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세가족 아역배우 배우로 설 자리 잃더니 결국… 안타까운 소식” 그의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인기 연예인을 속여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며 큰 사랑을 받았던 예능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연예인들을 몰래 촬영하면서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많은 진풍경을 양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로 많은 연예인은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아역 출신 배우 정명현도 몰래카메라의 수혜자 중 하나였습니다.

정명현은 당시 장닭표 양념 통닭 프랜차이즈의 광고를 찍는다는 내용으로 한껏 속는 장면이 전파를 탔습니다. 정명현은 광고가 몰래카메라용 가짜 설정이라는 것을 모른 채 열연했고 우스꽝스러운 컨셉에도 열연하는 그의 모습이 전파를 타며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그는 이후 장닭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친근한 이미지로 대중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습니다. 92년에는 장닭 고교얄개를 찍으면서 배우로서 매력을 뽐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그는 93년 일련의 사건들로 신문 1면을 도배했습니다. 그 사건들 때문에 그는 방송에서도 자취를 감춰야 했으며 결국 도피처럼 오른 미국 이민 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며 많은 이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대체 어떤 이유로 그는 최고의 아역스타에서 몰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을까요? 오늘은 정명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아역
👉”박원숙의 같이삽시다에 합류한 안문숙이 여태 결혼 못한 충격적인 이유” 어떤 이유인지 바로 확인해 보세요.

최고의 방송 코너 ‘몰래카메라’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로 시작했지만, 대중들에게 이경규=몰래카메라라고 인식시킬 만큼 화제 속에 방송된 코너입니다. 91~92년에 걸쳐 방송했던 몰래카메라는 2005~2007년까지 2년 동안 돌아온 몰래카메라라는 제목으로 다시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연예인들의 진솔한 반응으로 몰래카메라로 인해 수혜를 본 많은 스타도 생겼습니다.몰래카메라의 대표 수혜자는 강호동, 이휘재, 박경림, 박명수 등이 있습니다. 이경규는 자신이 보기엔 괜찮다 싶으면 밀어주는 스타일이라 방송 당시에는 유독 몰래카메라 출신 스타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몰래카메라로 대박난 아역배우

그리고 아역배우 출신 정명현도 몰래카메라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도 몰래카메라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경규의 눈에 들어 친분을 맺게 되었고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명현은 88년 KBS1 특집 다큐멘터리 드라마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김만철의 막내아들 역으로 데뷔했습니다.

90년에는 꼴찌 수색대에서 사고뭉치 소년 귀봉역할로 얼굴을 알리고, 이듬해인, ‘한 지붕 세 가족에서는 악동소년병태`역을 맡으며 아역배우로는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유명세를 얻어 당시 인기 연예인만 나올 수 있었던 몰래카메라에도 출연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정명현은 몰래카메라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것은 물론 자기 사람은 신경 써서 이끌어주는 이경규의 눈에 들어 스타로서 발돋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명현은 이경규 덕분에 각종 예능에 출연 기회를 얻은 것은 물론 스크린 데뷔의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정명현은 이경규의 영화 복수혈전에도 출연을 시작으로 장닭 고교얄개라는 원맨쇼 코미디 영화를 찍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cf를 찍으며 종횡무진 활약을 이어 나갔습니다.

정명현은 코믹한 작품뿐 아니라 정통 드라마에도 출연하며 아역배우로서 성공 가도를 달렸습니다. 정명현은 시청률 60%를 기록한 최진실, 최수종 주연의 드라마 질투의 피자가게 소년으로 나오는 등 여러 드라마에서 감초의 역으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야말로 아역으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입니다. 큰 사건 없이 그대로 있었다면 최소 유해진, 이문식의 뒤를 잇는 감초 조연을 맡았겠지만, 정명현은 연이어 많은 사건으로 인해 방송계에서 퇴출당하게 되었습니다.

방송계 퇴출 당한 이유

어려서부터 아역 생활하느라 학교생활에 소홀했던 그는 질이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93년 환각류를 흡입하고 절도를 하다 잡혀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정명현은 방송 금지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다른 연예인들처럼 한동안 자숙을 한 후 다시 활동을 재개했으면 위기가 기회로 변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의 바람에도 그는 옳지 못한 행동을 반복해 결국 배우로서의 입지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소년원 신세를 지고 방송출연 금지까지 당했지만 5개월 후 더 심각한 환각류 물질을 흡입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저질렀습니다. 허가되지 않은 물질을 흡입한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이미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그가 여성을 강제적으로 제압하고 괴롭혔던 사건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친근한 개구쟁이 막냇동생 같은 그의 사건에 많은 사람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연이은 사건들로 그는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며 당시 출연하던 `한 지붕 세 가족’에서는 강판당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사건에 대해 억울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정명현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범죄를 계획하고 친구들과 만난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정명현 친구가 내 오토바이를 타다 사고로 망가뜨렸다. 수리비를 마련해 준다고 해서 따라다녔다. 가보니 범행 현장이고 나도 모르게 가담이 되었다.라며 그날의 진실을 밝혔습니다.

당초에 알려진 대로 적극적인 범행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시 18세의 나이로 노래에 강한 유대감을 느끼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청소년기에는 아무래도 아직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시기이며 또래 집단에 강하게 소속감을 느끼기에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한 시기에 친구들에게 휩쓸렸던 것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어 안쓰럽기도 합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는 결국 잘못했고 그 때문에 그의 배우 생활은 나락을 향해 갔습니다. 결국 그는 그 이후로 모든 소식이 끊겼습니다.

소식이 끊긴 이후 충격적인 소식

대중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았고 그 이후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라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민 이후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던 그는 의외의 곳에서 근황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광주의 한 추모공원에서 우리는 그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채동하, 리세, 조성민 등 유명인들이 대거 잠들어 있는 경기 광주시 분당 추모공원의 유명인 명단에서 정명현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가 잠적한 후 유가족이 입을 열지 않고 있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결정적인 원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역배우로 많은 사랑을 받은 그가 방송을 떠나 지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라는 추정이 많았습니다. 한때는 모두가 관심을 보이며 사랑을 보냈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했고 그의 꿈이었던 배우로 설 자리까지 잃었으니 얼마나 그 상실감이 컸을까요?

연기력 자체에 대해서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나 성장기를 빼앗기는 바람에 인격을 다듬을 수 없어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주변 사람의 애도

한 지붕 세 가족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서재경은 정명현 형은 병태, 나는 병식이었었는데 우린한 지붕 세 가족에서 형제였지. 천부적으로 천재적 재능을 가진 배우였는데 부디 좋은 곳에 가서 고이 잠드소서라는 글로 뒤늦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그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친근한 막냇동생의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배우이기에 그의 보고 소식은 참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그곳에서는 방황하는 일 없이 편안한 영면에 들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