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원숙 전남편들로 인해 전 재산을 날리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결국…” 그녀의 기구한 인생사에 대하 확인해 보세요.

탤런트 박원숙의 인생은 정말 기구합니다. 한 남자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세 번째 결혼마저도 고소로 끝나고 말았고 하나뿐인 아들 역시 비명에 가고 말았습니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도 없습니다. 박원숙은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언제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박원숙
👉“박원숙의 같이삽시다에 합류한 안문숙이 여태 결혼 못한 충격적인 이유” 어떤 이유인지 바로 확인해 보세요.

그녀의 연기 활동

탤런트 겸 영화배우 박원숙은 1949년 1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1970년부터 드라마 ‘화려한 계절’, ‘수사반장’ 등에서 단역으로 출연했고 ‘한 지붕 세 가족’에서 순돌이 엄마 역을 하며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미모의 여주인공보다는 엄마 역이나, 억척 아줌마의 연기력으로 시청자들에게 크게 호감을 얻었던 인물입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드라마 ‘겨울세’와 ‘백년의 유산’ 등에서 연기의 완숙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못된 시어머니 역으로 나왔기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그만큼 박원숙의 연기력이 훌륭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

이렇게 화려한 연기 인생을 보낸 박원숙이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습니다. 1998년 박원숙이 쓴 책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에도 잘 나와 있듯이, 박원숙은 한 남자와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세 번째 남편과도 결국 이혼으로 끝나게 됩니다. 먼저 첫 남편 서모 씨는 박원숙이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첫 남자였습니다.

당시 중앙대학교에 다니던 박원숙은 남편과 대학 살롱 드라마 모임체인 ymca 에서 처음 만나게 됩니다. 전 남편은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이었고, 이 동아리에서 연출을 공부하는 중이었으며 나이는 박원숙보다 2살 연상이었습니다. 그러다 첫 만남 이후에 2~3개월쯤 우연히 통행금지에 걸려서 박원숙은 신랑 될 사람과 함께 여관에 묵게 됩니다. 여기서 첫 관계를 하고 이것이 임신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임신을 한 박원숙는 대학을 중퇴해야만 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요새는 미혼모도 있는데, 그땐 임신을 하고 그랬으니 삶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처녀가 임신을 했으니까 그래서 산으로 가서 살자는 생각도 했어요. 할머니가 저랑 뛰어내려 그만하자고 하더군요.” 확실히 1960년대 말이었으면 사회가 많이 보수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박원숙은 첫 남자였던 그 선배와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첫 만남부터 결혼식까지 불과 7개월 만이었습니다.

연기자 데뷔

하지만 대학을 중퇴한 이후에도 박원숙은 연기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임신 7개월의 만삭의 몸으로 MBC 탤런트 공채 1기 시험에 응시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데 연극하고 동아리 활동하다가 결혼하게 됐어요.

MBC 공채 탤런트 공고를 봤는데 20세 이상이라는 것만 있지, 혼인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열의를 가지고 시험 보러 갔죠.” 하지만 만삭에 박원숙에게 심사위원은 이런 핀잔만 줍니다. “집에 가서 애나 낳으라.” 결국 박원숙은 출산하게 되는데, 그다음 해 박원숙은 다시 MBC 공채 탤런트에 응시했고 당당하게 합격하게 됩니다.

그래도 당시에 미혼모도 탤런트 시험을 보고 합격할 수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혹은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뚫고 합격할 정도로 박원숙의 연기력이 대단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결혼과 이혼, 그리고 전남편의 빚

이렇게 박원숙은 연기 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은 공군 장교로 군대를 제대한 후에 개인 사업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액세서리, 운동복 제조, 실내장식용품 등 하는 사업마다 실패하면서 박원숙이 버는 돈을 탕진합니다. 결국 말리다가 지친 박원숙은 남편과 함께 1981년 합의 이혼하게 됩니다.

그렇게 3년 동안 박원숙은 홀로 생활하는데 동료 탤런트 L씨가 혼자 사는 박원숙을 쉽게 보고 일방적으로 대시합니다. 결국 고민하던 박원숙은 전남편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3년 만에 다시 재결합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남편에게는 이미 다른 여자가 있었습니다. 박원숙과 결혼 생활을 하다가 바람이 난 것이 아니라, 이혼 당시에 생겼던 여자이고, 어쨌든 또 다른 여자가 있으면서 재혼을 합의한 전 남편에게 아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또 다른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원숙은 재혼한 지 불과 6개월 만에 다시 이혼을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아들 역시 자신의 손으로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계모 밑에서는 키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들과 함께 살던 박원숙은 1989년 아르헨티나 교포 사업가 김모 씨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런데 이번 남편 역시 사업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1993년 12월 당시 남편 김 씨의 사업체가 부도를 내서 20여 년 동안 연애활동을 하면서 모은 나의 전 재산을 날렸고 지금까지 드라마 출연료를 압류당하고 있습니다.”

결국 박원숙은 전 남편의 빚을 대신 물어주기 위하여 큰 빚을 지고 말았죠.” 1995년 세 번째 이혼하게 되는데 이혼 후에도 남편의 사기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두 번의 결혼 모두 전남편들의 사업 실패로 인해 막대한 빚을 져, 채권자들이 방송국까지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난리를 부리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됩니다.

아들의 죽음

하지만 박원숙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 남편과 얻었던 박원숙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아들이 2003년 11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당시 아들은 TV 외주 제작사의 PD로 일해 왔는데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회사 밖으로 나왔다가 운전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사길에서 미끄러진 화물차에 치여 목숨을 잃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제가 아들 사망 원인을 아는 줄 알지만 사실 몰라요. 일부러 듣지 않고 있죠. 아들의 사망 당시, 의사가 다친 부위에 관해 이야기할 때도 귀를 막았어요. 지금까지 아들의 사고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아요.” 박원숙이 얼마나 아들의 사망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세 번의 결혼 실패 이후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왔던 박원숙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들은 이미 결혼했고 아내와 딸을 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내가 재혼하게 되면서 박원숙과 손녀와의 관계는 끊어지고 말게 됩니다.

“아직도 손녀에게 연락이 올까 봐, 전화번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며느리가 재혼하게 되면서 새로운 가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의 손녀와 이별했죠. 손녀가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 더 커서 할머니한테 전화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네요.” 며느리의 새 가정을 지켜주고자 하는 박원숙의 마음 씀씀이가 엿보입니다.

박원숙의 최근 근황

박원숙은 자신의 재혼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결혼 생활의 넌더리가 나요. 그래서 재혼이라는 게 싫었죠.” 박원숙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원숙의 전 남편들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사업가였고 자신의 사업을 실패했다는 점입니다. 박원숙이 임현식과 같은 탤런트와 만나서 결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동종 업계의 사람이라면 좀 더 박원숙을 잘 이해했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세상에 하나뿐인 손녀와도 연이 끊겼으나, 최근 손녀와 왕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 영상 바로가기

You may also like...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You cannot copy content of thi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