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시 가수 네티즌 악플에 시달려 결국 “이후 악플러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그녀의 안타까운 인생사를 확인해 보세요

시대를 잘못 만나 일찍 삶을 마감한 안타까운 여가수이자 연기자였던 유니 섹시 콘셉트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온갖 악플에 시달렸고 진짜 그녀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대중들 유니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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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 가수 데뷔

유니는 1981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데뷔작은 1996년 드라마 “어른들은 몰라요”였는데요. 여기서 공주병에 걸린 중학생 혜미 역할을 맡았습니다. 도시적이고 예쁜 외모 때문에 당시 맡았던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졌는데 이 때문에 재수 없는 이미지로 굳혀졌고, 이후 맡았던 역할들 역시 모두 도도하고 새침떼기이거나 공주병 캐릭터였습니다.

이런 이미지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악플을 받았던 유니는 결국 연기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유니는 아역 시절부터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가 이후 허윤이라는 이름으로 본명을 개명했고 유니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훗날 유니는 한 방송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놨는데요. 미혼모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이혜련이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외할머니와 살게 됐고 외할머니의 성을 따라 허윤으로 이름을 개명했던 것이었습니다. 유니는 성인이 된 후 긴 공백기 끝에 댄스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1집 앨범 타이틀 곡이었던 “가”는 섹시 컨셉이었습니다.

네티즌들의 억측

유니는 강호동의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등 연애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섹시 컨셉은 싸보인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남성 출연자들에게도 외면 받았습니다. 세 보이는 이미지와는 반대로 유니는 조곤조곤 조용한 말투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가식적이다, 오바한다, 예쁜 척한다는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또한 MBC “이미지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도 상처를 받았습니다. MC 이경규가 딸 예림이가 절대로 이렇게 안 됐으면 싶은 연예인을 순위 매겨 뽑았는데 이때 유니가 1위로 선정됐습니다. 다시 유니의 무안하고 씁쓸한 표정이 카메라에 계속 잡혀 안타까울 정도였습니다.

이효리와 댄드 배틀

유니는 추석 특집 프로그램에 이효리와 댄스 배틀을 벌였습니다. 두 사람은 웃으면서 춤을 췄지만 이것이 또 유니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이효리와 유니의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고, 이 사진 때문에 또 선배한테 버릇없고 가식적이라며 말도 안 되는 악플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나이는 이효리가 두 살 많았지만, 유니가 아역 시절 연기자로 데뷔해 이효리가 선배가 아니었습니다. 또한 힘들어서 쉬는 모습이 담겼을 뿐인데, 네티즌들의 억측이 담기면서 유니는 가루가 되도록 또 까임을 당했습니다.

유니의 실제 성격

하지만 실제로 유니는 섹시 컨셉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항상 자신을 낮추면서 겸손하고 사려 깊으며 여리다고 전해졌습니다. 여러 방송국의 기자와 피디들이 훗날 유니에 대한 기사나 칼럼을 통해 유니의 실제 인성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유니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직접 댓글을 달거나 답장을 해주었는데 이 집 컴백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악플러들이 몰려와 인신 공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MBC 만원의 행복에 출연했고, 이때 엄마도 함께 출연했는데, 엄마는 시청자들에게 “실제로 여린 아이다 부디 오해 없이 예쁜 모습으로 지켜봐 달라”라고 당부했고, 유니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하지만 악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안타까운 선택

2007년 1월 2일 일 유니는 정규 3집 컴백을 하루 앞두고 인천의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원인은 악플로 인한 우울증, 그리고 금전적인 압박인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실제로 유니는 미혼모 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이후 외할머니와 살면서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 이후 공백기가 있었는데, 이때는 사실상 돈을 아예 벌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방송에 나오지 못한 이유는 나올 때마다 심각한 수준의 악플이 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천의 한 병원에 위치한 장례식장에는 조문하는 사람도 별로 없어 쓸쓸하게 치러졌습니다.

사망 후 또 다른 논란

유니가 사망한 후 또 다른 논란이 제기됐습니다. 유니가 2집 활동 당시 김태희 생일 파티에 갔다가 무시당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기자가 방송에서 이 같은 발언을 했고 온라인으로 일파만파 퍼졌습니다. 하지만 김태희의 소속사 측은 유니가 김태희 생일 파티에 참여했다는 기사를 내려달라고 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이미 섹션, tv 등 방송으로 나갔는데 전혀 숨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는데요. 단지 김태희의 당시 매니저는 생일 파티 이후 김태희가 유니의 파티에도 게스트로 참석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보도됐는데 그 부분은 서로 약속된 바가 없으니 삭제해 달라고 했던 것인데, 전화하는 과정에서 기사 전체를 빼달라고 한 것으로 오해가 생겼다라며 해명했습니다.

이렇게 유니는 고인이 된 이후에도 갖가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사망 소식 이후에도 악플러들은 왜 죽었냐는 악플을 달 정도였는데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심각한 악플이 누군가에게는 장난이었다고 합니다.

“가수 유니씨 너무 미안했어요”···5월23일은 ‘악플 없는 날’

2007년 가수 유니 등 유명인들이 악플로 고통받다 생명을 버리고, 사망한 후에도 악플에 시달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민병철 중앙대 교수가 제자들에게 악플로 고통받는 유명인들을 찾아 응원 선플 달기 과제를 내고, 과제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이 과거 자신이 단 악플을 반성하는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졌는데요.

이에 2007년 5월 23일, 선플운동본부가 발족되어 본격적으로 선플달기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15년 지난 현재 전국 7천여 학교와 단체에서 82만명의 회원들이 참여하는 국민운동으로 발전했고 선플운동 참가자들이 인터넷에 올린 선플은 960만개에 이릅니다.

(재)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이사장 민병철 중앙대 석좌교수)는 5월 23일을 ‘악플 없는 날’(No Hate Comments Day)로 선포하고 이날 하루만이라도 악플을 달지 말고 서로 응원하고 배려하는 선플을 달자고 호소했습니다. 선플재단 선플운동본부는 지난 19일 DGB금융센터 대강당에서 선플운동이 최초로 시작된 5월 23일을 ‘악플 없는 날’로 선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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