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투병 중 우리곁을 떠났습니다” 10대 가수상을 휩쓴 70년대 여가수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1973년에는 당대 최고의 가수 나훈아가 공연하던 중 관객이 무대 난입해서 얼굴을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유리병 조각으로 상처를 입은 나훈아는 얼굴을 72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연예인들은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 노출되는 만큼 연예인이 피해당한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뿐 아니라 원로 가수 이수미도 한창 전성기를 구가한 시절 해변에서 괴한에게 피해를 봤습니다. 100바늘이나 꿰매고 열흘 가까이 의식을 잃었을 정도로 크게 다치었습니다. 이수미은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때 이 사건으로 많은 걸 잃었습니다.

재기에 성공했을 때도 불법 대마초 사건으로 다시 한번 모든 걸 잃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2021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오늘은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가수 이수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이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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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데뷔와 활동

1952년생 이수미은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인 69년에는 목포 KBS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 무려 5주 연속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해 연말에는 목포 MBC 개국 노래자랑 결산 방송에 나갔다가 제작사 사장의 눈에 띄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70년 상경에 가수 수업을 받고 71년에는 때늦은 후회지만이라는 곡으로 데뷔했습니다.

그 후 내 곁에 있어주, 두고 온 고향, 방울새 등의 앨범을 내며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중 1972년에 발표한 여고시절이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수미가 부른 여고시절은 애절한 목소리와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가 합쳐져 대중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습니다. 게다가 졸업 시즌과 겹치며 라디오 등 여러 방송 매체에서 앞다퉈 그녀의 노래를 내보냈습니다.

실력과 이런저런 상황들이 맞물려 그녀는 데뷔한 지 1년밖에 안 됐을 때, 노래 하나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가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 당시 이수미의 인기를 꺾을 만한 여가수는 거의 없었습니다. 슬픈 연가로 데뷔한 방주연과는 라이벌로 거론되며 여성계의 남진과 나훈아로 불렸으나 당시에는 이수미의 인기가 조금 더 우위에 있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공 행진하던 이수미은 일련의 사건들로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충격적인 사건

1972년 해수욕장을 거닐던 이수미은 누군가가 어깨를 쳐 돌아보는 순간 복부의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습니다. 그녀에게 고통을 남긴 괴한은 이내 인파 속으로 사라졌고, 이수미은 대천읍에 위치한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이수미은 그 사건 때문에 100여 바늘이나 꿰맸고 열흘 가까이 의식도 못 찾았습니다. 의사는 면도날 같은 예리한 것으로 찔린 것 같다라며 열흘 이상 치료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최고 인기 가수의 충격적인 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놨습니다. 덩달아 분노의 목소리까지 커졌습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건으로 경찰은 해수욕장 불량배나 지정 관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괴한과 인상착의가 비슷한 남자들은 모두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받고 이수미의 주변 인물들도 철저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수미은 일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벌어진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한 일이었음을 자백했습니다. 이수미은 대천 해수욕장에서 그동안 사귀었던 이 씨에게 이별을 통보받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스스로 아프게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가 만나던 이 씨는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일방적인 이별 통보에 충동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고, 그저 커지고 있는 일을 수습하려 했던 그녀의 거짓 진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타인에게 찔렸다고 밝힌 점을 들어 그녀의 주장은 많은 의문점을 낳았습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시절, 유부남의 이별 통보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기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히려 이수미가 유부남 이 씨와 만나다가 이 씨에게 이별을 고하며 사건을 당했다는 편이 더 설득력 있었습니다. 훗날 한 방송에서 그녀와 절친하게 지냈던 옥희가 이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에게 당했다.”라는 이수미의 고백에 옥희가 “신고해서 콩밥을 먹이지 그랬냐?”라고 다그쳤다고 합니다.

그에 이수미은 “그렇게 하면 뭐하니? 나중에 내가 다 해결하려 했지. 사건이 더 커져서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자꾸 적나라하게 밝혀지면 더 힘들어지지 않니.”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대답으로 범인과 어느 정도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범인과의 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수미은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가수로서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시련의 연속

여고시절을 부르던 순수하고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가수는 유부남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추잡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강했던 시기에 그녀의 사건은 대중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고, 그 이후 그녀는 침체기를 맞이했습니다. 한동안 팬들은 그녀에게 전과 같은 호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수미은 끊임없이 무대를 두드렸고 결국 1974년 내 곁에 있어주라는 곡을 발표하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이수미은 그 곡으로 MBC 10대 가수상, TBC 여자 가수상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자마자, 그녀는 연예계를 뒤집어 놓은 불법 대마초 파동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모습을 감춰야 했습니다. 75년 연예계 최대의 스캔들이 터지며 대한민국은 떠들썩했습니다.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많은 연예인이 신문 1면에 이름을 올리며 구속되었습니다.

이수미은 일반적인 담배조차 못 피웠지만, 이미 잡혀 들어간 동료와 친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함께 휘말렸습니다. 당시에는 어떠한 과학적인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자백과 투서로만 불법적인 흡연 여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연예인이 고초를 겪어야 했고 이수미 역시 그중 하나가 됐습니다. 그 이후로 이수미은 생계를 위해 낮에는 백화점에서 일하고, 늦은 시간에는 밤무대 위에 올라, 노래를 부르며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버텼지만, 그녀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입양 딸과 가족의 사랑으로..

1980년이 되면서 방송 활동 규제가 풀렸지만 1983년 또다시 사회 정화 운동으로 방송출연금지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연이은 사건들로 큰 충격을 받은 이수미는 실어증까지 얻었습니다. 그 외에도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라는 소문까지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말할 수 없는 괴로움에 이수미은 신앙의 힘에 기대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딸을 입양하게 되었고 슬하의 딸이 하나 있는 사업가 배제동을 만나 네 사람이 함께 가정을 이뤘습니다.

각기 다른 상처가 있는 네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족들의 사랑으로 마음을 치유한 이수미은 가수로서의 복귀까지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인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할 수 있음이 행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던 중 2021년 9월 폐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라는 비보를 들려줬습니다. 이수미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별이 빛나는 이밤에라는 신곡을 내고 활동했기에 아무도 그녀의 비보를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녀는 병원에서 폐암 3기 판정받았고 치료를 받던 중 향년 69세의 나이로 세상과 작별을 고했습니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여가수 이수미 그녀의 삶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본인의 잘못이 아님에도 무대에 오를 수 없었고, 억울한 사건에도 연루되며 가수로서 슬픔을 겪었습니다.

그래도 그 슬픔 속에 따뜻한 가정을 이루었던 것은 그녀의 생애 가장 잘한 일입니다. 생전에는 세간의 입에 오르며 속앓이했을 그녀가 하늘에서는 평안을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고인이 어떤 아픔도 없이 편히 쉬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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