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라면’ 가수 급성간암으로 결국 “남진이 장례식장에서 오열한 충격 이유”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남진 선배님이 초등학교 2년 선배님이세요. 같이 자라다시피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목포 방송국에서 전속 가수를 뽑는 콩쿠르에 출전했다가 1등을 했어요. 그 덕분에 서울 동아방송국에서 개최한 제1회 가요 경연대회에도 나가게 되었고요. 그 콩쿠르에서 특등을 했어요. 그리고 가수의 꿈을 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바로 서울로 올라가서 음반을 취입했어요.”

원로 가수 조미미는 가요 콩쿠르에서 입상을 계기로 가수의 꿈을 꾸었고 데뷔까지 이뤘다고 합니다. 또한 그녀는 직접 밝힌 것처럼 남진과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창 활동하는 동안 남진과의 열애설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60년대를 대표하던 조미미는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2012년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그렇게 활동하던 중 돌연 별세의 소식을 알려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무대를 떠난 지 한 달 만에 그녀는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요? 오늘은 조미미의 인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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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이미자

1947년 영광에서 태어난 조미미는 1965년 동아방송이 주최한 가요백일장에 참가해 19살의 나이로 김부자, 김세레나와 함께 최종 선발되어 떠나온 목포항으로 데뷔했습니다. 그 후 조미미는 바다가 육지라면. 서산 갯마을, 먼 데서 오신 손님 , 서귀포를 아시나요 등의 노래로 60~70년대 가요계를 이끌 만큼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1960년대 중반, 대중가요에는 남진, 나훈아, 이미자, 조미미 씨 등 4명의 가수가 주도했다. 특히 조미미 씨는 후덕한 외모와 맑은 목소리 등으로 이미자를 뒤잇는 인기 여가수로 각광받았다. 노래를 특히 잘했고 남진 씨와 함께 호남 지역을 대표하던 스타였다.”라고 말했습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의 말처럼, 조미미는 데뷔 때부터 유독 이미자와 함께 거론되며 제2의 이미자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 사람은 노래를 부르는 창법도 닮아 있었고 애수 어린 정조를 아름다운 음색으로 담아낸다는 데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남진과의 염문설

그리고 조미미의 노래는 그녀가 어릴 적 바닷가 근처에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유독 바다와 관련된 노래가 많았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는 경상북도에 있는 나정항을 배경으로 작사한 노래로, 육지를 그리워하는 도서 지역 주민의 애환을 담은 노래라며 크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녀는 그 노래로 남진과 염문설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바다가 육지라면을 발표했을 당시, 남진은 바다 건너 베트남의 파월 장병으로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1965년 6월부터 1971년까지 83차례에 걸쳐 모두 1,160명이 파월되던 상황이었는데, 당시 조미미가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를 때 바다 건너가 있는 남진을 그리워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곡이라는 의혹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당시 총 2922회의 위문 공연이 이루어졌는데 그 공연단에 조미미가 포함된 사실만으로도 남진을 위로하러 갔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목을 끌었습니다. 남진이 전역하고 귀국할 시기에는 조미미의 ‘먼데서 오신 손님이’라는 곡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노래 가사도 오랜만에 만난 님을 반가워하는 내용입니다.

공교롭게도 남진의 귀국 시기와 조미미가 발표한 곡의 제목이 겹치면서 두 사람의 열애설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먼 데서 오신 손님’ 두 곡 때문에 남진과 조미미는 오랫동안 열애설에 시달려야 했었습니다. 두 사람의 열애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결혼 이후 성공적인 복귀

조미미는 1973년 그 당시 만나던 재일교포 안성기와 결혼하면서 가수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조미미는 가수로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일보다는 가정에 집중한다는 뜻을 밝히며 잠시 활동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일본 사업가와 결혼하였기에 일본으로 넘어가 딸 둘을 출산하며 잠시 공백기를 갖기도 했습니다.

한때 톱스타에서도 모종의 이유를 갖고 활동 공백기를 갖게 되면 복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복귀 방송을 잡기도 어렵거니와, 힘들게 방송 출연을 한다고 해도 대중들의 반응이 예전 같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큰 포부를 갖고 복귀했지만, 예전과 같지 않은 분위기의 차이로 또는 타의로 다시 잊혀가는 스타들이 많습니다. 조미미는 60년대부터 너무나 탄탄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귀에 손쉽게 성공하게 됩니다.

복귀에 성공한 조미미는 80년대에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했습니다. 1979년에는 나훈아와 함께 히트송 메들리 앨범도 냈었고 86년에는 이산가족을 소재로 한 `임진각에서’를 발표하며 큰 사랑을 얻기도 했습니다.

남편의 죽음

그렇게 조미미는 일본에 있는 집과 한국에 있는 무대를 오가며 활동을 하다가 2000년 활동을 돌연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소천한 다음에는 모든 게 허무해졌어요. 그냥 눈물만 나오고 노래도 하기 싫었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조미미는 한참이나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최고 가수의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노래보다는 사랑하는 가족을 택했던 그녀이기에 그 슬픔에서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합니다.

간암 선고

그러던 2010년 조미미는 완전히 한국에 귀국해 활동을 이어 나갔습니다. 가요 무대 등에 출연하며 전성기 때의 그 목소리로 많은 사람에게 노래를 들려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그녀는 팬들의 큰 반김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 나갈 것이라는 바람과는 달리 2012년 돌연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2012년 8월 6일 조미미는 체중감량 문제로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얻게 됩니다. 바로 간암 말기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운동도 좋아하고 건강에는 자신 있던 사람이었기에 암 선고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단순히 체중감량 문제만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의 병세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간암, 그것도 말기라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간의 악성 종양이 만들어지는 간암은 한국인에게 네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입니다. 간암은 특징적인 자각 증상이 없기 때문에 자가 진단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정기적인 검진을 하면서 간암을 잡아내야 한다고 합니다. 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간이식을 통해 90%의 생존율을 자랑하고 완치된 이후에도 오랜 시간 재발이 없는 사례가 많지만, 병세가 심각하면 다른 장기나 주변 조직으로 전이가 되기 때문에 심각함을 가져올 수 있는 병입니다.


2022년 2월 별세 소식을 알린 허참도 간암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것이었습니다. 주변에 피해가 갈까 봐, 투병 사실을 숨기다가 결국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에게 슬픔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배우 김정태, 개그맨 강현 등 많은 연예인이 간암을 앓았다고 알려졌습니다. 김정태처럼 수술 후 완치되는 예도 있지만, 강현처럼 하반신 마비 등 합병증을 앓는 경우도 적지 않고, 허참처럼 결국 세상을 등질 수도 있는 무서운 병입니다.

가요계 별이 지다

단순히 체중 때문에 병원을 찾았던 조미미는 자신이 간암 말기라는 사실을 접하고 바로 입원해 집중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아쉽게도 온몸으로 전이되는 암세포를 막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손 쓸 수가 없었고, 결국 조미미는 본인의 의지대로 퇴원 후 자택으로 돌아갔습니다.

귀가 후 3일 뒤인 2012년 9월 9일 향년 65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많은 동료의 애도가 이어졌었습니다. 가수 태진아는 “늘 조용했지만, 후배들에게 친절하게 잘 대해줬던 마음 따뜻한 선배였다. 불과 한 달 전에도 같이 무대에 올랐는데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만 흘렀다.”라며 고인을 추모했습니다.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가족들도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인은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건강 체질이라,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 줄 전혀 몰랐다.”라고 했습니다.고인은 하늘로 떠나기 전까지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언제나 밝게 웃으며 약한 모습 한 번 보이지 않은 강한 분이셨다고 전했습니다. 갑자기 떠났다는 소식에 모두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

훗날, 주현미가 한 방송에서 떠나간 조미미를 추억하며 그녀의 노래 ‘바다가 육지라면’을 부른 적이 있습니다. 주현미는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로 조미미를 꼽았습니다.

그녀의 화려한 복귀작이었던 ‘쌍쌍파티 앨범 메들리’는 조미미의 계약 불발로 주현미에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조미미는 주현미를 유독 예뻐했다고 합니다. 주현미도 여자 트로트 계보를 논할 때, 조미미를 빼놓을 수 없다고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가수로서도 많은 이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던 조미미는 엄마로서, 또 아내로서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생전 조미미는 한 인터뷰에서 인생의 성공이자, 가장 큰 보물은 가족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인기는 영원하지는 않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딸은 늘 함께라고 밝혔던 그녀의 말이 유난히 맴돕니다. 비록 두 딸은 세상에 남겨뒀지만 먼저 떠나보낸 남편과 하늘에서 다시 만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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