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배연정 100억 전 재산을 날리고 췌장 수술까지 받은 안타까운 근황”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배연정
👉“이수근 아내 너무나 안타까운 근황 이식받은 신장 망가져 뇌사자 대기하다 결국…” 어떤 상황인지 확인해 보세요.

사라진 방송 무대

배연정, 그녀는 전설로 불릴 만큼 코미디언으로서 정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영원할 것 같았던 인기도 조금씩 빛이 발해갔고, 어느 날 배연정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1997년에 IMF가 났는데 방송국은 이미 94년부터 뭔가가 술렁거렸으며 출연료 때문에 많은 연예인을 내보내면서 젊은 사람들 위주로 분장하는 것을 보고 이제 나도 옛날에 배연정이 아니구나라며 회의감과 함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1990년대 후반 개그맨들의 세대교체가 시작되며 설상가상 IMF까지 터지면서 그녀의 선배들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고, 그녀 역시 저 선배가 떨어졌으니까. 이제 내 차례가 오겠구나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코미디가 젊은 세대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때쯤, 가장 친했던 PD가 “술 한잔하자.”라고 했을 때, 박수 칠 때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에 자신이 먼저 PD에게 말하길 “걱정하지 마! 나 방송 앞으로 5년만 쉴 거야.”라고 말하였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녀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나, 그 방송국 문턱을 매일 30여 년을 드나들었지만 “수고했다.”라는 누구의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한 채 그렇게 방송계를 떠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운명같은 기회

하지만 그때 배연정의 인생에 운명같이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연예계 잠정 은퇴 후 여러 고민을 하고 일주일간 여행을 하던 중 한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는데 한눈에 봐도 병색이 있고 너무 마른 웬 아저씨가 배연정을 쳐다보면 뜬금없이 “배연정 씨 국밥집 하나 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배연정이 “내가 무슨 국밥집을 왜 해요?”라고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 생각해 보니 야간업소도 다 잘리고 하루아침에 일거리가 없어서 앞으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가 앞으로 우리 네 식구는 어디로 가야 하나? 무엇을 해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을 하던 중 식당에서 만난 그 아저씨의 “국밥집이나 해보세요.”라는 그 말이 귀에서 계속 맴돌았다고 했습니다.

대박난 사업

그렇게 국밥집을 차리게 된 배연정은 IMF 당시 소머리 국밥을 5,000원에 팔았습니다. 그 5,000원짜리 국밥으로 하루에 2,000만 원씩 매출을 올렸으며 하루에 3~4시간밖에 못 잘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장사가 너무 잘 돼서 돈을 세다가 지문이 없어질 정도로 돈을 벌었으며,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웃지 못 할 일도 겪었다고 합니다.

계산대에서 끊임없이 돈을 받다 보니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끝나면 화장실 가야지하고 참은 게 나중에는 소변보러 가는 걸 잊어먹고 배가 당겨 그냥 싸버릴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당시 배연정의 국밥집에는 관광차로 손님이 올 정도로 대박이 났고 그녀는 자루에다 돈을 넣어 집에 가지고 가서 그걸 쏟아서 돈을 냈으며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서 9채의 집과 건물을 사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 동네에 또 다른 국밥집이 무지하게 많았는데 그 상인들로부터는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상인들의 장사 방해

어느 날 그 상인들로부터 불려 나간 배연정은 단체로 삿대질과 막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니가 뭔데 코미디언이면 코미디나 해 먹지, 왜 여기 들어와서 서민들을 죽이느냐?”라고 했고, 그러자 그녀가 “아니 그럼 연예인은 부업을 못 합니까? 남편은 사업이 망해서 입 돌아가 있고, 나도 밥 벌어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럼 옆집이 망할까 봐 장사도 못 합니까? 선의의 경쟁을 합시다. 당신들은 여기서 오래 장사한 사람들이라 단골이 있을 거다. 내가 아무리 연예인이라도 처음에만 내 이름 보고 들어오지, 맛이 없으면 절대로 다음에 또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선의의 경쟁을 합시다.”라고 했지만 그런데도 주변 국밥집 상인들은 무조건 그녀 보고 그냥 나가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주변 상인들의 끝없는 항의에 결국 그녀가 한 가지 제안하게 됩니다. 자신이 낮에만 장사하고 밤에는 장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것도 필요 없다.”라며 “무조건 나가라.”라고 하자, 여기저기 돈 들여서 이 고생, 저 고생하면서 어렵게 키운 가게인데 자꾸 막무가내로 나가라고만 하니 화가 난 그녀는 결국 국밥집을 24시간으로 돌려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그녀를 몰아내기 위한 상인들의 괴롭힘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그녀가 국밥집 주차장을 100만 원에 임대하고 있었는데 그 주차장을 상인들이 힘을 모아 3억 3천에 사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국밥집 주차장을 포크레인이 땅을 팔려고 하자, 그녀 역시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선 그녀의 엄마에게 전화해 가게로 오라고 한 후, 사람은 건드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엄마와 함께 땅 파는 포크레인 앞에 드러누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드러눕고 6~7시가 되니까 컴컴해지면서부터 하늘에 별이 뜨기 시작하는데 별 하나, 별 둘, 별 셋 그렇게 외쳤다고 했습니다. 훗날 당시를 그녀가 고백하길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나는 정신이 돈 사람 같다. 그렇게 악에 받치니까 창피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누워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건강 악화

그렇게 주변 상인들의 유언비어와 방해 속에서도 꿋꿋하게 장사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때 그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대상포진으로 시작해 췌장에 종양까지 생기며 위도 잘라야 하고, 간도 잘라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지자,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업이고 뭐고 4년을 쉬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잘 나갈 때 병이 와서 4년을 쉬고 나니까, 병은 고쳤는데 하필 또 우울증이 왔다고 했습니다.

사업 실패로 전 재산 100억을 날리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에게 인생을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출발할 수 있는 제안이 들어오는데 바로 미국 LA에서 소머리 국밥집을 내자라는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게 그녀의 인생에 또 다른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미국이라는 곳은 그녀가 생각했던 마인드와 180도 달랐고, 모든 것이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미국법을 몰랐던 그녀는 가슴 아프게도 같은 한국 사람한테 사기를 많이 당하며 성공이라는 달콤한 꿈은 쓰디쓴 실패로 끝이 났다고 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이때를 고백하길 “나는 당시 빳빳한 현금만 100억을 날렸다. 지금도 당신을 생각하면 또 분노가 올라온다. 그래서 그때 내 탓이로소이다.를 배웠다. 그래서 그 많은 돈을 미국에서 다 날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공항에서 내리는데 잊어버릴 수가 없다. 차를 타고 공항에서 집으로 오면서 남편과 함께 갓길에 차를 세워놓고 40여 분을 대성통곡하고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방으로 들어가서 석 달을 안 나왔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그녀가 어떠한 공간에서도 못 나오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폐인이 되어 가자, 그런 그녀를 본 남편이 말하기 “네가 번 거 네가 다 날렸다. 네가 잘못했다고 아무도 말할 사람 없으니까, 네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 네 밑에 가족을 봐라. 그러니까 나도 각오를 달리할 테니, 너는 네 몸만 건강하게 챙겨라.”라고 말하며 홀로 갇혀 있던 지옥불에서 그녀를 남편이 구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인생에서 패배했다는 걸 잊어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몸 관리를 하며 재기를 노렸고, 홈쇼핑에서 오리고기를 팔며 기분 좋게 첫 방송에 매진을 기록하며 다시 오뚜기 인생으로 또 한 번 일어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수많은 시련들 속에서 이겨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라는 질문에 그녀가 고백하길 “처음 돈을 엄청나게 벌었을 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목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그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하늘에 계신 분이 너 쉬었다 가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그때부터는 겸손하게 살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루 매상이 100만 원이면 100만 원밖에 못 팔면 재료비에 직원 월급에 이러다 망하겠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바뀌었다. 그래도 하루에 100만 원 판 게 어디야. 이것도 못 팔았으면 어쩔 뻔했어. 그렇게 마인드가 변했다. 없는데 있는 것 같이 허세 떨고 빈소리 하는 것보다는 나 지금 없다. 아프다. 나 장사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내 마음이 편안하다. 지금은 어디 가서 누가 물어보면 저요. 미국 가서 쫄딱 망해서 돈 없어요.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라고 했습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