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세 정훈희 뇌 혈전으로 쓰러져 결국 안타까운 소식…” 그녀의 최근 근황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많이들 사용하는 금수저라는 말의 뜻은 부여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을 누리는 자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요즘은 더 나아가 재능 금수저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돈이 아니라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뜻으로 부모의 재능을 고스란히 갖고 태어나 그를 발휘하는 이들에게 붙여지는 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정훈희는 유명한 재능 금수저로 음악가 집안에 태어나 가수로 그 재능을 뽐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가요제에서도 상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불법 약초 파동에 연루되며 방송출연 정지와 피습까지 당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남편과 20년 가까이 별거 중이라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습니다.

가수로서는 흠잡을 데 없는 재능을 뽐냈지만, 그녀의 인생은 흥과 상처로 얼룩져 있습니다. 오늘은 가수 정훈희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훈희
👉”최수종 아내 하희라의 충격 가족사 소식”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이봉조와의 인연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일명 재능 금수저입니다. 정훈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67년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를 따라 나이트클럽 연습실에 갔다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이봉조를 만났습니다.

당시 정훈희는 작은아버지가 연습 삼아 치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몇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클럽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던 이봉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색에 이끌려 클럽을 찾았고, 정훈희가 부르는 재즈풍의 발라드에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때 당시 이봉조는 안개라는 곡을 만들어 놓고 자기 색소폰 연주로 녹음한 상태였습니다.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던 중에 정훈희의 노래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봉조는 안개의 LP를 정훈희에게 건네며 “집에 가서 멜로디를 외워 와라.”라고 했습니다. 2~3주 뒤 정훈희는 처음 찾은 스튜디오에서 신성일, 윤정희 주연 영화 ‘안개’의 주제곡을 녹음하며 이봉조와 연을 맺었습니다.

전성시대

정훈희는 이봉조의 노래로 데뷔하자마자 무명 생활 없이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시절 녹음은 릴테이프를 이용한 녹음으로 복사가 되지 않기에 방송 3사에서는 정훈희 테이프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정훈희는 피디들이 빨리 녹음하라라며 아우성치차, 며칠만에 다른 노래를 10곡 더 녹음해 “재킷 사진도 못 찢고 첫 음반을 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급하게 찍은 음반임에도 그녀의 첫 음반은 40만 장이 팔렸고 단번에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음색이 좋아 노래도 잘 표현해냈고 가수로서 운도 좋았던 정훈희는 70년대 도쿄 국제가요제, 아테네 국제가요제, 칠레 국제가요제 등 국제가요제에서만 6번이나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 그룹 아바가 데뷔 초 참여해 빈손으로 돌아간 제1회 도쿄 국제가요제에서는 베스트10가수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75년에는 칠레 가요제에서 무인도라는 곡으로 3위 상과 최고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1975년 천국과 지옥

1975년은 그녀에게 가장 인상 깊은 해로 훗날 밝히기를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였다”라고 합니다. 천국은 칠레 가요제에서 2가지 상을 동시 수상했던 것이고, 지옥은 피지도 않은 불법 약초를 피웠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던 것입니다. 75년 연예계에는 대대적인 불법 약초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많은 연예인이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잡혀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정훈희 역시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정훈희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오랜 애연가로 그냥 담배를 피웠던 것인데 명백한 증거도 없이 불법 약초를 피운 혐의가 씌워졌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모발 검사 같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시기라 의혹만으로 혐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정훈희는 의혹받아 구속되었지만 오해가 풀리며 이내 훈방 조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훈방 조치를 받았음에도 방송은 출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6년간이나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피습사건

그리고 1975년이 정훈희에게 지옥 같았던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1975년 7월 정훈희는 그녀를 짝사랑했던 한 남자에 의해 습격을 당했습니다. 정훈희는 당시 미아동에 있는 신미 극장 분장실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던진 시멘트 조각에 얼굴을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정훈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진 사람은 평소 그녀를 짝사랑했던 현모 씨였습니다. 정훈희의 열성 팬이었던 그는 정훈희를 보기 위해 상경했고 공연 포스터를 본 뒤 현장을 찾아가 자신을 만나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둔 정훈희는 준비에 한창이라 만남이 성사될 수 없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은 데에 화가 난 현모 씨는 분장실까지 찾아가 정훈희를 공격했습니다.

그 때문에 정훈희는 얼굴이 다친 것은 물론 심적으로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랑이 그녀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으며 75년을 지옥 같은 해로 기억하게 해줬습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방송 출연도 못하는 상황에 팬에 의한 피습까지 당하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제2의 전성기

그런데도 정훈희는 노래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고, 해외 가요제에 참석하며 여전한 노래 실력을 뽐냈습니다. 정훈희는 1979년 열린 제20회 칠레가요제에 다시 출전합니다. 이번에는 최우수 가수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사실이 국내에도 알려지며 정훈희는 다시 한번 가수로서 설 기회가 올 거라 기대했습니다.

아쉽게도 앞선 사건 때문에 불법 약초 가수라는 낙인이 찍혀 그녀의 활동은 좀처럼 편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81년 겨우 규제가 풀리고 정훈희는 복귀를 알렸습니다. 아쉽게도 복귀하자마자 대중의 사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88년 정훈희는 꽃밭에서라는 곡을 발표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결혼과 별거생활

그 이후로 가수 김태화와 결혼을 하고 음악 활동을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정훈희는 남편 김태화와 부산 기장 해수욕장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면서 공연도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음악적으로도 부부로서도 참 잘 맞는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정훈희는 한 방송에서 남편과 20년 가까이 별거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별거 사실에 과거 정훈희와 절친한 현미가 정훈희 남편이 바람을 많이 피웠다라고 폭로한 것이 재조명되었습니다. 현미는 방송에서 “정훈희의 남편은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줄줄 따랐다.”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정훈희 역시 “남편의 외도가 잦았지만, 음악적으로 너무 잘 맞아서 지금까지 함께 했다.”라고 인정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두 사람의 별거가 김태화의 잦은 외도 때문은 아니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정훈희는 “갱년기가 찾아왔을 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별거를 결정했다.”라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현재 정훈희는 서울 집에서, 남편은 부산 해운대에서 살고 있으며 바닷가 별채에서 가끔 만나 생활하는 세 집 살림을 한다고 합니다. 두 사람 모두 이런 생활에 만족하고 있으며 따로 살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변치 않았다고 밝혀 걱정을 잠재웠습니다.

건강 이상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는 건강 문제도 있었습니다. 정훈희는 김태화가 위암으로 2번 수술한 사실을 밝히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2019년 뇌 혈전으로 쓰러진 적이 있다며 팬들을 걱정시켰습니다. 두 사람 모두 그 이후로 건강에 철저히 신경을 쓰고 있음을 밝혀 걱정을 잠재웠습니다.

두 사람은 따로 살면서도 서로의 건강을 여전히 챙기면서 애틋한 부부애를 과시하고 있습니다. 오랜 별거 생활에 대한 세간의 걱정에는 “모든 부부가 다 똑같은 규칙을 정해놓고 이렇게 살아야지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라며 두 사람이 지금 상황에 만족함을 드러냈습니다. “떨어져 살게 되면서 오히려 각자의 삶에도 충실하게 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게 되니 두 사람 사이도 더 애틋해졌다.”라고 밝혀 흐뭇함을 자아냈습니다.

“건강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며 각자의 삶에도 충실하겠다.”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앞으로도 두 사람 따로 똑같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무대 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볼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