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대장암 투병 중에 어쩔 수 없이 국민들을 웃겨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연기 경력만 60년, 국민 엄마로 불리는 배우 나문희가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혹시 그런 기대가 부담스럽지 않냐?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하길 “부담스럽다. 나는 사실 사람들이 기대하듯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도 사람이라서 실수도 하고 적당히 무인도 하고 그런다. 그리고 사람들은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이 없을 줄 알지만, 성격이 다혈질이라 화도 잘 낸다. 특히 내가 준비가 안 돼서 마음이 급하면 화가 난다. 그래서 나에게 너무 좋은 면만 기대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나도 사실은 매우 틀림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배우들의 생활이 마냥 화려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는 직업 중 하나이다. 특히 한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을 앞두고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때, 예전 인물이 지워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잘못 들어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즉 휴식하며 공백으로 다른 캐릭터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어야 완벽하다.

그런데 예전 인물이 아직 나가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것이 들이닥치면 일을 시작한 뒤에 상당히 힘겹다. 그래서 한 번은 일이 너무 겹쳐 신경을 너무 많이 쓴 탓에 심야의 드라마를 촬영하다가 갑자기 쓰러져 5시간쯤 의식을 잃는 아찔한 사고를 당했었다. 그때 구급차에 실려 근처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 의식을 잃고 기억이 잠시 끊기는 등 가슴 철렁한 위기 상황을 맞은 적도 있다.”

그리고 “2007년에는 남편이 대장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코믹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촬영해야 했었다. 당시 나는 가슴에 울분을 숨기고 즐겁게 코믹 연기를 하는데 그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때도 15시간씩 거침없이 하이킥을 찍고 쉬지도 못하고 바로 영화 촬영을 하러 갔다. 그런데 촬영장의 스태프들이 또 불안해할까 봐서 힘들다고 표현조차 못 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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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1941년 중국에서 태어난 나문희 씨는 한때 화교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한국인 부모님이 잠시 중국으로 갔을 때 낳은 아이라 화교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5살 때까지 베이징에 살다가 해방이 되던 해 귀국하게 됩니다. 한편 그녀의 집안은 수원에서 나 부잣집이라고 하면 모든 이가 알 정도로 부잣집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족 중 유명 인물로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여성 인권의 힘을 쓴 나혜석이 그녀의 고모할머니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부자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그녀의 아버지만 유독 무능해 다른 친척들과 다르게 굉장히 가난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때는 아버지의 무능이 부끄럽고 대체 어떻게 해야 좀 편안히 살 수 있나?라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한편 학창 시절부터 미래의 연기자가 될 조짐이 있었는지, 당시 연극반이나 방송반은 학교에 없었지만, 그녀가 오락부장을 도맡아 했고 또한 극단 등을 친구들과 교복의 흰 칼라를 떼놓고 구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극단 배우들의 목소리를 흉내 내곤 했었습니다.

MBC 공채 성우로 데뷔

이후 20살이 되자, 그녀는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직업이었던 MBC 공채 성우 1기로 데뷔하게 됩니다. 그러나 집이 어려워서 가장의 역할을 해야 했던 그녀는 성우 일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차 한 잔 시키고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감상실에서 DJ까지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른 동기들이 성우 훈련을 받는 동안 그녀는 DJ 일하느라 매번 방송국에는 늦게 도착해야 했었습니다. 하지만 음색이 굵어 서양 영화에 잘 들어맞았는지, 한동안 모든 주말의 명화 주인공은 그녀가 도맡아 더빙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TV가 개국하면서 배우의 수요가 늘어날 때, 많은 성우가 배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그녀 역시 다른 성우들과 마찬가지로 연극과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활동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큰 눈길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김혜자, 정혜선, 김용림 등 동료 연기자들이 주요 배역을 맡으며 연기 대상을 받은 등 승승장구할 때, 다소 키가 컸던 그녀가 동료 남자 배우보다 큰 체격을 가졌다는 이유로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역할을 맡게 되면 단역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그 무렵 그녀는 훗날 “지금의 남편을 중매로 만나게 되었고 이후 두 사람이 첫 데이트를 할 때 한식집에서 칼국수를 먹게 되었다. 계산하는 남편의 헌 지갑을 보고 낡은 지갑이었지만 소중히 갖고 다니는 모습에 반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는데, 당시 영어 선생님이었던 남편이 프랑스 시를 낭송해 주며 그녀를 꾀려고 했었습니다. 이후 두 번째 데이트로 등산할 때 남자라고 느껴져 마침내 두 사람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결혼 후에도 나문희는 다방 마담, 술집 주인 등 남들이 꺼리는 배역만 도맡아 하였습니다. 무려 30년간의 연기 생활 중 받았던 상이라곤 1983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 1개 정도로, 연기자로서는 그다지 두각을 내지 못했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인기 배우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놀랍게도 50세 이후부터였습니다.

배우 전성기

그녀가 54세였던 1995년 드라마 바람은 불어도에서 이북 사투리를 쓰는 80대 할머니로 출연해, 허리 굽은 노파를 실감 나게 연기했습니다. 그러자 주인공이 아닌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 KBS 연기 대상까지 수상하며 못난 오리 새끼인 줄 알았던 그녀가 마침내 백조가 돼 하늘을 날아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녀는 노희경 작가 사단에 합류하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했고 이때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이불로 덮어 하늘로 보내려는 장면과 오열하며 같이 숨을 거두자고 하는 장면은 시간이 흘러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명연기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준 그녀의 연기력은 존재감이 어마어마했고, 이후로는 TV만 틀면 어디서든 나문희가 나와 이곳저곳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2007년에는 ‘나문희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시 일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을 통해 어린 시청자들에게도 굉장한 사랑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수많은 패러디의 소스로 활용되게 됩니다.

그러나 앞서 얘기한 대로 그녀가 연기자로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을 때, 하필 이때 남편이 대장암 판정을 받아 항암 치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설상가상 거침없이 하이킥의 인기가 절정에 치닫게 되고, 당시 가슴에 울분을 숨기고 즐겁게 코믹 연기를 해야 하는 그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녀가 이후로도 다양한 작품을 통해 국민 엄마로 불리며 본인 자신도 내 나이에, 내가 가진 조건에 비해 여기까지 온 게 정말 감사한 일이라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첫 여우주연상

이후 2017년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주연 나옥분 역으로 출연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녀는 배우 인생 56년 만에 영화 부문 첫 여우주연상으로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대종상 등 굵직한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모조리 휩쓸며 총 14개의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때 쟁쟁한 젊은 배우들을 제치고, 최고령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그녀의 수상 소감이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습니다. 당시 수상 소감으로 “지금 96세이신 우리 친정어머니, 어머니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그리고 나의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수상 소감은 금세 화제가 되었습니다. 더불어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에서 그녀의 수상 소감을 인용하며 말하길 “종교 대화합, 상생의 멘트였다. 딸은 어머니의 신앙을 존중했고 그만큼 자신의 신앙 또한 존중받아야 함을 웃음을 섞어 강조했다.”라며, “60년 가까운 연기 인생을 단단하게 다진 나문희 씨는 나의 세상과 타인의 세상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유쾌하게 세상에 전했다.”라며 “우리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라고 끝맺음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문희 씨가 고백하길 “내가 이만큼 살다 보니 사람은 그냥 다 지나가는 것 같다. 누군가를 마음에 둬도 보기 힘들 때가 있고, 동료들도 작품을 같이 안 하면 못 만난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다 이렇게 지나가는 거구나 한다. 그래서 만났을 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사람은 다 지나간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인정이 없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예전에 촬영 중에 쓰러져서 5시간쯤 정신을 잃은 적이 있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챙겨주는 것이 너무나 힘들구나. 그냥 지나가게 버려두고 해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안 보게 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갈 수도 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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