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10병 마시다가 향년 71세에 결국…” 안타까운 그의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술이 나쁜 것이 아니라 폭음이 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약간의 술은 괜찮으나 과하게 마시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술을 과하게 마시면 이성이 마비되어 후회할 행동을 하는 때도 있고, 더 과하면 그게 생명의 위태로움도 가져옵니다. 술을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는 타고난 주당 체질이던 조경환은 혼자 양주 7병을 마시고 입가심으로 맥주 30병을 더 마실 정도로 엄청난 주량을 자랑했습니다.

아내와 사별하고 딸을 출가시킨 후 헛헛함의 술에 더 의존하다가 결국 2012년 10월 간암으로 별세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대중음악의 상징 중 하나로 불리던 가수 김현식 씨, 역시도 밥 먹듯이 술을 마시다 90년 11월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원조 만능엔터테이너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상규 씨, 역시 잦은 음주 때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술 때문에 쓰러졌으면서도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술을 못 마실 몸 상태가 되니까 기이한 방법으로까지 알코올을 섭취했다고 합니다. 그런 그의 집착 때문에 그는 언어와 몸에 장애까지 얻게 되고 결국 세상까지 등졌습니다. 오늘은 술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 박상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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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활동

90년대 원조 만능엔터테이너로 맹활약한 박상규는 1963년 KBS 1기 전속가수로 먼저 데뷔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가수가 연예기획사 소속인데, 박상규가 활동했을 때는 방송국 전속 가수가 존재하였습니다. 박상규 역시 KBS 전속가수가 되며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66년 김상국, 장우와 함께 트리오 송아지 코멧츠의 음반을 발표했습니다. 거기서 인연이 된 장우와는 한국 최초 남성 듀엣인 코코 브라더스를 이뤄 함께 가수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69년엔 그룹 포다이나믹스에 소속되어 가수 활동을 했다가, 새 그룹을 거쳐 70년대에는 솔로로 분해 왕성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1974년 8월에는 3일간 열린 국내 최초 대형 한국 가요제에 참가했는데, 이 대회는 정수라 씨가 11살의 나이로 인기상을 받았던 대회로 유명합니다.


너무나도 쟁쟁한 경쟁자 때문에 박상규는 아쉽게도 입상하지 못하고 본선 진출로 끝나게 됩니다. 그는 쟁쟁한 경쟁자들에 밀려 비록 가요제에서는 입상하지 못했지만 이후 히트곡을 내며 톱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박상규는 75년 3월 박상규의 모든 것이라는 첫 앨범을 발매하며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입담이 좋고 재치있는 멘트를 잘하던 그는 앞면은 노래, 뒷면은 입담으로 채우는 과감한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빈바다를 타이틀로 한 이 앨범에서 조약돌이 큰 인기를 얻으며 가수로서의 행보가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조약돌, 웃으며 보네마, 둘이서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며 75년과 76년에는 2년 연속 MBC 10대 가수에도 선정됩니다. 81년까지 음반을 내고 활발한 가수 활동을 했지만 사실 많은 이들은 그를 가수보다는 MC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MC 대활약

그는 MBC 토요일 토요일 밤에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오랫동안 진행하며 재치 있는 입담을 뽐냈습니다. 그야말로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로 방송계에서 큰 활약을 보였습니다.

그는 토요일 토요일 밤에 뿐만 아니라, 일요 큰잔치, 12시 올스타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의 MC를 맡으며 국민 MC라는 소리까지 들었습니다. 토요일 토요일 밤에는 이덕화보다 먼저 MC를 맡으며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거기다 74년에는 영화 지구야 멈춰라의 주연까지 꿰찼었습니다. 배우, 가수, MC까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로 연예계를 주름잡았습니다. 2004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한 공로가 인정되어 제11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공로상까지 받을 정도였습니다.

3번의 뇌졸중

그렇게 종횡무진 활약하며 너무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서였을까요? 방송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늘 유쾌했지만 사실 그의 몸은 점점 병들어만 갔습니다. 박상규는 2000년 초반 고혈압으로 쓰러진 후 뇌졸중이 발병해 오랜 기간 투병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뇌졸중으로 처음 쓰러졌을 때부터 그의 건강이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의사조차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였고, 바로 국외 공연에 갈 정도였습니다. 가벼운 증세로 잠시만 병원 신세를 졌는데, 그 때문에 건강을 과시했던 박상규는 이후 예전처럼 과음을 일삼았고 결국 뇌졸중으로 3번이나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행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차 안에서 이유 없이 볼펜을 자꾸 떨어뜨렸다. 심상치 않아 보여 병원을 찾았더니 뇌졸중 판정을 하더라.” 그의 아내 한영애는 평소 같지 않은 남편의 모습에 심각함을 느껴 병원으로 향한 후 뇌졸중 진단을 받았을 때를 회고했습니다.

하루에 소주 10병

박상규가 뇌졸중으로 3번이나 쓰러졌던 이유는 그가 엄청난 애주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루에 소주를 10병씩 매일같이 마셨습니다. 그렇게 많이 마시는데도 주사나 숙취 없이 오히려 정신이 맑아졌기에 경각심 없이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뇌졸중이 3번이나 반복되면서 그는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은 물론 몸의 반쪽까지 못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방송 복귀에 의지를 갖추고 계속해서 재활에 매진했습니다.

의사가 그만하라고 만류할 정도인데도 꿋꿋이 재활에 매진해 보조기 없이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강력한 삶의 의지로 그는 완벽한 재활에 성공했습니다. 회복과 발병을 거듭하면서도 마이크를 놓지 않아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끊어지지 않는 술에 관한 관심은 결국 그를 회복 불가능한 몸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박상규는 동서들마저 똑같이 술을 좋아해서 거의 매일 집에서까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게다가 병세가 심각해 술을 못 마실 때도 술에 절여뒀던 콩을 집어먹을 정도로 알코올 의존증세가 심각했습니다. 오죽하면 후배 태진아가 “선배 부탁이 있는데 평생 술 많이 드셨으니 하늘나라에서는 드시지 마라. 하늘나라에서라도 건강하게 계시라.”라며 조사를 낭독할 정도였습니다. 박상규는 좋아하는 술이 원인이 되어 뇌졸중으로 3번 쓰러지고 회복하지 못해 결국 2013년 향년 71세의 별세 소식을 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비보는 많은 이들을 슬픔에 빠뜨렸습니다. 박상규의 빈소에는 민혜경, 송대관, 태진아, 이용식, 이상용 등 수많은 스타가 발길을 옮겼습니다.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난 박상규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냈습니다. 이용식은 “슬프다. 진짜 슬프다.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빨리 내 곁을 떠나서 정말 슬프다.”라고 말하며 오열했습니다.

김흥국은 “노래뿐 아니라 MC로서도 정말 너무나 많은 웃음을 주셨던 분이기 때문에 더 가슴이 아프고 개인적으로 참 존경했는데, 너무 빨리 떠나셔서 후배로서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고인과 40년 지기라는 김도향은 “굉장히 우리를 즐겁게 해주신 분이에요. 만나면 항상 유머가 가득해, 우리가 어떨 땐 언제 웃어야 하는지 생각할 정도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시던 분인데 너무 아쉽습니다.”라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인을 떠올리며 쉽게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바람대로 하늘에서는 고통 없이 평안히 영면에 들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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