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에 유서 쓰고 월남전 위문 간 가수 “스토커 남성에 피습 당해 결국…”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많이들 사용하는 금수저라는 말의 뜻은 부여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을 누리는 자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요즘은 더 나아가 재능 금수저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는 부모에게 돈이 아니라 재능을 물려받았다는 뜻으로 부모의 재능을 고스란히 갖고 태어나 그를 발휘하는 이들에게 붙여지는 말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정훈희는 유명한 재능 금수저로 음악가 집안에 태어나 가수로 그 재능을 뽐냈습니다. 데뷔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고 세계적인 가요제에서도 상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재능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불법 약초 파동에 연루되며 방송출연 정지와 피습까지 당하며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무슨 이유인지, 오늘은 가수 정훈희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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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조와의 인연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일명 재능 금수저입니다. 정훈희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67년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를 따라 나이트클럽 연습실에 갔다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이봉조를 만났습니다.

당시 정훈희는 작은아버지가 연습 삼아 치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몇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클럽 옆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던 이봉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음색에 이끌려 클럽을 찾았고, 정훈희가 부르는 재즈풍의 발라드에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때 당시 이봉조는 안개라는 곡을 만들어 놓고 자기 색소폰 연주로 녹음한 상태였습니다.

그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찾던 중에 정훈희의 노래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봉조는 안개의 LP를 정훈희에게 건네며 “집에 가서 멜로디를 외워 와라.”라고 했습니다. 2~3주 뒤 정훈희는 처음 찾은 스튜디오에서 신성일, 윤정희 주연 영화 ‘안개’의 주제곡을 녹음하며 이봉조와 연을 맺었습니다.

전성시대

정훈희는 이봉조의 노래로 데뷔하자마자 무명 생활 없이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 시절 녹음은 릴테이프를 이용한 녹음으로 복사가 되지 않기에 방송 3사에서는 정훈희 테이프 쟁탈전이 벌어졌습니다.

정훈희는 피디들이 빨리 녹음하라라며 아우성치차, 며칠만에 다른 노래를 10곡 더 녹음해 “재킷 사진도 못 찢고 첫 음반을 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급하게 찍은 음반임에도 그녀의 첫 음반은 40만 장이 팔렸고 단번에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음색이 좋아 노래도 잘 표현해냈고 가수로서 운도 좋았던 정훈희는 70년대 도쿄 국제가요제, 아테네 국제가요제, 칠레 국제가요제 등 국제가요제에서만 6번이나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웨덴 그룹 아바가 데뷔 초 참여해 빈손으로 돌아간 제1회 도쿄 국제가요제에서는 베스트10과 가수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리고 75년에는 칠레 가요제에서 무인도라는 곡으로 3위 상과 최고가 수상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피습사건

1975년 7월 정훈희는 그녀를 짝사랑했던 한 남자에 의해 습격을 당했습니다. 정훈희는 당시 미아동에 있는 신미 극장 분장실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던진 시멘트 조각에 얼굴을 심하게 다쳐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정훈희에게 시멘트 조각을 던진 사람은 평소 그녀를 짝사랑했던 현모 씨였습니다. 정훈희의 열성 팬이었던 그는 정훈희를 보기 위해 상경했고 공연 포스터를 본 뒤 현장을 찾아가 자신을 만나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앞둔 정훈희는 준비에 한창이라 만남이 성사될 수 없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은 데에 화가 난 현모 씨는 분장실까지 찾아가 정훈희를 공격했습니다. 그 때문에 정훈희는 얼굴이 다친 것은 물론 심적으로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사랑이 그녀에게는 큰 트라우마로 남으며 75년을 지옥 같은 해로 기억하게 해줬습니다.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으로 방송 출연도 못하는 상황에 팬에 의한 피습까지 당하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1975년 천국과 지옥

1975년은 그녀에게 가장 인상 깊은 해로 훗날 밝히기를 “천국과 지옥을 오간 해였다”라고 합니다. 천국은 칠레 가요제에서 2가지 상을 동시 수상했던 것이고, 지옥은 피지도 않은 불법 약초를 피웠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던 것입니다. 75년 연예계에는 대대적인 불법 약초 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많은 연예인이 아무런 반항도 못 한 채 잡혀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정훈희 역시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정훈희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오랜 애연가로 그냥 담배를 피웠던 것인데 명백한 증거도 없이 불법 약초를 피운 혐의가 씌워졌습니다. 게다가 지금처럼 모발 검사 같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시기라 의혹만으로 혐의가 제기되었습니다.

정훈희는 의혹받아 구속되었지만 오해가 풀리며 이내 훈방 조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훈방 조치를 받았음에도 방송은 출연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6년간이나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해 당시를 고백하길…

가수 정훈희가 어린 나이에 위문 공연을 위해 베트남 전쟁 현장에 방문했던 경험을 전했습니다. 지난 30일 오후 방송된 tvN STORY 예능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에서는 가수 전인권, 정훈희가 함께했습니다. 지난주 김수미, 김혜정, 조하나가 록의 전설 전인권과 만난 가운데, 이날 김용건, 박은수, 이계인, 임호가 원조 한류 스타 ‘정훈희’와 나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1967년 16세에 ‘안개’로 혜성처럼 등장한 정훈희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데뷔 시절부터 영화 ‘헤어질 결심’ OST로 ‘안개’가 삽입되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현재까지를 회고했습니다.

가수 정훈희는 과거 증거도 없이 대마초 흡연 누명을 쓰고 활동을 중단했었다고 밝혔습니다. 정훈희는 “활동 중단 후 노래를 못하고 있을 때 가족들이 저보고 미국 이민 가자고 그랬는데 저는 안 간다고 그랬다. 나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노래하고 싶다. 그러니까 나는 안 간다라고 했다.”라며 “안 그러고 포기하고 갔으면 지금의 안개, 꽃밭에서는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당대 최고 인기 가수였던 정훈희는 유서를 쓰고 3번이나 베트남 전쟁 위문 공연을 간 일화도 밝혔습니다. 정훈희는 “지금 같으면 무서워서 못 나간다. 이런 데서 노래하고 있으면 저 멀리 포탄이 터지고 그랬다”라고 했고, 배우 김수미는 “부모님이 못 가게 하지 않았냐?”라고 물었습니다. 정훈희는 “오빠들 다섯 명이 입대했다. 내가 일곱째 중 여섯째”라며 “당연히 군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쟁터에 간 오빠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갔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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