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천사 배우 난소암 투병 중 결국…”고소까지 당한 충격 이유”에 대해 확인해 보세요.

1980년대 중후반 주말 저녁이면 황금 시간대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연달아 맡으며 멜로의 여왕으로 군림한 배우 정애리는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폭넓은 연기력으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특히 그녀는 연기도 연기이지만 공인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봉사와 선행 활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사랑과 존경을 함께 받아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배우로서 정애리는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삶을 사는 듯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인생사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정작 인간 정애리의 개인적인 삶은 야속하게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한때 집안이 쫄딱 망해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으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약속하며 함께하길 원했지만 두 번이나 실패한 결혼 끝에 결국 고소당한 후 끝내 난소암까지 걸리고 말았던 배우 정애리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선행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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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우한 어린 시절

1960년 전남 영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막내라서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또한 집안이 상당히 부유해 영광에서 꽤나 큰 집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워낙 성격이 좋았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한 이후로 집안이 쫄딱 망했습니다. 갑자기 서울로 이사를 왔고 그렇게 큰 집에서 살다가 작은 부엌 하나 딸린 단칸방에서 6남매가 살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평생 한 번도 나가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살다가 집안이 쫄딱 망한 뒤로는 환경미화원 일과 부업으로는 봉투 붙이는 일 하며 생활적인 면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막내로 태어나 사랑만 받고 자라다가 갑자기 변해버린 형편으로 인해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에 늘 쌓여 있던 집안일을 했으며 당시 자신의 처지와 달리 놀고 있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 발표와 미국행

한편 학창시절 무용을 하던 그녀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있을 때, 어느 날 셋째 오빠가 “KBS에서 주연급 탤런트를 뽑는데 상금이 많다.”라며 재미 삼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해서 얼떨떨에 탤런트가 되게 됩니다. 그렇게 19살의 나이로 신인 탤런트 특선 1등으로 데뷔하게 된 그녀는 이후 1980년대 황금 시간대의 드라마 여주인공을 연달아 맡으면서 멜로의 여왕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처럼 배우로서 정점에 도달할 무렵, 돌연 갑자기 그녀가 결혼 소식을 전하면서 배우 활동 중단을 선언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부산에서 재벌 집안으로 유명했던 뉴욕제과 사장 아들로 결혼 직후 배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훗날 그녀의 고백에 따르면 “첫 번째 결혼할 당시 그동안 배우로서 인기도, 상도 많이 받아 후회 없는 세월을 보냈다. 당분간은 평범한 주부로 살고 싶었고 막상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과연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지, 자신이 없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미국으로 떠났던 그녀가 1988년에는 돌연 혼자 귀국하면서 다시 배우로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남편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보니 이때부터 두 사람을 둘러싼 각종 별거설과 불화설 등이 불거지게 됩니다. 이후 “실제로 남편과 오랜 세월을 떨어져 지내다 보니, 어느 날부터 서로에게 닿아 있는 믿음이 조금씩 변했다.”라며 결혼 20년만, 별거 7년 만에 결국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이혼 사유로 “변했다.`라는 말이 얼마나 깊은 슬픔이던지 서로에게 사소한 상처가 쌓여 자연스레 이혼에 이르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두번째 결혼과 사기 고소

한편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수많은 선행과 봉사 활동을 해왔었는데, 그러다 2010년 무렵 같은 교회에서 봉사 활동을 하다 만난 사업가와 만나 2011년 두 번째 결혼하게 됩니다. 당시 그녀는 “두 번째 남편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고 자상하며 말도 차분하고 박학다식해서 너무 좋은 사람이다.”라며 극찬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인 2014년 또다시 이혼하고 말았습니다.

결혼 당시 이들의 만남은 훈훈한 미담 속에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소식이 더욱 안타까웠고 심지어 이때 두 사람이 사기죄로 형사고발을 당한 사실까지 알려져 더욱 충격을 안겨주고 말았습니다. 내용을 알아보니 당시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던 두 번째 남편이 어떤 A씨로부터 지점을 개설해주는 조건으로 5억 원을 받았으나 문제가 생겼는지 A씨가 투자금 반환을 요청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하니 갑자기 a씨가 차용금으로 바꾸자면서 투자금을 빌린 돈으로 바꾸게 되었고 그리고 변제기일이 되기도 전에 태도를 바꿔 사기 명목으로 형사고소를 하게 됩니다. 이때 두 번째 남편뿐만 아니라 그녀까지 포함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A씨는 두 사람의 이혼 사실을 알고 남편에게 돈을 받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그녀를 고소하면 연예인이라는 이미지 때문에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고소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두 사람이 이혼한 상태로, 설사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부부별산제가 있어 남편의 일로 부인의 재산을 집행할 수도 없었으나, 단지 그녀가 연예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일종의 압박을 위한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고소 사건은 그렇다 치고 두 사람은 이혼 과정에서도 잡음이 생기는데 당시 정애리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이혼 전, 남편이 돈이 꼭 필요하다고 해서 그때는 부부니까 어쩔 수 없이 여러 차례 돈을 건네주었고 그런데 이혼할 때 위자료는커녕 받아야 할 돈도 못 받았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당시 두 번째 남편은 업무를 남들이 보기에도 두 번째 남편의 외도나 불륜을 의심하기 쉬운 상황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두 번째 남편의 반박으로는 ‘절대 여자 문제가 없었고 자신은 청년 사업가적인 정신에 있어서 항상 직원들과 함께 다니면서 움직이는 기획 사무실이다 보니 차를 마시더라도, 모임에 가더라도, 직원들과 동석했다. 그걸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오해했던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난소암 투병하며…

그렇게 두 번째 결혼마저 끝이 난 그녀는 이후 정말 안타깝게도 2016년에는 드라마를 하던 도중, 복막염으로 수술하다 난소암이 발견되고 말았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암이 1기라 이후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암 치료는 피할 수 없었고 당시 후두두 떨어진 머리카락을 마주하기 싫어 미리 머리를 밀어야만 했습니다. 이후 치료가 끝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을 때는 거울을 보며 ‘감사합니다. 애썼어’를 속으로 외치며 펑펑 울었다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지막으로 그녀가 고백하길 “우리는 흔히 축복이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한 삶,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삶이 축복과 가장 어울리는 조건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99가지의 좋은 일이 있어도 하나의 힘든 일만 있더라도 힘들다고 하니까, 차라리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지루한 하루가 가장 축복받은 삶인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무사히 잠자리에 들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살다 보면 인생에서 힘든 일도 많고, 그때는 도저히 저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어떻게든 오게 되어 있다. 물론 나도 하는 일이 다 잘 됐으면…. 이런 마음이 있지만 솔직히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저 주어진 일에 충실히 잘 감당하겠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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