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배우 백일섭은 연기 인생 56년 동안 대중들과 호흡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백일섭 그가 고백하길 “여러분도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허물, 쌓여 있는 허물을 빨리 벗기기를 바란다.

허물을 걷어내야 사람이 순수해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 나 역시 이를 위해서 가식 없이 지내기 위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졸혼을 선택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왜 졸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인생사
👉코믹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가 최근 방송에 못 나오는 충격적인 이유

그의 어린시절

시간을 거슬러 1944년 전라남도 여수시에서 태어난 백일섭은 그의 아버지가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며 무역해 당시 돈은 좀 벌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바람을 많이 피워 결국 부모님이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어린 백일섭이 기억하기로 여느 때처럼 집 앞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일섭아! 엄마 간다.”라고 하자, 그때 어머니의 인사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던 어린 백일섭은 “어! 잘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머니와의 이별이었습니다.

그렇게 친어머니와 함께였던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만 행복했고 이후 아버지가 여러 번 재혼하면서 4학년 이후부터는 계모 밑에서 많은 핍박과 눈치를 보며 상처 많은 유년 시절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백일섭은 6년간 3명의 계모 밑에서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의붓어머니에 대한 반항심으로 얼룩져 당시 괜히 친구들과 싸움도 많이 하며 방황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서울에 있는 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와 올라오라는 부름에 백일섭은 보고 싶은 엄마를 향해 책가방과 어머니의 주소만 가지고 한달음에 여수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14시간을 타고 상경했습니다. 당시 고향에 아버지가 있었지만, 일본에서 거의 오지도 않아 고향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서울로 상경한 고등학생 1학년 백일섭은 여수에서 서울로 전학한 첫날, 처음 만난 친구가 그에게 말하길 “여기는 험악하다니까 조심해야 한다.”라며 그에게 귀띔해 주었고 그래서 그는 눈치가 빨라 뒷자리에 앉을 덩치인데도 앞자리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점심시간이 되자 앞전에 그에게 귀띔해 주었던

처음 만난 친구가 불량 학생들로부터 맞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일섭 그는 그걸 보고 저 많은 숫자를 자신이 혼자 당해낼 수가 없다.라는 생각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디어를 내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일섭은 불량 학생들을 대항하기 위해 전라도 사람 모이자.라고 써서 팻말을 들고 학교를 돌아다녔고 이렇게 고향 사람들이 뭉치는 것만으로도 불량 학생들을 분산시켜 이후 심지어 학교를 정화했다는 이유로 상까지 받았다고 했습니다.

본격적인 연기자의 길

이후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재수 끝에 1964년 명지대 영문과에 입학했고 첫 수업 때 교수가 갑자기 그에게 “외국 영화 배우처럼 잘생겼다.”라며 “배우를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땐 당연히 농담인 줄 알고 그렇게 웃어넘겼지만, 이후 당시 명지대 학장이 그를 불러 “자네가 백일섭인가? 잘생겼구먼. 곧 연극부가 만들어지는데 자네도 해보지 않겠냐? 라며 제안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연기를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던 그는 일단 고민을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길로 백일섭은 이내 연극부에 들어가 연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때쯤 KBS 대학생 TV극 경연대회가 열렸는데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가보라는 권유에 가벼운 마음으로 그도 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나가본 연기 대회에서 백일섭은 떨지도 않고 실수 없이 잘 마쳤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연기자를 꿈꿔왔던 사람이 아니라 금방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 직원이 좋은 소식이 있다며 학교로 빨리 오라고 해서 부랴부랴 갔더니 놀랍게도 백일섭은 대회에서 최우수 주연상을 탔다며 축하해 주었습니다.

당시 KBS 대학생 TV극 경영대회는 전국에서 가장 큰 경영대회로 내로라하는 대학교들의 연극과와 연극 동아리의 학생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회였는데 그가 상을 탔으니 굉장히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연스레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전성기

여수 촌놈에서 1965년 KBS 공채 5기 탤런트로 당당히 입사한 백일섭은 이후 조연도 몇 번 안 하고, 곧바로 주연을 도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드라마가 다 그렇듯, 사랑밖에 모르는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었지만, 그는 마음만 먹으면 남들을 배꼽 잡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매번 사랑하다 죽는 비련의 연기만 하려니 몸이 근질거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가 드라마 작가에게 묻기를 “선생님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 역 말고 바보 같은 역할 없을까요? 저 정말 소질이 있는데….”라고 말을 하자, 작가는 “주연이 바보인 적은 없다. 너는 주연인데 주인공 하다가 조연하는 게 어디냐?”라며 온갖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백일섭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1967년 당시 큰 인기를 끈 KBS 연속물 돌무지라는 드라마에서 말더듬 역할로 드디어 그에게 바보 역할의 기회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바보 역할을 맡고 보니, 당시엔 바보 연기가 드물었던지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를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바보 연기를 고민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버스 안에서 말 더듬이 볼펜 장수가 버스에 타 말을 더듬으며 볼펜을 설명하자, 그때 그는 “나도 저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한 후 드라마 촬영장에서 그때 본 볼펜 장수를 그대로 흉내 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감독은 “바로 그거야!”라고 외쳤고 이후 드라마가 방영된 후 전국의 아이들이 백일섭 흉내를 내느라 말을 다 더듬는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백일섭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 1967년 어느 날 방송국 국장이 백일섭을 조용히 불렀고, 그러면서 말하기를 “너 효자동에 잘못한 거 있냐? 전화가 왔는데 내일 11시 반까지 대기하라고 했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그는 영문도 모른 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효자동으로 향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유경수 여사께서 그에게 고기 점심을 대접한 후, 당시 귀한 귤도 챙겨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높은 인기 덕에 국내 최초로 ‘청와대 초청을 받은 연예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국민 아버지로 등극

그는 이후 꾸준히 대중들 곁에서 다양한 역할을 선보이며 큰 사랑을 받았고 마침내 1992년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인생 캐릭터를 만나며 이때부터는 국민 아버지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극 중 그는 “홍도야~ 울지 마라~”라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큰 화제가 되었으며 훗날 백일섭은 이 장면을 촬영할 당시 백일섭도 작가도 감독도 노래 부르고 들어온다 정도로만 설정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장면에 있어서 새로운 표현을 하고 싶었던 그는 밤 장면이라는 점을 고려해 일부러 취한 듯한 분위기를 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은연중에 용인되던 소변 장면과 함께 당시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노래 파트를 제멋에 겨워 불러보았고, 당시 현장에서 카메라 감독이 오다 자빠져 NG가 날 정도로 그의 연기는 완벽했다고 합니다. 훗날 방영분이 대중들에게도 보여지자, 큰 주목을 받으며 다시 한번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졸혼을 선택한 이유

졸혼이란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이혼과는 조금 다르게 혼인 관계는 유지하되 부부가 서로의 삶을 터치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삶을 뜻합니다. 아직은 졸혼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공개된 졸혼 부부로 故 신성일, 엄앵란 부부가 유명했었고 또한 탤런트 백일섭이 방송에서 졸혼을 고백하며 생소했던 졸혼을 단번에 관심사로 만들어 공론화하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백일섭 씨가 고백하길 “내가 그동안은 바쁘기도 했고 사실 집에 있을 때부터 오랜 기간 아내와 대화가 단절이 됐었다. 또한 아이들도 커가면서 나는 해달라는 거, 다 해주면서 아쉬운 거 없이 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는 참 무서운 존재라는 생각만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나는 집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외계인이었다. 배우인 아버지로서 집 안에서 대우받고 위로도 받고 싶었지만 이런저런 것들이 서로 사이클이 맞지 않았고,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밥도 밖에서 먹고 들어갔다.

그리고 술 마시고 들어가는 간 어느 날 나 언젠가 말없이 나갈 거다.라고 가족들에게 예고까지 했다. 이후 깊은 고민 끝에 집사람에게 나 나간다.하고 그걸 결국 실행에 옮긴 거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백일섭은 77세의 나이에 졸혼을 선언하며 혼자 밥 먹고, 혼자 술 먹고, 혼자 잠을 자는 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가 고백하길 “내가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하면서 첫째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혼자 생활한 지 꽤 되었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전에는 일하고 집에 들어가면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어수선했다. 또한 전에는 질투 같은 것도 생기고 원망도 생기고 했는데 혼자 산 이후로 그런 감정들이 없어지고 편안하다.

내 정서가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고 불편하다는 건 안 느꼈다. 오히려 내가 집에 있을 때가 더 불편하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다. 이제는 아이들도 다 컸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방송 일을 활발하게 하면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 졸혼을 선택했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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