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한혜숙 결혼도 안 하고 10년째 방송에 안 나오는 이유” 어떤 이유인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70년대 청순하면서도 세련된 외모로 큰 인기를 끌었던 미모의 여배우 한혜숙을 기억하시나요. “나는 연기자로서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여자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라고 한혜숙 씨는 말했는데요. 장년에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여성으로 남았다는 것을 실패했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런 한혜숙 씨도 한때에는 핑크빛 스캔들 루머에 휩싸인 적도 있는데요. 오늘은 한혜숙이 왜 그동안 결혼하지 않고 10년째 방송에 출연하지 않았는지 알아보도록 할게요.

한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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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동의 안가 루머

한혜숙이 한창 젊었을 때 그녀와 정주영이나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루머가 퍼진 적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시절에 엄청난 공포 정치로 일반 시민들을 압박하고 탄압했던 그 서슬 퍼런 70년대의 시절에 박정희는 그 당시 잘 나갔던 여러 명의 미모의 여배우들을 건드렸다고 하는 루머가 있었죠. 일반인들에게 숨겨졌던 궁정동의 안가는 박정희가 여배우들을 데려다가 유일을 즐겼던 곳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요.

한혜숙도 그중에 한 명이었다는 루머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팩트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데 단지 몇몇 사람들의 육성 증언만이 있을 뿐이고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그 당시 초법적인 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가 많은 여자들을 건드렸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어쩌면 당대의 최정상급 인기 여배우였던 한혜숙도 도매급으로 함께 연관되어서 그러한 루머에 휩싸이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물론 한혜숙은 이 같은 루머는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히 부정했다고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이유

70년대 전반 당시 한혜숙의 미모는 지금의 김태희의 미모에 비견될 정도로 큰 주목과 호평을 받았으며 수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했습니다. 당시 일반인 중에도 한혜숙을 짝사랑하고 스토킹하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는데 한 남성은 70년대 당시 거의 매일같이 한혜숙의 집을 찾아와서 그녀를 미행했으며 심지어 한혜숙에 집 담벼락에 이름을 적고 빨간 토마토로 하트 모양을 새겨 넣어서 한혜숙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소동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7080년대 세상을 뒤흔들었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로 많은 남성 배우들과 일반 남자들의 커다란 로망의 대상이었던 한혜숙이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무척 궁금하기 짝이 없는데요. 미모가 안 된다면 모르겠지만 70년대 초반에 3500 대 1의 경쟁률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얼짱 미모를 보유한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결혼하지 않았을까요.

한혜숙이 지금까지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표면적인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그녀의 가정 환경 때문이라고 할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녀의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한혜숙은 1951년도 부산에서 다섯 자매 중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무척 엄격한 성향을 갖고 있어서 어려서부터 한혜숙을 엄격하게 훈육했다고 합니다. 또한 한혜숙은 29세의 나이의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면서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려워지죠. 20대의 나이 한혜숙에게는 부양해야 할 4명의 여동생들이 있었으며 그 당시 한혜숙은 네 명의 여동생들을 모두 양육하고 교육시켜야 할 사실상의 가장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집안의 가장이 된 한혜숙은 자기 자신을 철저하고도 엄격하게 관리해 나갔으며 오직 일과 가족 부양에만 전념해 나갔다고 합니다. 가족들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사로잡힌 한혜숙은 연기 활동을 하면서도 근검 절약을 해나가면서 동생들을 모두 양육해 나갔고 대학까지 보내는 등 가족들 부양에 전력을 다했다고 하는데요.

타고난 성격 자체가 보수적이면서 완고한 데다가 동생들 부양에만 신경을 집중시켰던 한혜숙은 어쩌면 연애라는 것을 사치하고 느꼈을 수도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칠공자의 대시

이렇게 동생들 부양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 자신에게 너무도 엄격했던 한혜숙은 많은 남성들의 프러포즈를 전부 거부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현재까지 독신으로 있는 한혜숙도 사실 젊었을 때에는 연애를 전혀 안 한 것은 아니었죠. 한혜숙이 스스로 밝혔던 내용인데 그녀는 젊었을 때 세 번 정도 연애를 했었다고 합니다.

7080년대의 대표적인 미인이었던 그녀가 아무리 성격이 엄격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한 번도 연애를 안 할 수가 있겠습니까 즉 젊었을 때의 한혜숙은 총 세 명의 남자들과 연애를 했었고 그 중에는 좋은 감정을 가졌던 상대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들 중에는 소위 칠공자에 해당하는 대단한 스펙을 지닌 남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남자가 어찌나 끈덕지게 쫓아다니면서 끈적댔는지 한혜숙은 이 남자의 그런 끈질긴 대시에 오히려 질려버렸다고 하는데요. 다른 여자들은 어느 정도 배경이 좋은 남자가 자신을 끈질기게 대쉬해 오면 좋아했을 텐데 한혜숙은 보통 여자들과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여성이었죠. 자신을 좋다고 끈덕지게 대시해 오던 배경이 좋은 칠공자를 한혜숙은 너무 질린 나머지 보기 좋게 차버렸다고 합니다.


그때에 못 이기는 척하면서 그 남자의 대시를 받아줬더라면 한혜숙은 지금쯤 아들 딸 낳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을 겁니다. 이것은 한혜숙의 성격의 한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녀는 엄격하고 완고하고 깐깐하면서 상당히 콧대가 센 성격이었다고 하죠.

이렇게 깐깐하고 완고한 성격을 지닌 한혜숙은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길 바라는 그 당시의 남자들의 취향에는 잘 맞지 않았던 겁니다. 7080년대에는 지금과 달리 여자가 어느 정도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면서 순종하는 스타일이 대세였던 시대였으며 남자들은 그렇게 순종적인 여자들을 좋아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죠.

경비 구타 사건

한혜숙의 성격의 또 다른 단면을 보여주었던 사건으로 경비 구타 사건이 있는데요. 1981년도에 여의도 방송국에 출입할 당시에는 방송국 경비의 파워가 막강했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방송국에 드나들기 위해서는 모든 연기자들은 명찰을 달고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고 경비가 매일같이 엄격하게 명찰을 검사했다고 하는데요.

아무리 유명한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명찰을 달고 있지 않으면 경비는 그 연기자를 결코 방송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경비들이 매우 깐깐하게 통제를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혜숙이 명찰을 달지 않고서 방송국으로 들어왔고 당연히 경비는 명찰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죠. 그 당시가 1981년도라 한혜숙은 유명 탤런트라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있었을 때인데 한혜숙은 자신에게 명찰 제시를 요구하는 경비에게 “나는 한혜숙인데 당신 내가 누구인지 모르느냐” 라고 말했고 그 경비는 “당신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고 말하면서 계속 명찰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자 두 사람 간의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고 그 경비가 끝까지 출입을 막아서자 화가 난 한혜숙은 자신의 구두에 뾰쭉한 힐로 그 경비에 머리를 때렸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한혜숙의 구두로 얻어맞은 경비는 머리에 피까지 흘렸다고 하죠. 한혜숙의 성격이 얼마나 대쪽같고 도도하며 깐깐한 성격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는 탤런트 김형자가 직접 전해 들었던 그 당시에 매우 유명했던 실화라고 합니다.

10년 이상 방송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

한혜숙은 2009년 드라마 보석비빔밥을 마지막으로 촬영하고는 더 이상 방송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전언에 따르면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셔서 지금 어머니의 병간호에 열중하면서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혜숙은 틈나는 대로 절에 찾아가서 정성껏 불공을 드리고 있다고 하죠. 한혜숙이 모든 주변 상황이 잘 정리되고 다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서 방송에 다시 출연해서 그녀의 완숙하고 중후한 연기를 다시 볼 수 있기를 팬의 한사람으로써 바라는 마음은 간절한데요.

한혜숙이 방송에서 말한 한마디가 떠오르는데 그녀는 “나는 아직도 언젠가는 좋은 남자와 만나 결혼하는 꿈을 꾸고 있다.”라고 직접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연기자로서는 성공했을지는 모르지만 여자로서는 실패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라고 했는데 장년의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못한 여성으로 남았다는 것을 실패했다는 말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한혜숙이 직접 이 말을 한 것을 보면 원래 독신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본다면 한혜숙이 결혼하지 않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도출되어 나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엄격한 교육과 스파르타식 규율 타고난 보수적이면서 완벽 제일주의 성격 그리고 불교의 근육주의적 신념과 가치관 이런 제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한혜숙으로 하여금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통제하면서 스스로 근육적인 생활을 몰두하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남자들을 멀리 하게 된 것이 아닐까요.

이러한 특별한 이유와 환경 때문에 7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 스타였던 한혜숙은 안타깝게도 70이 넘은 지금까지도 독신으로 살아오게 된 것이죠. 물론 안타깝다는 것은 우리의 판단일 뿐이고 독신으로 살고 있는 한혜숙 자신은 스스로 현 상태에 만족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한혜숙은 자신이 죽기 전에 암자를 하나 지어 보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적도 있으며 그곳에 복지시설을 하나 지어서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의 복지를 위해서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적도 있는데요. 오랫동안 독신으로 살면서 이런 특별한 사상을 갖고 있는 한혜숙은 아무튼 보통 사람은 절대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한혜숙이 아직도 결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이것은 대단한 반전으로 정말 놀랍기만 한데요. 깐깐하고 완고한 성격 불교의 금욕주의적 가치관과 더불어 동생들을 모두 뒷바라지 하는 데에만 몰두한 나머지 한혜숙은 혼기를 놓친 것 같습니다. 그녀가 다시 방송에 출연해서 보다 더 기품 있고 완숙한 연기를 펼치는 모습을 꼭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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