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금복 급성 백혈병으로 결국 “남겨진 통장에 남편 유승안 오열” 어떤 상황인지 지금 확인해 보세요

최불암은 지난 한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출연했던 작품 중 수사반장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수사반장에 처음 출연했을 때는 30대였지만 작품이 끝났을 때는 50대가 되었다.”라며 오랫동안 함께 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당시, 함께했던 많은 동료가 세상을 떠났다라며 눈시울도 붉혔습니다.

당시 최불암과 함께 수사반장에 출연했던 주요 출연진들은 이미 작고하고 최불암만이 우리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후 연이은 부고 소식에 당시 홍일점 여순경 역할을 했던 이금복의 별세 소식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금복은 인기 여배우로 활동 중 야구 선수 유승안과 결혼하며 연예계를 떠났습니다. 그 이후 한참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가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전해졌습니다. 배우 생활을 접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만 힘을 기울이던 그녀는 병상에서 끝내 의식을 찾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두고 떠나야만 했던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오늘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큰 슬픔을 안겨준 이금복과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던 유승안의 삶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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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활동

금복아, 나는 꼭 너를 살린다. SNS에 일기를 쓰며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의 쾌유를 간절히 기원했던 유승안은 지극정성 간호에도 아내 이금복은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금복의 사인은 급성 백혈병이었습니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한 지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며 큰 슬픔을 안겼습니다. 이금복은 55년생으로 수사반장에서 미모의 여형사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여배우입니다.

이금복은 시청률이 70%가 넘는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1980년 MBC 농촌드라마 전원일기, 1981년 MBC 정치드라마 제1공화국, 1984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 1986년 MBC 일요아침드라마 한지붕 세가족 등 다양한 드라마에 출연하며 각종 광고와 방송에 얼굴을 비추며 연예인으로서 전성기를 구가했습니다.

이금복&유승안, 두사람의 만남

그러던 중 84년 유승안과 결혼하며 돌연 은퇴했습니다. 이금복과 유승안은 어릴 적부터 알던 소꿉친구 사이였습니다. 유승안의 회고를 따르면 어린 시절 두 사람은 같은 성당을 다녔고 그때부터 유승안은 이금복을 마음에 품었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예쁜 외모의 이금복을 보고 유승안은 첫눈에 반했습니다.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접근하기 쉽지 않았고 결국 그녀를 향한 마음은 짝사랑으로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유승안은 훗날 이금복과 운명 같은 재회를 합니다. 그는 프로야구 선수가 된 후 MBC 청룡 창단 멤버로 방송국에 자주 드나들다가 어릴 적 그토록 좋아했던 이금복과 주차장에서 우연히 마주쳤습니다. 이금복은 그날 드라마를 끝내고 종방 축하 파티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유승안은 개그맨 고영수와 함께 드라마 종방 축하 파티 자리에 합류했고 그때부터 이금복과 연이 닿아 사랑을 싹틔웠습니다.

“개그맨 고영수 형은 자연스럽게 우리 둘의 관계를 이끌어줬고 술잔 앞에 두고 한 잔도 못 하는 금복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부터 가까워진 우리 둘은 서로 나이가 찬 관계로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습니다.” 유승안은 이금복과 꿈에 그리던 재회이고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습니다.

근검절약

그렇게 사랑을 키우다 84년에는 결혼식을 올리며 새로운 출발을 알렸습니다. 유승안의 말에 의하면 이금복은 손꼽힐 정도로 야무지게 살림을 잘하는 검소한 여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슬하의 아들 둘이 있습니다.

이금복은 평소 지극히 검소한 생활로 아들들에게 제대로 된 속옷 한 번도 안 사줬습니다. 주변에서 입던 옷을 물려 입는 것은 물론이며 물려받은 옷조차 해어지면 꿰매고 기어 입히는 등 어디에서도 그녀는 근검 절약 정신을 발휘했습니다. 그 때문에 유승안이 “너무 절약하지 말고 좀 써라.”라며 몇 번 화를 낸 적도 있었으나 이금복은 꿋꿋하게 아끼고 또 아꼈다고 합니다.

화끈한 선물

하지만 이금복이 모든 일에서 절약 정신을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그녀는 쓸 때는 또 쓰는 호탕한 성격을 가졌습니다. 유승안이 프로 선수 생활을 은퇴한 후 오랫동안 휴식기를 가질 때 그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집에 돌아와 보니 집 앞에 ‘고급 승용차’가 떡 버티고 있었어요. ‘누구 차냐?’라고 물었더니 내 차라고 하더군요.” 놀고 있을 때 기죽지 말라고 이금복은 아낄 때는 한없이 아끼지만 쓸 시기는 제대로 알고 화끈하게 쓰며 남편의 길을 살려줬습니다.

현명한 그녀

가계가 기울었을 때도 이금복의 현명한 처사 덕분에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인 유승안은 철없던 지난날 가장으로서 옳지 못한 행동을 저지른 적 있습니다. 유승안은 20년간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 돈을 착실하게 모았더라면 살림살이가 매우 여유로웠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그가 번 돈 대부분을 허투루 쓰며 가세를 기울게 했습니다. 유승안은 언제부터인가 노름에 손을 대며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두 번이나 빚보증을 서며 1억이 넘는 큰돈을 날렸습니다. 지금도 1억이라는 금액은 매우 크지만, 당시에는 정말 말도 못 하게 큰 금액이었습니다.

남편의 이런 행동에도 이금복은 큰 나무라 없이 슬기롭게 극복하며 가정을 꾸려나갔습니다. 혹독한 시련에도 알뜰살뜰 가정을 잘 돌봤던 이금복의 고군분투에 가족들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백혈병 진단과 남편의 뒷바라지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금복은 체력이 떨어짐과 동시에 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 남편에게 너무 피곤하다라며 힘듦을 토로했지만 별거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가볍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이금복은 병원을 찾았고 결국 백혈병 진단받고 입원했습니다. 유승안은 경기가 끝나는 대로 상경해 아내가 입원한 병원을 찾아 그녀의 곁을 지켰습니다.

자신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뒤로 하고 가정을 꾸리던 아내가 그의 눈에는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야간 경기가 있을 때는 경기 끝난 후, 늦은 밤에 아내를 찾아가 밤새 곁을 지키고 동이 트기 전에 떠나는 생활을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남편의 지극정성은 물론 감사하게도 이금복의 쾌유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도 내밀었습니다.

당시 유승안이 코치로 재직하던 한화팀 직원들은 이금복이 혈소판이 모자라 곤란한 상태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헌혈까지 해가며 그녀를 도왔습니다. 또한 암 한방병원 광혜원에서는 무료로 약을 공급했으며, 한화그룹 회장 또한 유승안에게 위로금을 건네는 등 많은 이들의 그녀가 병상에서 일어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안타까운 비보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금복의 병세는 심각해졌습니다. 남편과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한평생 몸을 바쳤던 아내의 건강은 이미 약해졌습니다. 유승안은 “가진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아내가 살아 있어 줬으면 좋겠어요.”라며 아내를 붙잡았습니다.

모든 이들이 손을 모아 그녀의 회복을 기원했지만, 그녀는 합병증을 얻어 폐까지 균이 퍼져 항암제는 물론 모든 치료를 중단했습니다. 그리고 향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이금복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품을 보며 오열하게 된 이유

그녀가 떠난 후 유승안 유품을 정리하다 한 번 더 오열했습니다. 보험, 연금, 신탁에 남편은 물론이고, 아이들 몫까지 꼼꼼하게 정리된 통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생전 자신을 위한 옷 한 벌은 안 사 입었으면서 그렇게 아끼고 아껴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 돈을 모았던 것입니다. 이 통장을 발견한 유승안은 한참 동안 흐르는 눈물을 거둘 수 없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쾌유를 바라고 남편 유승안도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돌봤지만, 이금복은 결국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들을 두고 가야만 하는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유승안은 “원상이와 민상이 두 아들을 잘 키워 집사람이 하늘에서 우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 바람대로 두 아들은 각각 프로야구 팀에 입단해 흐뭇함을 자아냈습니다. 생전 고인의 바람처럼 세 사람은 각자의 길에서 야구 발전에 힘쓰고 있습니다. 평생을 남편과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하며 살아왔던 사람이기에 세상을 떠나고서도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컸을 텐데, 부디 그곳에는 어떤 아픔과 걱정이 없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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