창 시절에도 노래 솜씨만큼은 발군이었던 그녀가 당시 콩쿠르 대회를 비롯하여 노래 부를 기회만 있으면 무조건 출전했습니다. 특히 1958년 KBS에서 노래자랑 대회를 한다는 소식에 학생 가방을 든 채로 신청하러 갔다가, 학생은 안 된다는 바람에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신청하여 당당히 1등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9살의 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본격적인 가수의 길에 들어섰지만, 초창기 그녀의 가수 활동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녀는 싸구려 출연료의 지방 무대를 돌아다니며 선배들 양말을 빨며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여관방에 너무 추워 몰래 도망친 적도 있었습니다.

가수의 길을 열어준 ‘동백 아기씨’

그러던 어느 날 인근의 다방들을 드나들며 일거리를 찾던 그녀에게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 아가씨의 주제가를 녹음하는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동백 아가씨를 녹음하기로 내정된 가수가 최숙자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신생 음반사인 지구 레코드사가 인기 가수의 높은 출연료가 부담스러워 저렴한 비용으로 이미자를 대타로 선택했던 것이었습니다. 한편 당시 어려운 시절 함께 알고 지내던 연주자 정진흡과 첫 번째 결혼을 해서 그녀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그렇게 목욕탕 건물 2층 녹음실에서 만삭의 산모가 낡은 선풍기 한 대로 찜통더위를 이겨내며 동백 아가씨를 녹음한 후 그야말로 대박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동백 아가씨가 하루아침에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놓자, 당시 만삭의 녹음을 하면 대박이 난다라는 소문이 가요계에 퍼지면서 한동안 임신 녹음이 유행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노래는 영화 주제가였지만 영화의 인기를 능가해버리는 반전까지 이뤄내며 무려 35주 동안이나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당시 음악 감상실 쎄시봉에서 트로트를 천시했던 젊은 대학생들마저 동백 아가씨를 합창하는 진풍경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동백 아가씨로 국민 가수가 되는 사이, 안타깝게도 이 무렵 그녀는 첫 번째 남편 정진흡과 이혼하게 됩니다. 이혼 사유로는 남편의 나쁜 손버릇이었고 또한 이미자는 이혼 후에도 승승장구하는 반면에 연주자였던 남편은 3류 악당장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이혼 후 헤어진 딸

당시 그녀의 남편은 딸과 함께 지방을 전전하며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거나 여인숙 주인에게 이미자의 딸이라고 말하며 잠 동냥까지 하며 힘들게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미자의 아버지가 손녀를 몰래 데려와 3일 동안 함께 지냅니다. 그때 이미자가 딸에게 “엄마와 함께 살래?”라고 물었지만, 당시 딸이 하는 말이 “어머니는 너무 많은 걸 가졌지만 아버지는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으니 아버지와 함께 살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미자는 국민 가수로 대한민국을 평정하게 되었고 그녀의 딸은 정신을 못 차린 아버지의 빚으로 인해 길거리로 내몰리는 등 힘든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이미자의 딸은 설상가상 결혼과 동시에 이혼하게 되는 큰 아픔을 겪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은 김포공항에서 우연히 두 번째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당시 이미자는 딸의 이혼 소식을 들었는지 “잘 살지 그랬니, 사람들 눈이 있으니 어서 가거라, “라고 말한 후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 1997년 스포츠센터에서 두 사람은 또다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당시 딸은 어머니가 오셨다는 말에 황급히 뛰어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이미자는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다 밖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두 사람은 그렇게 세 번의 짧은 만남이 끝이었고 이후 이미자는 데뷔 60주년을 맞이하며 이젠 어떤 수식어도 모자랄 만큼 한국 가요계의 가장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세금 탈세

그런데 2016년 한국 가요계의 어머니라 불리던 그녀가 정말 놀랍게도 10년간 소득을 고의로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세했다는 판결을 받게 됩니다. 당시 이미자와 16년간 함께 공연 사업을 해온 이강희 대표의 주장으로는 “이미자는 우리 회사의 공연 출연료와 관련해 축소 신고하라고 지시를 해왔고 16년간 계속 그래왔다.

보편적인 행태라기보다는 이미자 자기 관행에 가까운 횡포였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 말하길 “억울한 마음에 이미자에게 1차 내용 증명을 보내서 대화에 응하리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아무 말도 없었고 대응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2차 내용 증명을 보냈더니 측근을 통해 법대로 하라. 마음대로 하라면서 본인은 한 달여 해외여행을 떠났다. 아마도 소급 적용되는 세무조사가 5년뿐이라 별로 낼 게 없을 것이라 편하게 생각한 것 같다.

또한 출연료 축소 신고뿐만 아니라 과거 이미자가 출연료를 현금으로 달라고 한 적도 있다. 현재 이미자는 재산이 없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데 재산 증식을 위해 남편과 자식에게 불법 증여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16년간 이미자와 일하면서 내 나름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이미자에게는 가족이 아니었다. 사실 그동안 참지 못할 상황들이 많았지만, 집안 어르신이라고 생각하고 참았는데 돌이켜 보니 갑질이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또 다른 공연기획사 K 대표는 이미자 사태에 대해 고백하길 “이광희 대표의 주장이 설령 문제가 되더라도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온 업계 상도의상 충분히 용납될 수 있는 선이고 또한 이미자가 이광희 대표에게 충분히 혜택을 많이 줬으며 경제적으로도 이득을 줬기 때문에 오히려 이미자가 피해자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자는 지난 2014년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공연 수익금과 출연료를 축소 신고해 과징금 등 7억 5천만 원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2016년에도 그녀가 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탈세했다는 판결을 받고 서울행정법원에 항소했으나 2018년 8월 7일 기각되고 말았습니다.

당시 세무조사 결과 그녀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받거나 신고하지 않았으며 남편의 계좌에 입금 혹은 아들에게 20억 원을 증여하는 등 지난 10년간 총 44억 원의 소득을 고의 누락했으며 추가 납부해야 하는 세금액만 20억 원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미자 그녀가 고백하길 “그 옛날 그 시절, 내 노래 ‘여자의 일생’처럼 온 시대가 아팠지만, 특히 여성들은 더 힘들었다. 배고팠고 가난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그 억울함과 소음을 남편에게도 말 못하고 혼자 가슴 졸이며 살아온 한국 여인들의 아픔을 내 노래가 달래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실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 하면 평지풍파가 있다. 누구나 사치하면서 좋은 것을 다 갖고 싶다. 나라고 다를까 하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면 평탄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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