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간 투병 중인 방실이의 가슴 아픈 상황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대로 그냥 하늘로 가고 싶다는 그녀의 심정을 확인해 보세요.

흥겨운 노래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 방실이는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방송 녹화를 위해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몸 상태가 나빠지면서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날 방송 녹화는 모두 포기하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피로가 쌓인 것일 뿐이라고 가볍게 생각해,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폐쇄공포증이 있다라는 이유로 MRI 검사도 거부한 채, 입·퇴원만 반복하며 계획된 일정대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침대 밑에 있던 슬리퍼를 꺼내려다 온몸에 힘이 빠져 넘어진 그녀는 결국 전신마비와 의식 불명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고, 이후 하루하루가 고비였던 그녀가 일반 병실과 중환자실을 오가며 1년이면 괜찮겠지, 내년이면 일어나겠지, 했으나 애석하게도 16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방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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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사의 만행

시간을 거슬러 1993년 솔로로 전향한 방실이가 서울 탱고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어느 날, 자고 일어나 보니 신문에 육체파 트로트 가수 방실이 일본으로 시집 간다라는 결혼 기사가 나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결혼 당사자인 그녀는 금시초문으로 당시 소속사에서 그 일본인과 계약 문제로 통역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 잠깐 얼굴을 보고 통역을 한 게 전부인데, 갑자기 그 일본인과 10월에 결혼한다는 기사가 났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사자도 모르는 결혼식이 발표되자, 이게 있을 수나 있는 일인지, 무언가에 얻어맞은 듯 그녀는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당시 10년간 함께 일하던 소속사와 결별한 직후 불거진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괘씸히 여긴 소속사의 음모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됩니다.

사실 그녀가 전 소속사와 10년 계약 기간에 5년은 무명으로 보내고, 나머지 5년은 그럭저럭 보냈습니다. 그런데 계약이 끝나자마자 서울 탱고로 그야말로 대박이 나면서 10년 동안 일하면서 번 돈보다 몇 개월간 번 돈이 더 많으니, 전 소속사 입장에서는 배가 아팠는지, 그녀를 다시 데려오고 싶은 욕심에 이러한 일들을 벌였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너무 억울했던 그녀가 전 소속사의 사무실도 찾아가 보고, 전화도 해봤지만, 어느 한 사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회사를 상대로 혼내줄까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했다간 혹시나 소속사에서 자신에게 해코지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차마 그러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거짓 결혼

이렇게 그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설상가상 세간에서는 방실이 남편이 일본 야쿠자다라는 소문까지 나며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런 스캔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게 하려고 정말 어이없게도 그녀는 그 일본인과 결혼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오보 기사 하나에 적극적인 해명 한 번 하지 않고 거짓 결혼까지 하게 된 그녀의 사연은 사실 납득하기가 어렵지만,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자신도 웃기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걸 알고 있으나, 당시 연예계의 풍토와 무섭고 어려운 소속사 사장의 존재 등으로 어쩔 수 없는 최고의 선택이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진짜 결혼을 결심한 그녀는 우선 남편 될 사람을 직접 찾아가 이러한 사정을 얘기하자,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니 4~5개월 만에 결국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마침내 일본에서 한 번, 서울에서 한 번, 고향 강화에서 한 번, 총 3번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3번의 결혼식을 모두 마친 후 그녀와 가짜 남편은 신혼여행으로 괌으로 떠나게 됩니다. 도착한 후에는 두 사람이 공항에서 헤어져 각자 일을 겸한 여행을 즐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녀가 괌에 도착한 다음 날 조갑경과 홍서범이 그녀가 묵은 호텔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 싶어 계속 붙어 다니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당시 방실이가 한시도 그들 부부 곁을 떠나질 않았는데, 그들은 허니문 베이비가 생겨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녀에게 결혼한 지 얼마나 됐냐고 물어보면 갑경이 부부 첫째가 몇 살이더라.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고 했습니다. 훗날 그녀에게 “이왕 결혼식을 올렸는데 같이 살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하길 처음부터 사랑 없는 결혼식을 올렸기 때문에 그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에 대해 아는 바도 별로 없었다.

다만 거짓 결혼이 5년쯤 지나고 보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당시 같이 살지는 않았어도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꾸준히 전화 통화를 했었는데, 한 번은 그가 나에게 많이 힘들면 일본에 와서 좀 쉬었다 가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또한 자기 인맥을 동원해 일본 공연도 여러 번 잡아주기도 했으며 이처럼 항상 깍듯하게 매너를 지키고 나를 많이 존중해주던 친구다.

그러나 둘 다 독신주의자라 같이 살자는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 친구가 독신주의자가 아니었다면 처음부터 이런 거짓 결혼도 제의할 수 없었을 거다.”라고 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죽음 그리고 12년 만에 고백

무려 12년간을 숨겨오던 그녀는 거짓말은 한계를 느끼기 시작됐고 시간도 흐를 만큼 흘러 이제는 얘기해도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마침내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그렇게 진실을 털어놓기 하루 전, 그래도 상황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에게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에 이전 소속사 사장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전 소속사 사장이 사고도 아니고, 아파서도 아니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결국 그녀가 이 소식을 듣고 내가 미처 용서도 못 했는데…. 그렇게 떠나가면 어떻게 하냐.라며 3개월 동안 우울증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12년간의 남모를 아픔을 공개하며 비록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지언정 고해성사를 한 것처럼 홀가분해졌다고 합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당시 연예계 동료들이 그녀의 거짓 결혼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비밀을 지켜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밝히고 처음에는 비난받았으나, 이내 동정과 응원을 받으며 오히려 이전보다 더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안타깝게도 앞서 얘기한 대로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으로 인해 전신마비와 의식 불명으로 하루하루가 고비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역경이 왔음에도 비교적 빠르게 건강이 호전되어 빠른 회복세를 보이기도 했으나, 이후 몸이 좋았다, 안 좋기를 반복하고 있는 현재 80% 정도는 앉아 있다고 했습니다. 뇌경색 자체가 재발 위험이 큰 질병이라 정말 안타깝게도 연예계 복귀는 사실상 어려워 보입니다.

안타까운 투병 생활

마지막으로 방실이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쓰러지기 전, 바빠도 아픈 데가 없었고 어떠한 징조도 없었다. 그래서 쓰러지면서도 말도 안 된다,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 인정을 못 했다. 그리고 처음 병원에 입원했을 때 너무 외롭고 무섭고 가끔 허깨비도 보였다. 하루는 꿈을 꾸는데 이주일 아저씨와 김형곤 오빠가 내 앞에 있었다. 그래서 너무 반가워 악수하고 껴안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그때 누가 나를 급하게 불러 돌아보니 주현미였다.

그래서 결국 일단 집에 가서 자고 내일 와야겠다고 생각하고선 눈을 떴는데 병실이었다. 그리고 사고 당일 내 친동생이 없었다면 난 이미 하늘에 있었을 거다. 이후 동생이 24시간 내내 집에도 못 들어가고 나를 간호하는데, 내가 옆에 붙어서 짜증을 내고 울고 화내는데도 나를 다 받아줬다.

그런 동생이 지금까지도 한결같으며 어떤 사람도 내 동생처럼 그렇게는 못 할 것 같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후 목에 있던 두 개의 성대 중 하나가 마비가 풀리면서 말을 할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내가 처음 내뱉은 단어가 바로 엄마였다. 내가 쓰러졌을 때 우리 형제들이 차마 엄마에게는 알리지 못했다고 하더라.

그런데 엄마가 뉴스를 통해 내 소식을 듣고 바로 기절하셨다. 심지어 그땐 엄마도 심장에 물이 차서 수술한 상태라, 날 보러 오고는 싶은데 본인도 몸이 약해서 못 오셨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나. 결국 내가 쓰러진 후 3개월 만에 엄마를 처음 볼 수 있었다. 당시 엄마가 항상 나에게 말을 할 수 있게 돼서 고맙고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고맙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후 4년, 5년, 6년이 흘러도 내가 달라지지 않고 계속 아프기만 하니까 이대로 그냥 하늘로 가고 싶더라. 어떻게 내가 16년째 이러고 있냐, 그리고 부모님이 내가 투병 중일 때 돌아가셨는데 더 살 수 있었음에도 나 때문에 더 빨리 돌아가신 것 같아 너무너무 답답하다. 결국 나는 불효자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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