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가수 식도암으로 결국 “마지막 통화 내용에 모두가 오열…” 그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가수 최헌의 노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불리고 있습니다. 향년 64세의 조금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가수 최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쎄쎄쎄’ 가수 유방암 투병중 결국 “7살 딸과의 마지막 약속에 모두가 오열…” 그녀의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그의 과거

1948년 3월12일생으로 고향은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습니다. 최헌은 1967년 명지대 경영학과 재학 중 밴드 ‘차밍가이스’를 결성, 기타와 보컬을 맡으며 대중음악계에 데뷔했습니다. 최헌의 집안은 원래 부유한 편이었으나, 최헌의 밴드 활동을 집안에서 반대하게 됩니다. 이후 1981년 아내 배영혜 씨와 결혼에 골인하여 슬하의 아들과 딸을 두고 있습니다.

가수 활동

이후 1971년 걸출한 뮤지션 김홍탁이 이끌던 그룹 ‘히식스’의 보컬 겸 기타로 합류합니다. 이들은 ‘초원의 빛’, ‘초원의 사랑’ 등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최헌은 1974년 그룹 ‘검은나비’를 결성해 ‘당신은 몰라’, 1983년 그룹 ‘불나비’를 결성해 번안가요 ‘카사블랑카’를 선보이며 주목받았습니다.

그의 인기가 특히 절정에 달한 건 두 그룹 활동기 사이 펼친 솔로 활동 때입니다. 허스키한 음색을 한껏 살린 ‘오동잎’, ‘가을비 우산 속’, ‘세월’, ‘앵두’, ‘어찌합니까’, ‘구름 나그네’ 등을 히트시키며 당대 톱가수로 우뚝 서게 됩니다. 준수한 외모로 소녀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1977년 TBC 방송가요 대상을 시작으로 KBS·MBC 10대 가수상 등 당시 방송 3사 연말 대상을 1981년까지 연속해 휩쓸었습니다.

‘가을비 우산 속’에 영감을 받아 1979년 만들어진 동명 영화는 당대 스타 배우였던 신성일·정윤희·문정숙·김자옥 등이 출연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최헌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돈아돈아’, ‘이별 뒤에 남겨진 나’, ‘울다 웃는 인생’ 등을 발표하며 활발히 활동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식도암 판정

최헌은 2011년 4월 식도암 발병 사실을 알게 되고 이후 1년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최헌은 당시 단순한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았다고 합니다. 단순히 감기가 오래간다고 생각했던 그는 식도암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식도암은 흡연과 음주를 동시에 즐기는 사람에게서 많이 발생하는 병입니다.

최헌은 생전 유명한 애주가로, 훗날 가수 박일준이 언급하기를 두 사람이 술잔을 기울일 때는 소주 총 80병을 마시기도 했다라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유명한 애연가였습니다. 최헌은 평소 하루 평균 두 갑 정도의 담배를 태웠다고 합니다. 그렇게 음주와 흡연을 동시에 즐겼던 탓에 최헌이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식도암 4기로 빠르게 치료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2000년대가 넘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보이던 최헌은 식도암 4기 판정받은 후 활동을 줄이고 치료에 전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담배와 술은 좋아했지만, 평소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도암 4기 판정을 받았고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투병 생활을 했지만 결국 2012년 9월 10일 향년 64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절친 가수 김정수와의 마지막 통화 내용

그가 떠난 이후 절친했던 가수 김정수는 한 방송에서 고인이 된 최헌의 묘를 찾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김정수는 나만 살아난 게, 걔한테 죄지은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좀 이상하다. 생각이 많이 나는 친구라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정수와 최헌은 미8군에서 음악 활동을 하며 만났다고 합니다.

서로의 음악적 재능에 매료된 두 사람은 매일 만나다시피 하며 우정을 쌓아왔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음악 얘기도 많이 하고 술을 마시면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최헌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나눴던 이야기를 고백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 밤늦게 김정수에게 전화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정수는 “돌아가기 일주일 전 쯤 밤늦게 전화가 왔다. 너는 어떠냐길래 항암받으면서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울면서 ‘나는 포기할까 봐’라고 했다. 그런 소리 하지말라고 하니까 전화를 그냥 끊더라. 그리고 일주일 후에 돌아갔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끝으로 “나도 언젠가는 자네 곁으로 가겠지만 자네가 못다 부른 노래 내가 마저 부르고 그때 좋은데서 만나세”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사람은 모두 암 투병 중으로 투병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렇게 마음 아픈 통화를 한 후 일주일 만에 최헌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를 회상하며 김정수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최헌이 떠난 후 슬퍼하는 것은 김정수만이 아니었습니다.

주변 사람의 애도

한 대중음악 평론가는 최헌은 윤수일, 조병수, 최병걸 등과 함께 1970년대 그룹 사운드 멤버들이 솔로로 대거 찬양하던 시기를 대표하는 가수라며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국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칭송했습니다.

후배 가수 박완규도 “대한민국 가요를 사랑하셨던 분이고 음악을 사랑하셨던 분이 최헌 선생님이셨어요. 큰 별이 졌습니다. 그것만 알아주세요.”라며 슬픔에 잠겨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최헌은 발병 2년 전에도 울다 웃는 인생을 발표하며 끊임없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이던 가수였습니다.

그가 떠난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며 많은 동료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부디 지금 계시는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편안하기만을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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