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벌의 가수 강진이 지난 2년여 동안 이어진 길고 긴 소송을 벌여야 했던 안타까운 이유”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살아가다 보면 애써 찾아 듣지 않아도 저절로 듣게 되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강진의 땡벌 같은 노래입니다. 그렇게 가수 강진의 노래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후렴구 탓에 유독 그의 노래는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렇다 보니 2007년에는 젊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음악 방송에서 그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온 국민적 사랑을 받는 가수이지만, 세상살이 음과 양, 행복과 불행 모든 양면이 있기에 정작 인간 강진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한때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자식들이 어디 가서 “우리 아버지는 가수다.”라며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었고, 또한 전 소속사와 분쟁으로 2년간 길고 긴 소송 끝에 결국 토해내고 말아야 했던 가수 강진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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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과거

1956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난 강진은 8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어릴 땐 아버지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아버지가 있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문 앞에 아버지 고무신이 있는 걸 보고 저 친구는 참 든든하고 좋겠다.라고 생각하며 아버지의 빈자리를 항상 느끼곤 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가 없다 보니 당시 어머니가 홀로 오남매를 키우며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에겐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형편이 안 되면 어린 나이에도 일하는 시대였지만, 어머니의 지극정성 지원 덕분에 일하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코흘리개 꼬마 때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듣고 그게 너무 좋아해 늘 따라 부르다 보니, 당시 동네 사람들로부터 트로트 신동이라 불리며 “너는 노래를 타고났다.”라는 말을 종종 들었고 공부보다는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이후 21살 때는 한 번 꽂히면 남의 말은커녕, 부모 말도 듣지 않았기에 노래하겠다라는 말만 남긴 채 무작정 집을 뛰쳐나와 서울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작곡가 사무실을 기웃거리다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정식 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밤무대 등의 설 기회를 잡게 됩니다. 그렇게 1975년 밤무대 가수를 시작해서 이후 1986년 첫 앨범을 내기까지 무려 11년간 정식 가수가 아닌 비공식 가수로서 활동하게 됩니다.

비록 정식 가수는 아니었더라도 당시 많으면 하룻밤에만 7~8곳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개런티가 높지 않더라도 워낙 여러 곳을 뛰었기 때문에 돈벌이가 나름 괜찮았다고 했습니다.

결혼

그러다 1985년, 첫 앨범을 내기 1년 전 어느 날,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평생의 반려자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아내는 유명 그룹 희자매의 멤버 김효선입니다. 당시 무대의상을 입고 왔던 김효선을 강진이 차로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만남이 이어져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게 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아내는 희자매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는데, 그에 반해 무명 가수에 불과했던 강진은 데뷔도 하기 전이었던 터라, 가수로서의 미래도 불확실한 데다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심지어 차남인데도 어머니까지 모시고 살아야 하는 악조건을 고루 갖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을 모두 감수하고 당시 톱스타였던 김효선은 한껏 눈을 낮춰 강진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훗날 아내가 고백하기를 “사실 남편이 가진 건 별로 없는 남자였어도 착실하고 성실한 모습에 직감적으로 행복한 결혼을 예감했었고, 그 예감은 결혼생활 내내 한 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또한 그때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도 친정어머니 이상으로 며느리인 나를 아껴주셨는데, 내 뒤태만 봐도 예쁘다고 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행여나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시어머니는 꼭 내 편에 서 주셨다. 이처럼 남들은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힘들었겠다라고 말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당대 최고의 인기 여가수와 음반 한 장 내본 적 없는 무명 가수가 신분 차이를 극복하고 두 사람은 그 해 바로 결혼 후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이후 강진이 땡벌로 주목받기까지 무려 20년간 무명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실 말이 20년이지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을 긴 시간인데, 당시 강진은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엄청난 고생 해야 했으며, 특히 노래 경력도 데뷔 시기도 본인보다 한참 미친 후배가 자신보다 먼저 앞서 나갈 때는 초조함이 극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훗날 그가 이때를 고백하길 “나라고 왜 고생하는 아내에게 좋은 옷 사주고 멋있는 선물도 하며 멋진 남편으로 살고픈 마음이 없었겠나.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그저 가슴만 답답했다.

또한 그때는 우리 아이들 볼 면목도 없는 게 아버지가 가수라는데 번번한 히트곡 하나 없으니, 친구들한테 우리 아버지는 가수다.라고 떳떳하게 얘기나 할 수 있었겠나. 좀 더 일찍 떠주지 못한 남편, 아버지로서의 미안함이 클 뿐이었다.”라고 했습니다.

인생곡 땡벌

여전히 무명 가수에 불과했던 그는 4집 앨범을 제작할 때, 마침내 그의 인생곡 땡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4집 앨범에 땡벌이 처음부터 있었던 거 아니었습니다. 당시 많은 곡을 받았으나 타이틀 곡으로 확 끌리는 노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차의 하루는 강진이 아내에게 “예전에 밤무대에서 자주 불렀던 나훈아 선배의 땡벌을 4집 앨범 타이틀곡으로 어떻겠냐?”라고 물었고 마침 아내도 땡벌을 염두에 두고 있어 두 사람은 이심전심 뜻이 통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희자매 시절의 인연으로 그 즉시 강진의 아내는 나훈아 사무실로 찾아가게 됩니다. 한편 땡벌은 나훈아가 1987년에 발표한 자작곡으로 4년 뒤인 1991년에 원로가수 정원인생은 본전이란 곡으로 가사만 바꿔 부르기도 했으나 그 당시 큰 반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다 10년 만에 강진이 또 간곡히 부탁하자, 자기 노래를 남한테 안 주기로 유명한 나훈아인데 반드시 히트시키겠다.라는 강진의 다짐을 보고 예쁘게 봤는지, 아니면 끈질긴 열성이 안쓰러웠는지 결국 곡을 내주게 됩니다. 원래 땡벌 원곡이 아주 짧은데 나훈아가 손수 가사도 새로 써서 강진에 맞게 새롭게 편곡해서 주게 됩니다.

그렇게 선배 가수 나훈아의 지원까지 받아 가며 마침내 2001년에 땡벌을 발표하긴 했으나, 정말 안타깝게도 여전히 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장장 4년여의 긴 세월이 또 흘러, 이렇게 나는 평생 무명 가수로 사는가? 싶을 때쯤, 어느 날 여러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막 오게 됩니다.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최고의 톱스타 조인성이 그의 노래를 흥얼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톱스타 조인성이 그의 노래를 흥얼거린 뒤 땡벌이란 노래가 급속도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 파급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당시 TV를 틀면 드라마에서도 배우들이 땡벌~ 땡벌~이라고 노래하고 심지어 어린 유치원생까지도 땡벌~ 땡벌~하면서 입에 달고 다닐 정도였습니다.

결국 강진의 땡벌은 2007년 9월 2일 젊은 가수들이 대거 나오는 음악 방송에서 역사상 처음이자 유일하게 트로트 곡으로 1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 기록은 10년 넘게 유지되다가 2021년 임명웅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강진에 이어 트로트로 두 번째 1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그렇게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인생 역전의 가수가 된 그는 이후에도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점차 국민가수로서 자리를 매김 했습니다.

땡벌에 이은 또 한 번의 히트곡

그러다 2020년, 땡벌에 이은 또 한 번의 초대박 히트곡이 나오게 되는데 바로 막걸리 한 잔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반응이 괜찮다 정도였는데, 하지만 당시 대한민국을 뒤집어 놓았던 미스터 트롯에서 영탁이 그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야말로 초대박이 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조인성에 이어 이번에는 영탁으로 인해 또다시 그의 노래는 6살짜리 꼬마도 따라 할 정도로 온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강진이 고백하기를 “솔직히 임영웅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게 내 노래를 부른 유튜브를 봤는데 노래를 너무 잘하더라. 그래서 나중에 방송국에서 만났을 때 노래 정말 잘한다. 지켜보겠다.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탁과는 평소 친분이 전혀 없었는데, 내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더라. 그리고 영탁 후배가 워낙에 잘 불러서, 심지어 사람들은 막걸리 한 잔이 영탁의 노래인지 아는 분들도 많더라. 아무튼 임영웅 후배나 영탁 후배나 우리 후배들이 열심히 해서 전 국민이 트로트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얼마나 기특한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잘 된다고 해서 질투나 라이벌 의식, 이런 건 전혀 없고 그저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고 그런 마음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가 고백하길 “내가 나름 세상을 살아보니 정말 알 수 없는 게 세상 일인 것 같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고, 특히나 인기라는 것은 더욱 오묘하다. 그리고 가수는 대중적 관심 속에 조명을 받는 것이 어떤 운명적 계기를 만나야 가능한 것 같다.

그간 나는 30년을 발버둥 치며 노래를 부르고도 인기와는 늘 동떨어진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조인성 씨가 영화에서 딱 한 번 흥얼거렸을 뿐인데 그 한 방에 모든 게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만날 기회는 없었지만, 언젠가 조인성 씨를 꼭 한 번 만나서 고마운 마음을 직접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무명 시절에도 가요계 선배들이 희망을 잃지 마라. 언젠가 반드시 대형 가수가 될 것이다.라며 격려해 주는데, 살아보니 세상살이는 음과 양, 흑과 백, 행복과 불행, 모든 양면이 있더라.

그래서 사실 입장차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누군가와 갈등을 빚고 다툴 수도 있고 부득이 그런 일을 겪게 되더라도 중요한 건 일을 풀어가는 해법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대중가수의 토대는 팬들과의 사랑과 관심이다. 앞으로도 변함없는 좋은 노래를 불러 오랫동안 팬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참고로 여기서 강진이 암시하는 갈등이란 다름 아닌 전 소속사 간 미정산금에 대한 법정 분쟁으로, 한때 그가 소속사의 사전승인 없이 몰래 개인적으로 행사 등을 다니며 발생한 수익을 정산하지 않아 소속사로부터 계약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청구 소송 공판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후 양측 다 이런, 저런 주장 하며 2년여 동안 이어진 길고 긴 소송 끝에 재판부는 전 소속사의 손을 들어주며 강진에게는 전속계약 기간 중 몰래 올린 수익 일부를 토해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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