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 박사 충격적인 원인으로 결국…”장기는 어려운 환우에게 기증”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시시콜콜한 궁금증부터 과학 서적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호기심을 모두 해결해 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국내 최초 지적 버라이어티였던 ‘호기심 천국’입니다. 제목 그대로 시청자들의 호기심이 담긴 질문을 골라 실험 등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형설지공이 실제로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는 반딧불이를 직접 잡아 책을 읽는 실험을 하였고, ‘종이배로 한강을 건널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실제로 종이배를 만들어 한강에 띄우기도 했습니다. 많은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던 ‘호기심 천국’은 1998년 3월 방송을 시작으로 2002년 10월까지 인기리에 방영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호기심 천국’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황수관’ 박사입니다. 황수관 박사는 당시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높여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황수관은 방송은 물론 책 지필, 강연까지 하며 매일을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강의에는 늘 건강이 강조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건강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황수관은 미처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고 2012년 12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며 많은 사람을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그는 쓰러지기 하루 전에도 강연을 다니며 일에 매진했다고 해서 더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대체 무엇 때문에 그는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걸까요? 오늘은 황수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신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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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그 시절에 박사 학위라니, 황수관은 유복한 환경에서 한계 없는 지원받으며 자랐을 것 같지만, 오히려 찢어질 듯이 가난한 집안 환경에서 힘들게 자랐다고 합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공부가 정말 하고 싶었던 황수관은 포항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매일 4시간을 걸어서 등교했다고 합니다.

왕복에 걸리는 시간은 8시간으로 황수관은 학교에 가려면 매일 8시간을 고생했어야 했지만, 그의 넘치는 학구열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교장 선생님이 너무 멀어 포기하라라고 만류했지만, 황수관은 끝까지 우겼고 매일 오전 4시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날마다 통학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고등학교 진학부터 난관을 맞이합니다.

너무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그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에 황수관의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안강 농고가 생겼고 그는 전액 장학금으로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망

그렇게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황수관은 대구교대에 진학해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배움에 대한 그의 열망은 식을 줄 몰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이어나갔고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 수업을 청강하기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에 지칠 줄 모르는 학구열은 마침내 그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자리까지 했습니다.

의대 출신이 아닌 그가 수업을 청강할 때 의대 교수들은 대놓고 그에게 온갖 수모를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 장 달라’라며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의대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황수관은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습니다.

졸업장도 못 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했는데, 마침내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공의 조력자

그의 성공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그녀의 아내였습니다. 황수관은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에 안주하지 않고 학구열을 뽐냈습니다. 황수관이 공부하며 시간을 보낼 때 가정을 꾸려나간 것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수입이 줄어 생계를 꾸리는 데 힘이 드는데도 남편의 뜻을 지키고자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줬다고 합니다. 아내의 헌신적인 희생이 없었으면 아마 황수관은 의대 교수로서까지 성공을 못 했을 것입니다. 황수관의 아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남편을 묵묵히 지지해줬던 것은 황수관의 성실하고 진실한 태도가 이유이지 않나 싶습니다.

‘호기심 천국’

황수관은 매 순간 진실하고 또 성실하게 임했고 이 태도는 방송에서도 그를 널리 알리게 해줬습니다. 어느 날 황수관은 갑작스럽게 펑크를 낸 출연자 대신에 대타로 방송에 나갔었습니다. 밤늦게 방송을 탔음에도 그의 맛깔나는 언어 구사에 방송국에 그를 찾는 전화가 폭주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는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졌고 호기심 천국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배우 류시원과 박소현 등과 공동 사회를 맡기도 했습니다. 당시 류시원은 부드러운 목소리와 이미지 잘생긴 외모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배우였고 박소연 역시 똑 부러지는 MC로 활발히 활동하던 중이라 그 두 사람과 프로그램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 천국은 황수관의 덕도 톡톡히 봤습니다. 단순히 연예인들만 출연하는 프로그램이었다면 그 정도의 인기를 구가하지 못했겠지만, 황수관의 출연으로 호기심 천국은 신뢰도를 얻었고 무려 4년이나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너무나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또한 황수관은 방송 활동과 동시에 부지런히 글을 써서 ‘황수관 박사의 웰빙 건강법’, ‘웰컴 신바람 인생’을 비롯한 20여 권의 책을 발간했습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의 인기에 힘입어 전국의 집회와 강연을 나가면 ‘별을 보고 나갔다가 별을 보고 돌아오는 강행군’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황수관 박사는 유명해졌음에도 어려웠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직책을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하루 평균 2~3개의 강의를 소화해냈고 너무나도 바쁜 일정 탓에 과로로 고통을 얻기도 했습니다.

거기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불우 이웃들에 대한 기부와 봉사도 쉬지 않았습니다. 태안반도 기름때 제거, 백령도 주민 위로 강연, 오지 주택 보수까지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짬을 내어 봉사에 나섰다고 합니다.

향년 67세 황수관 별세

그렇게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던 그의 별세 소식을 들려주며 대한민국의 큰 슬픔을 안겨줬습니다. 강의마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며 정신적인 건강과 몸의 건강을 항상 설파하고 다녔던 그였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것 없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황수관은 평소 일 중독이라고 할 만큼 바쁜 생활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의 건강을 걱정해 만류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하면서 빠듯한 일정을 매일같이 소화해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일 바쁘게 살았기에 피로가 누적되어 과로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2012년 12월 11일 황수관은 경기도 군포시 자택에서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를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간농양 진단받았고 수술까지 단행했습니다. 당연히 회복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는 병이 악화하여 합병증인 급성 패혈증과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향년 67세의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떠나면서 장기는 어려운 환우들에게…

갑작스러운 그의 별세 소식에 유족들은 그 충격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의 동생 황 씨는 “일주일 전에 통화를 했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시게 돼 경황이 없다. 본인이 몸 상태를 잘 알고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익히 알려졌듯 건강박사로 유명했는데 회복을 하지 못하고 떠날 줄 몰랐다.”라며 황망해 했습니다.

그의 비서도 “최근까지도 매일 2~3차례 전국을 돌며 강연하시는 등 과로가 있었지만, 평소에도 건강하셨고 불과 쓰러지기 전날도 강연하셨다.”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의 별세 소식은 그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줬습니다. 생전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게 살았던 황수관은 바쁜 와중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과 봉사를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떠나면서까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장기는 소외되고 어려운 환우들에게, 시신은 의료계 후배들을 위해 기증했다고 합니다. 떠나는 길마저 아름다운 그이기에 그 빈자리가 더 슬프게 느껴집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건강의 중요함을 설파하고 다녔던 사람이 정작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과로하지 마시고 편안함을 얻으시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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