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이상에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오르려다 그만…” 연기경력만 60년인 그에 대해 알아보세요.

연기 경력만 60년, 대한민국 현역 연예인 중에서 이순재 다음으로 고령이자 국민 할배로 불리는 배우 신구에게 여든이 훌쩍 넘은 나이를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하길 “내가 철없이 까불고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일상생활이나 일하는데 내 몸이나 나이가 방해되지 않는다. 물론 갑자기 피곤함이 느껴진다거나 서로의 나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쓸 때 나이가 살짝 의식되긴 하지만 아무튼 일흔이 넘고부터는 그 나이가 그 나이인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으로부터 신체를 잘 타고난 덕분에 지금껏 크게 아파 본 적도 없고 또한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일이 없는 날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걷기 운동하고 있다.”

“그런데 술을 워낙에 좋아하다 보니 나는 지금도 청춘들만큼이나 술을 많이 먹는데, 요즘도 매일 소주 한 병씩 마신 후에야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음 날 걸으면서 어제 술 먹고 헛소리하지 않았나, 애들한테 싫은 소리는 안 했나, 별생각을 다 한다. 그래서 집사람한테 술 마셔서 운동한 거 다 망친다라고 항상 욕을 먹는다. 하지만 사실 나는 운동조차 술 마시려고 하는 거다. 공연을 마치고 동료들과 마시는 술, 집에 와서 자기 전에 마시는 한 잔의 소주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라고 했던 그였습니다.

그러나 몇 년 전 연극 공연을 앞둔 그가 갑자기 혀가 마비되는 증세를 겪으면서 심각한 상황에 부닥친 적이 있었고, 그리고 2021년 3월 그는 또다시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병원에 가지 않고 연극 무대에 오르다가 결국 건강 문제로 입원하였던 올해 86살 배우 신구의 가슴 아픈 이야기와 더불어 한때 본인 스스로 내 안에 들어있는 어떤 광기로 인해 미치도록 미쳤었다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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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학창시절

1936년 일제강점기 때 서울에서 태어난 신구는 그 시절 누구나 다 그렇듯 굉장히 가난했습니다. 또한 부모님들조차 문맹이라 당시 하나뿐인 외아들인 신구를 어떻게든 교육해보기 위해 많은 애를 쓰셨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셨는데 번듯한 것도 아니고, 그저 좌판 까는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이북 출신도 아닌데 냉면을 좋아해서 어린 친구를 가끔 냉면집에 데리고 갔던 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어려운 형편으로 그의 누이들은 학교도 제대로 못 갈 때, 그만 경기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6.25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학교는 입학할 때랑 졸업할 때만 가봤지, 늘 천막치고 공부하고 말도 못 하게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그는 한때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목표로 공부했을 정도로 굉장한 우등생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경기고등학교는 시험을 보고 입학해야 하는 입시 명문으로 전국의 이름을 날렸던 고등학교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와 같은 동기생들로는 전 국무총리 고건,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두산그룹 박용오 회장 등이 있으며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훗날 그는 정치 권유를 받고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 지지 연설을 하다가 한때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당시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는 대학도 서울대가 아니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서울대 배지를 달고 파란 인민복 같은 교복을 입어보나 했지만, 시험에서 떨어지게 됩니다. 이후 성균관대 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서울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성균관대를 재학 중인 상태로, 다음 해 또 서울대 상대를 지원했지만, 또 떨어지고 맙니다.

연기에 발을 내딛다

그렇게 두 번이나 쓴맛을 본 뒤로는 도망치듯 군으로 입대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제대한 후에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아나운서 학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 귀퉁이에 난 작은 광고 하나가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됩니다. 그건 바로 배우 아카데미에서 1기생을 모집한다라는 광고였습니다.

당시 그는 광고를 보자마자 남이 써준 원고를 읽는 것보다 배우를 하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에 그렇게 그는 당시 대학마저 졸업하지 않고 고졸로 연극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편 본명인 신순기였던 그는 연극 아카데미 학생 때 극작가 유치진에게 신구라는 예명을 받아, 지금껏 신구라는 예명을 쓰게 되었고 이후 다소 늦은 나이 26살 때 라는 연극에 출연하면서 마침내 연예계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영화든, 연극이든 故 신성일 같은 미남들의 전성시대이다 보니 그는 처음부터 할아버지 역으로 시작해야 했었습니다. 또한 연극배우의 너무나도 적은 수입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연극은 특히 미친 사람들이 하는 짓인데 아직도 월급이 아니라 연봉도 못 받고 연극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본인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연극에 미쳤었고 지금도 미치도록 연기가 좋으며 자신 안에 들어있는 어떤 관계가 돈이 안 되는 연극 무대를 어느 날까지 무대에 오르게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사람인지라 평생 연극만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생계 때문에 호구지책으로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영화에 출연해야 했습니다.

긴 연애 끝에 결혼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가 돈을 벌어야 했던 이유로는 당시 지금의 아내와 6년간 연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못 벌어 결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6년을 연애하고도 그가 결혼 약속도 없이 미적거리자, 아내는 결국 미국으로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연애를 하며 정이 들었던 신구가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미국으로 보내, 마침내 아내가 마음을 돌려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마음이 급했는지 결혼 두 달 만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70년대에는 속도위반이란 흔치 않은 일이었으며 더군다나 얼굴이 알려진 배우에게는 흉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신구의 나이가 워낙 많은 39살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초혼이 아니라, 이혼과 재혼이라는 루머가 나돌았지, 속도위반은 그다지 큰 흠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존경받는 연기자

그렇게 결혼 후에는 KBS 특채로 각종 드라마의 주연을 맡으며 1980년대까지 강부자와 함께 KBS를 대표하는 연기자로 성장합니다. 한때 국정감사에서 두 사람이 가장 많은 출연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신구는 이순재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아버지의 역할을 맡으며, 대체로 온화하거나 근엄한 이미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2000년에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툭하면 화를 내지만, 사실은 푼수기를 보여주는 할아버지 역할로 출연해 엄청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게 됩니다. 80살이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을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은 많은 연기자 후배들의 존경을 사고 있으며, 배우 이병헌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꼽기도 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이상 증세

그렇게 나이 든 사람으로서 겸손한 자세로 후배 연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늘 건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가 앞서 얘기한 대로 2014년에 연극무대 도중 혀가 마비되는 증세를 겪으며 모두의 걱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는 혹여 수술해야 한다면 무대에 서겠다는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으며, 결국 누군가가 권한 연고를 바르고는 거짓말처럼 나왔다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설명하던 그는 “그때 소주를 덜 먹어서 그랬나 봐.”라며 아이처럼 해맑게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2022년 3월에도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병원에 가지 않고 무대에 오르다가 주변에서 심각하다고 판단해 설득을 통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하였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말았습니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면서 많은 연극 팬들의 우려가 쏟아졌습니다.

또한 당시 신구가 출연 중이던 연극 라스트 세션 측은 캐스팅 변경 소식을 전한 바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구는 “예전 같지는 않다. 나이도 있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삐걱거리고 그런다. 그래도 어떡하겠나.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끝까지 책임을 지고 하려고 한다”라며 미소를 지었다고 합니다. 또 “잘 유지를 해왔다고 생각했었다. 느닷없이 80살 넘어서 그런 게 와서 저도 놀랐다. 건강 관리를 잘하셔야겠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우 신구에게 언제 가장 행복하냐?”는 질문에 그가 대답하길 “지금이다. 매번 지금이 제일 좋고 행복하다. 나이 들수록 더 그렇다, 이 순간에 집중해서 살려고 한다,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서 쌓이면 그게 내 역사가 되는 거다. 이건 돈이 있다고 여유가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라고 하고 싶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또 다른 길이 있으니까, 나처럼 살다 보면 자기한테 맞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게 얼마든지 많다. 골라서 선택하는 거니까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거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내가 두 다리로 설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니 가장 기쁜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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