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 아들 림프암 투병 끝에 결국 “안타까운 소식 어쩌다 이런 일이” 그의 안타까운 상황을 확인해 보세요

1960~70년대 가요계를 풍미했으며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기억되고 있는 나훈아의 사생활도 세간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의 세 번째 부인 정수경 씨는 나훈아 씨보다 14세 연하이며, 15세 때 일본에서 아이돌 가수로 데뷔했으나 귀국해 음반 여군 일등병으로 국내에 얼굴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정수경 씨는 영동교회에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나훈아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으며, 딸을 한 명 더 출산했습니다. 이후 큰아들 최유민 군이 하와이의 한 중학교 입학시험에 수석 합격하면서 정수경 씨는 두 아이와 하와이로 건너갔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 나훈아 씨가 큰일을 당했다고 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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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나훈아의 고향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입니다. 그래서 이번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 부산 시청률은 38%에 달했습니다. 고향이 부산이기 때문에 평소 인터뷰 등을 보면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이벌이었던 남진의 고향이 전라남도 목포이기 때문에 전라도와 경상도의 대결 구도가 있었습니다.

남진은 전라도 사투리를, 나훈아는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나훈아의 데뷔곡은 1968년에 발표한 내 사랑이라는 노래입니다. 많은 분이 1966년의 천리길을 데뷔곡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1966년의 천리길의 실물 운반은 확인되지 않고 1969년 5월 29일에 발표된 것이 사실이라고 합니다.

첫번째 결혼

나훈아가 추석 연휴를 뜨겁게 달궜던 만큼 그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습니다. 일부 젊은 세대의 관심 덕분에 나훈아가 과거 “이혼하며 한 여자는 돈 없으면 못 살아”라는 말이 회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나훈아는 이혼하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지급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2020년 그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조금 더 알아봅니다. 일흔이 넘은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만 200장이 넘고 곡 수는 2,800여 곡에 달합니다. 이 중 800여 곡이 그의 자작곡입니다. 최근에는 테스형이라는 노래로 큰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테스형은 아버지를 철학자 소크라테스로 대체한 노래로 인생에 대한 물음을 담은 곡입니다. 나훈아는 3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습니다. 그의 첫 부인은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입니다. 73년 결혼했지만 불과 3년 만인 76년 이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두번째 결혼

이후 나훈아는 수개월 만에 여배우 김지미와 결혼 소식을 알려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김지미는 ‘한국의 엘리자베 스테일러’로 불리던 배우였습니다. 나훈아보다 7살 연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에 언론은 나훈아와 김지미가 이미 71년부터 연인 관계였다는 보도를 냅니다. 연애 중에 이숙희와 결혼했었던 것입니다.

정작 두 사람의 첫 만남이 72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스타의 밤’으로 밝혀져 오보로 밝혀졌습니다. 두 사람은 연예인으로서 뜻이 통해 지인으로 자주 만나왔다고 전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여론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나훈아는 두 번째, 김지민은 세 번째 결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나이 차이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은 결혼 6년 만에 파경을 맞이합니다. 기자회견에서 나훈아는 “심한 부부 싸움 이후 냉전이 계속되던 중 집사람이 이혼을 제의했다.”라며 이혼 소식을 전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1982년 이혼합니다. 나훈아가 “그 여자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겨 화제가 됐습니다.

세번째 결혼

나훈아 씨는 두번째 부인 김지미 씨와 이혼한 후, 당시 가수였던 정수경 씨와 동거하다 첫째 아들을 얻었고, 1983년 세 번째 결혼했습니다. 이는 시기적으로 나오나 씨가 두 번째 이혼하고 약 1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나훈아의 세 번째 부인인 정수경 씨는 결혼 당시 25살이었으며, 나훈아 씨와 나이 차이는 무려 14살이었습니다. 잠깐 가수 생활을 했던 것일 뿐,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정수경 씨는 처음엔 나훈아의 구애를 거절했었으나, 가수 활동을 몇 년만 더 하고 접겠다는 그의 약속과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결혼을 승낙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3년 결혼한 두 사람은 결혼 초반,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슬하의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아들은 1983년생이며, 딸은 1988년생인데, 결혼 10년째가 되던 1993년에는 자녀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고자 나훈아와 합의하에 하와이로 이민을 갔다고 합니다. 하와이로 거처를 옮긴 후에도 한국에서 활동 중이었던 나훈아는 1년에 10번도 넘게 하와이를 방문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들의 림프암

나훈아는 2007년, 돌연 여러 루머와 오랜 가수 생활로 힘들다며 해외여행을 갔다 온다는 말을 끝으로, 나훈아와 하와이의 가족들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그 후 1년 후인 2008년, TV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나훈아를 본 정수경 씨는 “그와 연락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고, 그 이후 2년을 더 기다리다가 미국에서 이혼을 신청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훈아는 아들이 암 투병 중이라는 정수경 씨의 말을 듣고도, 혹시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 믿을 수 없다라는 차가운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나훈아의 아들 최유민 씨가 림프암에 걸려 투병 중인 사실이 뒤늦게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림프종은 최근 의학 기술의 발달로 장기 생존율이 높아지고 있으나, 여전히 재발률이 높은 난치병 중에 나훈아의 아내 정수경 씨는 “아들이 암에 걸린 사실이 발견돼 수술받았다.”라며, “장기간 항암 치료받았고, 현재는 안정 단계에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정수경 씨는 아들의 상태가 위중한 상태인지를 묻는 말에,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는 없다.”라며, “처음엔 무척 놀랐는데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고 지금은 머리털도 다시 자란 상태.”라고 덧붙였는데 정수경 씨는 “현재 자신은 변변한 수입원이 없지만, 다행히 아들이 건실한 직장에 다니고 있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아 병원비를 충당하고 있다면서 금전적으로 절박한 상황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병원비가 천문학적으로 들지 않겠느냐?라는 질문에 “그건 그렇다.”라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혼 소송

2012년 정수경은 나훈아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을 냅니다. 정수경 씨가 미국에서 이혼을 신청하자 이 사건은 애초 국내에 이렇게 알려졌습니다. 정수경이 딸의 결혼 후 소송을 결심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이런 비판 여론이 비등해졌습니다.

정수경이 미국에서 편안하게 생활한 것이 누구 덕이냐? 딸을 키우고 결혼까지 시킨 것은 나훈아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미국으로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악플이 생기면서 이혼을 감행하려는 정수경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았습니다.

이 이혼은 결과적으로 나훈아의 승소로 끝났습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결과 사법부는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나훈아가 부부의 정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부정한 행위를 했다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동거 의무, 부양 의무, 협조 의무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원고 정수경 씨가 낸 상고를 기각하고 상고 비용은 원고 정수경이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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